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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정치와 소외 - 2008년 촛불의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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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정치와 소외 - 2008년 촛불의 반성

[박동천의 집중탐구]<27> 미국산 쇠고기는 위험한가?

제3부 합리주의: 권력숭배 프레임
제5장 교과서 정치와 소외 - 2008년 촛불의 반성


제1절 미국산 쇠고기는 위험한가?

제3부로 접어든 이후 지금까지 나는 합리성에 여러 차원이 있고, 민주주의 정치사회에는 비합리적인 요소도 생존의 권리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산수를 모델로 삼은 제일층위의 평면적 합리성만으로 이상적인 상태를 구성하면 어설픈 기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어설픈 기대는 조급한 좌절을 낳기 때문에 권력숭배로 이끄는 유혹에 쉽게 빠지게 된다고도 덧붙였다. 지금까지 내 나름으로는 최대한 소위 학자집단의 암호를 사용하지 않고 평이하게 일상적인 한국어로 말하려고 노력했지만, 거리감을 느낀 독자들이 적지 않으리라고 본다. 따라서 한국의 지식인 계층에서 팽배한 합리성의 환상에 관한 고발과 비판을 지금부터는 실제로 발생한 정치적 논쟁의 사례를 통해서 개진하고자 한다. 가장 먼저 이 장에서는 2008년 촛불시위에 관해 내가 생각하는 바를 합리성에 관한 환상이라는 제3부의 주제와 연결해서 논하고자 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거부감은 실로 복합적인 이유에서 촉발되었다. 우선 일반적인 배경으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염려, 미국이라는 자본주의적 "제국"에 대한 불신과 공포, "10년의 민주화"를 지키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정권을 내준 선거패배에 관한 아쉬움 등을 들 수 있다. 이보다는 좀더 직접적인 이유로는 충분한 줄다리기를 거쳐 시시콜콜 따지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양보한" 것처럼 보이는 협상과정, 이익으로 보나 위신으로 보나 일본에 비해서 "대등하지 못한" 대접을 받았다는 상실감, 부시 옆에서 품위 없이 촐랑거리는 모습으로 비친 이명박 대통령의 동영상, 그리하여 친일적이고 천민자본주의적인 대통령이 부시에게 개인적인 환심을 사려고 국민의 건강권을 갖다 바쳤다는 인상도 작용했다. 그러나 이 모든 인상과 염려와 불만은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하다는 우려가 없었다면 수십만 명의 촛불 시위로 이어질 사항이 아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아래 논의의 초점은 미국 쇠고기가 위험한지에 맞춘다.

미국산 쇠고기는 건강에 위험한가? 이 질문에 예 또는 아니오라는 양자택일의 명쾌한 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확히 내가 지금까지 비판해 온 평면적 합리성의 덫에 갇혀 있는 사람이다. 제1부 제3장 제2절에서 제시했던 것처럼 이 대목이야말로 명목 척도로 생각하지 말고 순서 척도로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위험이란 어떻게 보더라도 있거나 없는 사항이 아니고, 얼마나 많은가를 물어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나아가 이 부 제3장에서 논했던 것처럼 양의 변화에 따라 질의 변화가 수반하는 경우 중에서도, 온도가 올라감에 따라 얼음이 물로 바뀌거나 탄소 원자 개수가 늘어남에 따라 메탄-에탄-프로판 등으로 바뀌는 변화가 아니라, 대머리 아닌 경우에서 대머리인 경우로 바뀌는 변화에 훨씬 가깝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위험한 일과 위험하지 않은 일이 있다는 말은 세상에 대머리가 있고 대머리 아닌 사람이 있다는 말처럼 맞는 말이다. 무슨 일을 위험하다고 볼 것인지가 개인에 따라 사안에 따라 다른 것처럼 누구를 대머리로 볼 것인가 역시 누가 누구를 상대로 말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물론 대머리인지 아닌지는 경계를 어떻게 긋더라도 위험한 일은 될 수가 없지만,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에 대한 판단이 잘못되면 모든 한국인이 피해를 입는다는 점에서, 대머리의 경우와 쇠고기의 경우가 모든 면에서 똑같은 것은 아니다. 내가 하는 말은 경계를 긋는 방식이 비슷하다는 것뿐이니까, 얼렁뚱땅 쇠고기 문제가 대머리 구분하기처럼 사소하다는 인상을 자아내려는지 의심은 하지 말기 바란다.

