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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정부에 반기 든 외국계 은행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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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정부에 반기 든 외국계 은행의 역설

SC제일·씨티·외환 중기 대출 축소했지만…정부 누굴 탓하랴

지난 2008년 9월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 파산 전후 국내 은행들은 극심한 유동성 부족에 시달렸다. 정부가 지난해 11월 18개 은행을 상대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게된 배경이다.

정부가 은행들이 외국으로부터 달러를 차입할 때 1000억 달러 한도로 지급보증을 해주는 것 등을 대가로 비핵심 외화자산의 매각, 개인 및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지원, 경영효율화 등을 강화하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외화 유동성 지원 등을 대가로 정부가 사실상 은행들의 경영에 관여하는 내용의 MOU는 체결 당시에도 말이 많았다. 특히 외국계 은행인 한국씨티은행, SC제일은행은 MOU 체결에 반발했다. 그래서 대외채무지급보증 관련 'MOU1'는 체결하지 않았다. 본사를 통해 달러를 얼마든지 끌어올 수 있기 때문. 이들 은행은 실물경제 유동성 지원 및 경영합리화 관련 'MOU2'만 체결했다.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이 합동으로 MOU 체결 이후 은행들의 이행 상황을 두 차례 점검한 결과, SC제일, 씨티은행 등 외국계 은행들과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대주주인 외환은행은 중소기업 대출 비율 목표치를 채우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계 은행이 단기이익에 집착해 금융시장에 혼란을 준다는 비판은 이전부터 제기돼온 문제. 이번 정부와 MOU에서도 상대적으로 아쉬울 게 없는 외국계 은행들은 약속 이행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다만 본사의 경영상황이 극도로 악화된 씨티은행의 경우, 지난해 11-12월에는 중기 대출 규모를 줄였다가, 올 1-2월에는 목표치를 달성하는 변화를 보였다.

외국계, 중소기업 대출 규모 축소

<프레시안>이 입수한 4월 MOU 점검 국회 보고(은행외화채무 지급보증 운용 현황 및 MOU 이행상황 점검 보고) 자료에 따르면, 지난 1-2월 중소기업 대출 비율 목표치(54.1%)에 외환, SC제일, 산업은행,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이 미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2월 중소기업 대출 비율은 평균 59.8%에 달했다.

앞서 지난 11월과 12월 실적 점검에서 외환, 한국씨티, SC제일, 광주, 전국, 대구은행 등이 중소기업 대출이 오히려 감소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두 번의 점검에서 모두 'MOU 2' 미이행 은행으로 지적된 곳은 SC제일과 외환은행이다. 두 곳 다 대주주가 외국계다. 금융감독당국에 따르면, 지난 2월말 현재 SC제일, 한국씨티, 외환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34조2000억 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6000억 원 정도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이들 은행을 제외한 국내 15개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6조6000억 원 정도 늘었다. 이들 외국계 은행들은 한국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의무 비율(시중은행 45%, 지방은행 60%)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MOU1'과 관련해서는, 지난해 11-12월 외환, 우리, 수출입은행이 '중장기차입비율 목표'(51.4%)에 미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농협이 외화예금을 거액 인출해 '외환유동성 확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 MOU 주요내용

○MOU1(대외채무 지급보증 관련)
- 지급보증 채무는 원칙적으로 만기 상환 용도 및 실물경제지원용으로만 사용
- 외화자금 조달 및 운용계획을 월별로 제출, 실적은 하루 단위로 보고
- 비핵심 해외자산 매각 등 외화조달 자구노력 강화

○ MOU2 (실물경제 유동성 지원 및 경영합리화 관련 등)
- 중소기업 대출 만기연장등 자금지원방안 마련
- 가계차주에 대한 채무상환부담 경감 등 지원방안 마련
- 경영효율화 : 임원의 연봉 삭감(10~30%), 자기자본확충(BIS비율 11~12%로 맞추기)

이기적인 외국계, 단기적 이익에 집중

외국계의 이런 행태는 비난을 살 만하다. 이 은행들이 부실 위험이 상대적으로 큰 중소기업은 외면하고 수익성이 뛰어난 고금리 신용대출 및 주택담보대출 등에 집중하고 있다는 게 은행권의 지적이다. 또 수수료 비중이 큰 방카슈랑스, 펀드 등 상품 판매에도 주력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단기이익에만 집착하는 외국계의 행태는 이미 여러차례 지적된 것. 지난해 가을 한국경제를 발칵 뒤집었던 환헤지 파생상품인 키코(KIKO) 판매에 가장 열을 올렸던 것도 씨티(118건), 외환(92건), SC제일(75건) 등이다.

정부, 외국계를 압박할 수단 없어

문제는 이들 외국계 은행들이 MOU를 이행하지 않더라도 정부가 압박할 수단이 뾰족이 없다는 것. 정부가 MOU로 제공하는 혜택은 외화 지급 보증과 은행자본확충펀드 등이다. 이들 대가에 대해 외국계 은행들은 이미 '필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가 밝힌 'MOU 실적에 따른 후속조치'

○ MOU상 목표를 달성한 은행과 미흡한 은행간 차별화 방안을 마련해 MOU 이행을 담보
①은행자본확충 펀드 지원시 MOU 이행실적에 따라 매입 금리를 차등 적용(신종자본증권 30bp, 후순위채 10bp)
②한국은행의 원화 유동성 지원시 은행별 차등지원
- 총액한도대출시 중기대출 비율 미준수 은행에 대한 지원 축소
*중기대출 비율에 미달한 금액의 50%(당초 25%)를 금융기관별 한도에서 차감
③금감원 '은행 경영실태평가'시 MOU 이행실적을 평가
④분기별 이행실적 부진 은행에 대해 금감원이 '주의환기' 조치

또 경제위기를 맞아 중소기업 대출을 줄이는 것은 이들 입장에서는 '합리적 선택'이다. 경제위기로 부실 위험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정부 말만 믿고 무작정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늘릴 수는 없다.

정부가 MOU를 통해 요구하고 있는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증가'와 '적정 자기자본 확충' 두 가지를 한꺼번에 추구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늘리면 부실위험자산이 증가하고 건전성은 나빠질 수 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MOU 이행을 담보로 정부가 주는 대가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 외국계 은행들은 중소기업 대출 규모를 줄이는 각자도생의 길로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MB정부 '산은 민영화' 계획은?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외국계 은행의 이 같은 행태에 대해 "외국계 자본의 단기이익 집착에 따른 문제는 분명히 존재한다"면서도 "지금 정부가 은행들을 압박해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늘리는 것을 반드시 긍정적으로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현재 한국경제의 가장 큰 위험요소는 정부가 구조조정이 필요한 기업들의 구조조정을 지연시키고 있는 것"이라면서 "은행들을 압박해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는 것은 구조조정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에 이를 지연시키는 역할 밖에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외국자본이 우리 자본시장에 들어온 것의 유일한 장점으로 은행들이 정부 말 안 들어도 된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도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확대는 정부가 정책금융을 통해서 해야 하는 일"이라며 "은행 건전성도 문제가 되는 마당에 예전처럼 은행들을 윽박질러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정부의 산업은행 민영화 계획 때문에 모든 게 흐트러진 것 아니냐"며 "산은 등 정책금융을 통해 온랜딩 방식((민간기관의 입찰을 받아 공적자금을 나눠주고 집행을 위탁한 후 사후감독하는 방식))으로 중기 대출을 늘리는 것이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MOU를 체결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는 지적. 이는 결국 은행들의 경영권을 간섭하려는 '관치' 욕망과 현 경제상황에 맞지 않는 '금융기관 민영화' 정책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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