이해할 수 있다. '미네르바'가 '공익을 해할 목적이 없었고, 허위 사실이라고 인식하면서 글을 게재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법원의 판단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이번 판결이 최종심이 아니니까 사실을 다툴 여지는 남아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마뜩치 않아 하는 건 범죄구성요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아니다. '미네르바 현상' 그 자체다.
'동아일보'가 그랬다. "1심 무죄 판결은 미네르바 개인의 행위에 대한 법리적 판단일 뿐이지 '미네르바 현상'의 정당성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라며 "박씨에 대한 무죄 판결을 확대 과장 해석하며 미네르바 현상의 사회적 폐해를 시정하려는 노력에 역행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조선일보'가 그랬다. "오프라인과 달리 인터넷은 헛소문이라도 순식간에 전 국민에게 퍼뜨리는 힘이 있다"고 전제한 뒤 "인터넷 유언비어를 걸러내지 못하면 우리 사회엔 언제 또 제2의 미네르바, 제2의 광우병 사태 같은 수준 이하 일들이 다시 벌어지게 될지 모른다"고 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그랬다. "수준 이하의 일들" 뿐만 아니라 '수준 이하의 인물' 또한 제기했다. "지식이 얕은 비전문가"(동아일보), "경제학을 전문으로 공부한 적이 없었던 30세의 무직 청년"(조선일보)에 불과한 사람이 유포한 '허위 사실'에 "청와대 경제수석까지 했던 경제학자"마저 놀아나는 "황당한 사태"를 개탄했다.
이건 이해할 수 없다. 인정할 수도 없다. 두 신문이 비판하는 '미네르바 현상'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헌법 원리와 직결되는 것이기에 그렇다. '미네르바 현상'에 대한 비판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부정으로 연결되기에 그렇다.
따져보면 아주 간단하다. '미네르바'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헌법 원리를 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공익을 해할 목적이 없었다면, 허위사실이라고 인식하지 못했다면 자유로운 표현을 제약해서는 안 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기본권 원리를 환기한 것에 불과하다.
이 원리를 적용받는 대상에 '수준 이하의 인물'은 없다. 표현의 자유를 구가하는 주체를 학력이나 전문성이란 잣대로 가를 수가 없다. '수준 이하의 일들' 또한 없다. 그건 '공개시장' 또는 '광장'에서 자율적으로 걸러지는 일일 뿐이며 사필귀정으로 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시적인 우여곡절일 뿐이다.
하지만 두 신문엔 있다. '수준 이상'이 있고 '수준 이하'가 있다. '오프라인의 정론'이 있고 '온라인의 유언비어'가 있으며, 당당히 이름을 밝히는 '전문가'가 있고 익명성에 숨은 '비전문가'가 있다. 아니 있어야 한다. "미네르바에 휘둘린 우리 사회의 수준이 더 문제"(조선일보)니까, '우민'이 득시글대는 수준 이하의 사회이니까 이런 구분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누군가가 계도하고 끌어가야 한다.
어떤가? 이렇게 보니 닮아있지 않은가? 소크라테스에 독배를 안긴, 수준 이하의 '우민'을 원망하며 '철인정치'를 희구했던 플라톤의 생각과 맞닿아있지 않은가?
▲ 동아일보 4월 21일자 사설. |
▲ 조선일보 4월 21일자 사설.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