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른 나라는 부동산 거품이 계속 꺼지고 있는 반면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은 세계경제 위기의 와중에도 그리 가격이 하락하지 않더니 최근에는 강남벨트를 중심으로 완연히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리 될 수 밖에 없음을 금방 알 수 있다. 정부가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시중에 대규모로 유동성을 공급한데다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는 정책들을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냈기 때문이다. 이명박(MB)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활성화 대책의 고갱이가 부동산을 통한 경기부양임은 꽤 오래전부터 분명했다.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이 하는 생각과 결정이 시장만능주의에 기초한 투기조장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시장정상화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부동산 시장도 시장 가운데 하나다. 정상적인 시장으로 기능하기 위한 시장질서 유지 장치들이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보유세 및 양도세 등의 부동산 세제, 각종 개발이익 환수장치 , 거래투명화 장치 등이 대표적인 시장질서 유지 장치들이다. 이들 장치들은 시장상황 혹은 정권의 성격과는 무관하게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부동산 시장이 건강하게 작동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장치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담보대출 관리, 전매제한, 분양가 상한제, 재건축 규제 등의 투기 억제용 규제 장치들은 시장 상황에 따라 미세 조정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잘 아는 바와 같이 MB정부는 부동산 시장질서 유지 장치와 투기억제용 규제 장치들을 구별하지 않고 모조리 없애 버렸다. 이제 남은 규제 장치라고는 달랑 강남 3구에 대한 투기지역지정 하나 뿐이다. 시장에 유동성이 풍부한 마당에 정부가 투기를 막고 시장을 정상화시키는 장치들을 전부 형해화시키니 부동산 가격이 오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사정이 한결 나쁜 것은 이명박 정부가 투기촉진형 공급확대에도 골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부동산 가격 상승세가 강남벨트에서 서울 목동, 경기 과천 등 '버블세븐'으로 눈에 띄게 확산될지, 또 단기적으로가 아니라 추세적으로 상승할 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글로벌 시장의 안정 여부가 중요한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혹여 글로벌 시장이 조기에 안정을 찾는 상황이 전개되면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도 다시 한 번 뜨겁게 달아오를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불현듯 기시감(旣視感)에 휩싸이게 된다.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그 전에 경험해 본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이다. 그렇다. 김대중(DJ) 정부가 취했던 부동산 정책이 MB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놀랄 정도로 유사했다. 불행히도 외환위기 조기 탈출을 목표로 DJ정부는 부동산 투기를 적극 조장했다.
토지거래 허가 구역 해제, 아파트 재당첨 금지 기간 단축 및 폐지, 토지공개념 제도 폐지, 분양가 자율화, 토지거래신고제 폐지, 분양권 전매제한 폐지, 무주택 세대주 우선 분양 폐지, 신축 주택 구입시 양도세 면제, 취.등록세 감면 등이 모두 김대중 정부 시절에 취해진 조치들이다. 그 댓가는 무시무시했다. 노무현 정부 임기 내내 대한민국은 부동산 투기에 신음해야 했기 때문이다.
진정 우려되는 것은 MB정부가 좌고우면하지 않고 DJ정부가 걸어갔던 길을 열심히 쫓고 있다는 점이다. 그 길에는 두 개의 낭떠러지가 기다리고 있다. 하나는 부동산 거품의 팽창(글로벌 시장의 조기 안정이 전제)과 붕괴이고, 다른 하나는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글로벌 시장의 안정화가 지연될 때)이다. 어떤 낭떠러지가 됐건 국민경제에는 파멸적인 타격이다. 참으로 답답한 것은 낭떠러지를 향해 폭주하는 MB정부를 막을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