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당동 더하기 22 |
서울에서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치르면서 당시 최대의 달동네 중 하나였던 사당동은 86년에서 88년에 걸쳐 무자비한 철거를 당한다. 이곳에 살고 있던 이들 중 임대주택으로 이사할 수 있었던 것은 단 한 가구, 바로 이 영화에 등장하는 정금선 씨 일가뿐이었다. 현장연구원 한 명이 정할머니 일가와 같은 집에 세들어 8개월을 살면서, 현장연구를 진행하고 있던 조은 교수와 일행은 이 가족과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다. 그리고 98년부터는 방송 카메라를 이용해 이들과의 만남을 동영상으로 담게 된다.
22년간 촬영기사만 10명이 바뀌었으며, 정할머니의 어린 꼬마 손주들은 이제 30대 초중반의 장년이 됐다. 아픈 몸을 이끌고 쓰레기를 줍는 공공근로로 생계비를 보탰던 정할머니는 그 사이 세상을 떠났다. 큰손주 영주 씨는 최근 필리핀 여성과 결혼했으며 둘째인 손녀 은주 씨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됐다. 막내 덕주 씨는 방황과 일탈의 기간을 거쳐 헬스클럽에서 트레이너로 일을 하고 있다.
▲ 사당동 더하기 22 |
그러나 이러한 변화들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장년이 된 정할머니의 손주들의 가난은 여전하다는 것. 그럼에도 이들은 하나같이 "과거에 비하면 지금은 살 만하다, 행복하다"고 말한다. 영화의 마지막을 수놓는 것도 영주 씨가 드디어 아빠가 되는 순간이다. 온 가족이 작은 생명을 둘러싸고 앉아 만면에 행복의 미소를 띈 채 새로운 작은 생명에 경이의 축복을 보낸다.
도시의 그늘에서만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 그 가운데에서도 기쁨과 희망의 순간을 누리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사회는 빈곤을 방치하고 오히려 가난한 이들을 더욱 심각한 빈곤으로 내몰고 있다. 오늘도 서울 곳곳에서는 '재개발 공사'가 이뤄지고 있고, 하루가 다르게 으리으리한 빌딩과 아파트가 솟아나고 분수가 설치되고 공원이 생기지만, 그곳에서 원래 살던 이들은 밖으로, 밖으로 내몰린 채 '이주'와 '이산'의 역사를 반복한다. 그런가 하면 베트남과 연변, 필리핀 출신의 가난한 여성들은 이곳을 '좋은 곳(a nice place,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이기도 하다)'이라 부르며 몰려와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몇몇은 운좋게 뿌리를 내리기도 하지만, 다수는 표류를 거듭하다 더 나쁜 상태로 내몰린다. 그리고 이 가운데 빈곤은 세습되고 재생산된다. 하지만 이들의 삶은 종종 마치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는 듯 잊혀지기 일쑤다. 혹은 가장 극적이고 나쁜 사례들만 미디어에 포획된 가운데 어정쩡하게 지워져 버리거나, 더이상 사회적인 문제가 아닌 개인의 동정과 자선의 대상으로 묶여버리곤 한다.
<사당동 더하기 22>는 굳이 감독이 큰 목소리를 내어 강렬한 주장을 하고 있는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종종 잊어버리거나 굳이 외면해 버렸던 우리 안의 어떤 삶을 조근조근 펼쳐내 보임으로써, 우리 사회의 한 면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영화의 말미에 붙는 자막대로, 이 영화는 한 가족의 22년을 다루기는 하지만 단지 한 가족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차라리 이 영화는 우리가 발딛고 선 땅의 이면을 들추며 사회가 광범위하게 지워버렸던 존재들의 삶을 복원하고자 하는 작은 시도 중 하나이다. 이번 여성영화제의 최고 화제작 중 하나였던 작품으로, 이미 영화제에서의 상영은 끝났지만 다른 다양한 영화제들을 통해 계속해서 소개되고 상영되어야만 하는 소중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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