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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horror), 호러(horror)…."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실패한 왕' 정조

▲ 정조의 독살설이 계속 제기되는 중요한 이유는 "그때 정조가 그렇게 갑작스럽게 죽지 않았더라면…" 하는 대중의 바람을 독살설을 주장하는 쪽이 업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정조는 성공했을까? 정조의 대중적 이미지를 만드는데 일조한 드라마 <이산>. ⓒ뉴시스
얼마 전 정조 독살설을 놓고 한바탕 설전이 오고갔다. 나 역시 그 논란에 한마디 보탰는데, 여전히 독살 주장을 굽히지 않는 이들이 많은 듯하다. 한의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비교적 명백한 사안인데도 이렇게 논란이 계속되는 데는 "그때 정조가 그렇게 갑작스럽게 죽지 않았더라면…" 하는 대중의 바람을 독살설을 주장하는 쪽이 업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중이 이렇게 정조 독살설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답답한 현실 정치 탓이 크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조 같은 정치인일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정조는 장점이 많은 정치가였으나 태생적인 분노와 공포를 지니고 있었다. 이런 분노와 공포를 지닌 정치인은 성공하기보다는 실패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 정조가 바로 그 본보기다.

사실 이 분노와 공포는 정조의 성과가 후대로 이어지지 못하는 한계로 작용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목숨까지 앗아갔다. 다시 정조가 어떤 질병으로 고통 받다 죽었는지 살펴보자. 정조를 죽음으로 몰고 간 질환은 화병으로 인한 종기다. 정조가 사망한 날은 재위 24년 6월 28일. 정조가 종기의 고통을 처음 호소한 것은 6월 14일이다.

자신이 상당한 한의학 지식의 소유자였던 정조는 처음부터 명확히 이 종기가 화병 탓임을 간파했다. 정조는 의관 정윤교와 종기 치료를 의논하면서 "두통이 많을 때는 등쪽에서도 열기가 많이 올라오니 이는 다 가슴의 화기 탓"이라고 규정했다. 정조는 자신의 화병을 놓고 여러 가지 언급을 했다.

"이 증세(종기)는 가슴의 해묵은 화병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요즘에는 (이런 화병이) 더 심한데도 그것을 풀지 못하니 (이런 종기가) 생기는 것이다." "나는 젊었을 때부터 몸에 열이 많아서 음식을 겨우 먹었으므로 날마다 우황, 금은화를 먹는 일이 다반사였다. 20세 후반부터는 고암심신환을 먹었는데, 약을 먹은 기간이 10여 년, 그 분량은 섬으로 계산할 정도다."

실제로 정조는 고암심신환, 청심연자음, 가미소요산을 교대로 마셨다. 이 약을 처방한 사람은 어의 강명길이었고, 그가 정조의 건강을 처음 돌보기 시작한 것은 동궁 시절 때 부터였다. 즉, 정조를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 화병은 최소한 10대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무엇이 그를 힘들게 했을까? 잘 알다시피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이 그 원인이었다.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도 역시 화병으로 고생했다. 영조가 사도세자의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탓하자, 그는 "(아버지가 저를) 사랑하지 않으니 서럽고, (아버지가 저를) 꾸중하니 두려워 화병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언급했다. 화병의 원인이 두려움 즉 '공포'에 있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정조의 화병도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도세자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다. 11세 때 눈앞에서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것은, 정조에게 엄청난 '트라우마'다. 정조의 트라우마는 연산군이 친어머니의 죽음을 뒤늦게 안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심리 충격이다.

이 심리 충격은 정조에게 어떤 영향을 줬을까? 바로 공포와 분노다. 실제로 정조는 공포와 분노 사이를 오갔다. 정조의 즉위 일성은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그러나 그는 재위 24년 내내 아버지를 왕으로 추존하지 못했다. 성종이 친아버지 의경세자를 덕종으로, 인조가 아버지 정원군을 원종으로 추존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심지어 정조는 죽음을 앞둔 14일에도 "나의 본심"이라는 전제 하에 이렇게 말한다.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몬 자들이 자수를 하지 않고 있다. 내가 한 번 행동을 하면 저들이 결딴날 텐데, 그들은 무서울 줄 모른다." 이런 정조의 말에서 분노와 함께 공포를 포착하기는 어렵지 않다.

최근 알려진 정조가 노론 벽파 수장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 편지를 보면 이런 정황은 더 확실하다. 정조의 밀서를 보고 통상적인 왕과 신하의 관계를 연상하기는 쉽지 않다. 정조가 심환지에게 매달리는 듯한 분위기가 역력하기 때문이다. 정조의 속내는 이랬을 것이다. "노론이 싫다. 하지만 무섭다."

바로 이 공포가 정조 화병의 직접 원인이었다. 공포는 노르아드레날린 호르몬 분비를 촉진한다. 이 호르몬은 여성에게 잦은 공황 장애를 유발한다. 또 이 호르몬은 호흡 곤란, 심장 박동 증가, 식은 땀, 어지러움을 유발하는 원인 물질이다. 이 호르몬이 분노와 관계가 깊은 호르몬 아드레날린과 분자 구조가 아주 흡사하며 거의 같이 나타나는 것도 기억해 두자.

한의학의 인식도 같다. 정조에게 마지막까지 처방된 가미소요산은 그의 화가 공포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주는 한의학적 결론이다. 정조는 애초 여성에게 주로 처방했었던 (여성이 남성과 비교했을 때 공포에 약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가미소요산을 복용하고 큰 효과를 보자, 이런 처방을 제안한 어의 강명길을 크게 신뢰한다. 강명길의 최후는 잘 알려져 있다. (☞관련 기사 : "정조에게 인삼 처방한 어의가 맞아 죽은 까닭은?")

영화 <지옥의 묵시록>은 분노와 공포 사이의 관계를 잘 파악한 영화다. 전쟁 영웅이자 광기 짙은 살육자 커츠(말론 브란도)와 월라스(마틴 쉰)의 마지막 대화는 특히 인상적이다. 월라스가 살육을 저지른 이유를 추궁하자 커츠는 이렇게 한마디로 답한다. "호러(horror), 호러(hor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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