몇 가지 사항에 관해 상식적인 수준에서 세부사항을 따져보자. 이 문제는 어차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군데군데 의견이 다를 수밖에 없는 판단과 정서의 영역이므로, 상식선에서 따졌다가 무지가 폭로될까봐 두려워할 까닭은 전혀 없다. 얼핏 보기와는 달리 이 문제는 과학의 문제이기에 앞서서 공공정책의 문제이므로 상식선에서 따져서 민주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주제다. 내가 주로 웹서핑을 통해 얻은 정보를 요약해본다.

우선 크로이츠펠트-야코브 병(CJD)은 1920년 독일의 신경생리학자 크로이츠펠트와 야코브가 각각 독자적으로 발견한 데서 유래한다. 이는 신경기능이 퇴행하는 증상이 보이다가 대개 발병한 후 1년 안에 사망하는 치명적인 질병이다. 원인은 정확히 알 수 없고, 현재로서는 프리온(prion)이라고 불리는 단백질이 원인이라고 추정하는 정도이다. 이 병으로 사망한 사체를 해부해보면 뇌에 스펀지처럼 구멍이 나 있는데, 이런 증상을 보이는 병은 이 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다. 양이나 염소의 경우 스크래피라는 병은 18세기부터 알려져 왔고, 사슴이나 엘크 등 야생초식동물의 만성소모성질환(CWD)이 1967년에 처음 알려졌으며, "광우병"이라는 속칭으로 알려진 소해면상뇌증(BSE)은 1984년에 처음 보고되었다. 이밖에 밍크(TME), 고양이(FSE), 남아프리카의 사슴(EUE)에서도 해면뇌증이 나타난다. 사람의 경우 파푸아 뉴기니 원주민 포레 부족에서 쿠루라는 질병이 1950년대에 유행한 적이 있고, GSS 증후군과 가족성 치명적 불면증(FFI)도 해면뇌증이다. 크로이츠펠트-야코브 병은 대부분이 산발성 다시 말해서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데, 일부는 가족성 원인에 말미암는다고 추정되고,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코브 병(vCJD)이라고 불리는 또 다른 일부가 1996년에 처음 보고되었다. 이런 병들을 합해서 전염성 해면뇌증(TSE)이라고 부른다.

<그림2> 영국의 광우병 발생건수 (출처: 국제수역사무국OIE)의 통계)

광우병이 세계적인 이슈가 된 것은 영국에서 1988년부터 감염 사례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1984년에 처음 보고 된 후 1987년까지 446마리가 감염되던 것이, 1988년 2514마리, 1989년 7228마리로 가파르게 상승해서 1992년에는 3만7280마리에 이르렀다. 사태가 그 지경에 이르자 육골분 사료가 원인이라는 여론이 비등해서 유럽은 육골분 사료를 전면 금지하기에 이른다. 감염이 의심되는 소들을 440만 마리 살처분하고 육골분 사료를 금지한 결과 영국의 광우병은 통제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림2>에 나타나듯이 1993년부터 추세가 꺾였고, 2006년 114마리, 2007년 67마리, 2008년 37마리로 줄었다.

우리나라에서 "인간광우병"이라는 속칭으로 부르는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코브 병(vCJD)은 1996년부터 보고 되기 시작했는데, 연결고리가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여러 가지 정황상 영국에서 만연했던 광우병과 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고 추정되고 있다. <표9>는 1996년 이후 vCJD로 보고된 환자의 누적통계다. 영국과 무관하다고 분류된 사례들은 1980년에서 1996년 사이에 영국 땅에 발을 디딘 기간이 총 6개월 미만이라는 뜻이다. 일본인 사망자의 경우도 영국에 하루를 머문 적이 있다고 하니, 나머지 37건 중에 영국 땅에 발을 전혀 디디지 않은 사람이 몇인지는 모르겠다. 설령 그런 사례가 있다고 하더라도 한때 유럽 전역에서 육골분 사료가 반추동물들에게 제공되었기 때문에, 육골분 사료가 중요한 원인이라는 추정은 흔들리지 않는다.

<표9>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코브 병 발생 누계(2009년 2월 현재, 에딘버러 대학 국립 크로이츠펠트-야코브병 조사단)
▲ * 이차감염은 수혈 때문임.
† 미국 감염자 중 한 명은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태어나 자란 후 2005년부터 미국에 영주했기 때문에,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감염되었으리라고 추정됨.
‡ 일본 감염자는 1980년에서 1996년 사이에 영국에서 24시간 머문 적이 있음.
¶ 감염자 가운데 영국에 세 명, 사우디 아라비아에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사망.

수역(獸疫), 즉 동물의 질병을 관리하는 국제수역사무국(OIE)에서는 광우병이 통제되고 있다고 간주하는 듯이 보인다. <그림3>은 영국을 제외한 세계 전체의 광우병 발생 추이를 나타내는데, 2002년 1035건을 정점으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누적건수로 보면 아일랜드(1640), 포르투갈(1061), 프랑스(1001), 에스파냐(742), 스위스(464) 등의 순서인데, 이 나라들은 물론이고 영국도 현재 광우병 통제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영국을 포함해서 전세계 광우병 발생건수는 2006년 215건, 2007년 112건, 2008년 88건으로서, 이러한 감소추세를 OIE는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2009년에는 2월 28일까지 적극적인 색출 정책을 시행하는 아일랜드에서 세 마리가 발견된 것 말고는 보고된 사례가 없다.

<그림3>영국을 제외한 세계 광우병 발생 추이 - 출처: 국제수역사무국(OIE, 2009년 3월 31일자, 검색일자 2009. 4. 1)

미국 소의 경우에는 2003년에 캐나다에서 건너온 소에서 광우병이 발견된 것을 제외하면, 2004년과 2006년에 한 건씩이 확인되었을 뿐이다. 물론 확인되지 않은 소들 중에 광우병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미국에 소가 1억 마리 가까이 되는데, 그중에 지금까지 광우병이 2건 밖에 확인되지 않았고,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코브 병도 총 3건인데다가 그 중 두 명은 영국과 관련이 있다고 보면, 적극적으로 색출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어차피 불확실한 상황에서, 아마도 없으리라는 쪽에 불확실성의 혜택(benefit of the doubt)을 부여하는 것이다. 단, 2009년 3월에 다우너(downer), 즉 앉은뱅이 소는 모두 도축장으로 들어갈 수 없도록 규제가 강화되었다.

오바마 정부의 성향을 드러내는 변화지만, 미국 축산업계가 강하게 저항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한국 소비자들의 거센 항의와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의 여론도 영향을 미친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가 미국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인정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오산이다. 앉은뱅이 소는 광우병이 아니라도 여러 가지 병리적인 우려를 불러 일으켰고, 또 걷지 못하는 소를 억지로 움직이게 만들기 위해 전기충격을 가하는 모습 등이 동영상으로 전파되면서 동물애호단체의 비난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의 조치는 도리어 한국 소비자들이 미국 쇠고기를 거부할 명분 하나를 제거한 셈이 되는 것이다.

미국 정부나 국제수역사무국에서는 산발성 크로이츠펠트-야코브 병은 광우병과 상관이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에 미국산 쇠고기에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은 상관이 없다고 단정할 증거도 없다고 본다. 이 대목은 논란이 계속될 수밖에 없지만, 실제 위험도는 어떤지 보자. 크로이츠펠트-야코브 병은 대개 일년에 100만 명당 한 명꼴로 나타나는데, 해에 따라서는 200만 명당 한 명꼴도 되고 100만 명당 1.5명꼴도 된다. 지금까지 나타난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코브 병은 해당 국가들의 인구 비율로 따지면 발생률이 0에 가까운 희귀병이므로, 위험도를 최대한으로 높여 잡기 위해 산발성 크로이츠펠트-야코브 병을 포함해도 확률은 대단히 낮다. 더구나 광우병(BSE)과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코브 병(vCJD) 사이의 관계도 정황상 추정되는 정도이지, 어떤 부위를 섭취하면 걸리게 된다는 식으로 직접적인 경로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정부의 정책을 강하게 비난하는 서울대학교 수의학과 우희종 교수조차도 "안전하지도 않지만 또 그렇게 위험한 것도 아니"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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