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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자' 경기회복, 믿습니까?

[글로벌 마켓 워치] 불완전한 경기 회복 기대감

대공황 이래 최악이라 불리던 미국발 경제위기를 온 세계인이 헤쳐나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 극대화됐던 공포는 다소 줄어들고 최근에는 우려와 기대가 혼재된 양상입니다. 주가, 기업실적 등 일부 지표에서 반가운 회복 신호가 나타나고 있지만 일부 지표는 여전히 위기가 끝나지 않았다고 경고하는 듯합니다.

최근의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경제현상을 해석하는 눈에도 약간의 차이가 보입니다. 학문의 대상으로 현 경제위기를 보는 학자의 눈과 이를 보다 현실경제에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는 애널리스트들의 시각은 다를 수 있습니다. 어느 한 쪽의 목소리만 들어서는 현 경제상황을 '반쪽'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동안 <프레시안> 지면에서 직접 목소리를 듣기 힘들었던 애널리스트들의 말을 담는 새 연재 '글로벌 마켓 워치(global market watch)'를 기획한 까닭입니다. 류승선 HMC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과 정용택 유진투자증권 매크로팀장이 앞으로 각각 한 달에 한 번씩 독자여러분을 찾아갈 예정입니다. <편집자>

글로벌 경제에 봄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해 연말 급격한 생산조정 과정에서 크게 위축됐던 각국의 수출입, 생산 및 경기선행지수 등이 최악의 국면을 지나 조금씩 반등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 ISM제조업지수(구매자관리협회지수, 미국GDP 궤적을 가장 잘 반영하는 지표로 50 이상은 경기확장, 50미만은 경기위축으로 구분됨)는 지난해 12월 저점(32.9) 이후 올해 1분기 내내 완만한 상승세를 유지했다. 재고조정이 상당부분 진행된 가운데 출하 감소폭도 완화되면서 재고순환지표도 2월 들어 완연한 회복세를 나타냈다. 미국 주택경기가 점차 바닥 징후를 찾아가기 시작했다는 점도 글로벌 경기 바닥 탈피 및 회복 기대감을 높이는 요인이다.

이 때문에 세계 주요 언론과 상당수 경제전문가들은 "미국 경제가 바닥을 확인하고 있다"며 경기회복 기대감을 조심스레 드러내는 모습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약세장 예측 전문가로 '닥터 둠(Dr. Doom)'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마크 피버다. 그는 최근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스탠다드 앤 푸어스(S&P)500 지수가 7월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13일(현지시간) 뉴욕 증시 마감 후 골드만삭스가 시장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는 실적을 발표한 것도 경기바닥 기대감을 더욱 부풀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 경기가 완연히 되살아나기 시작했다고 단언하는 것은 위험하다. 민간소비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공급은 회복, 수요는 지지부진

경제 지표는 경제활동 참여자들의 향후 경기 기대와 그에 대한 반응의 결과다. 금융시장 대부분의 속성이 그러하듯, 단기적으로 과도한 위축이 발생하면 이후 안도에 따른 반작용이 생겨난다.

최근 글로벌 경기지표 개선은 지난해 리먼 브러더스 파산 이후 글로벌 수요위축 우려감과 실제 무역금융 긴축 움직임 등으로 재고조정이 급격하게 진행된 데 따른 반작용 측면이 크다. 경제지표 회복이 공급 측면에만 집중된다는 점이 이를 나타낸다.

반면 아직까지 소비로 대표되는 수요 회복은 미진하다. 민간소비능력지수는 여전히 바닥을 확인하지 못했다. 현 글로벌 경제지표 개선은 수요 없는 경기 회복에 불과하다.

특히 글로벌 소비 중심축인 미국 경제의 회복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점이 문제다. 최근 미국 소비가 세금환급 및 감세, 주택담보대출 리파이낸싱 증가, 각종 소비부양 대책 등으로 다소간 회복 징후를 보이고 있지만, 정부가 내놓은 일련의 조치들은 소비를 일시적으로 증가(Level Effect)시킬 뿐이다.

소비를 지속적으로 증가(Growth Effect)시키기 위해서는 고용증가, 소비자금융 회복 등 보다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나야 한다. 불행히도 아직 뚜렷한 변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의 경기 회복세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기 힘들다고 보는 이유다. 오히려 미국의 소비 추세는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근거는 다음과 같다.

민간소비, 추가 하락 가능성 높아

먼저 미국의 실질 민간소비능력이 매우 취약한 상태라는 점을 들 수 있다. 항상소득가설에 따르면 소비는 안정적인 소득이 있어야 꾸준히 증가할 수 있다. (항상소득가설은 확실한 소득인 항상소득의 일정비율은 꾸준히 소비되지만 임시 수입인 변동소득은 저축으로 돌려지기 때문에 항상소득이 커야 소비가 활성화된다는 이론으로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제시했다.)

안정적인 소비증가의 기반이 되는 민간소비능력을 안정적 소득인 근로소득(민간 취업자수와 노동시간 및 시간당 임금 등의 곱)에 기반해 추정할 경우, 최근 긍정적인 경제지표 변화에도 개선 조짐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기업들이 근로시간을 줄이는 가운데 고용감축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GM의 부분 파산에 따른 구조조정 가능성은 고용시장을 추가로 위축시킬 전망이다.

소비 추가 악화를 점칠 수 있는 근거는 더 있다. 지난해 4분기 가파른 물가 하락으로 다소 회복기미를 보이던 소비자물가 수준을 감안한 실질 민간소비능력 역시 최근 들어 재차 악화되는 추세다. 실질소비 회복이 다시 둔화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미국 고용시장 위축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물가하락세도 최근 유가급등과 달러 강세 제한 등으로 소폭 상승 전환함에 따라 향후 실질 민간소비능력은 추가적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공급주도의 긍정적 경제지표 개선에도 여전히 항상소득이 불안정하다는 점은 소비수요 회복의 지속성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미국 생산지표는 반등 기미를 보이고 있으나 소비지표는 여전히 악화 추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HMC투자증권

신용위기 극복 못해

둘째로 신용위기 여파가 여전히 소비자금융 위축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비록 최근 미국 상업은행의 소비자 대출태도가 다소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신전문금융기관과 자산유동화 시장을 통한 소비자 금융의 급격한 위축은 멈추지 않고 있다.

그 동안 자동차 할부, 부동산 대출 및 기업어음 등 미국 금융소비자의 다양한 대출수요는 여신전문금융기관과 자산유동화를 통해 충족됐다. 따라서 최근 이들 시장의 급격한 위축은 소비 수요를 추가적으로 제한할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미국의 소비자금융 위축이 한국과 달리 주로 리볼빙(일정부분 이상 대출 대금 납부시 나머지 대금이 다음 결제일로 자동 연장되는 대출제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점, 그리고 점차 非리볼빙 시장으로 확산되고 있는 점도 소비 수요 회복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가파른 경기침체 뒤 V자 모형의 경기회복이 가능한 까닭은 경기침체 기간 중 미뤄졌던 대기수요가 일시적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비와 직결되는 리볼빙 신용대출이 가파르게 위축되는 가운데 여타 소비자금융을 통한 소비수요도 차단된 현 상황에서는 최근의 경기부양 대책에 따른 일시적 소비증가가 지속적인 소비증가로 확산되기 어렵다.

▲'신용폭탄'이 완전히 제거되었다는 단언을 하는 것은 아직 위험하다. ⓒHMC투자증권

V자 회복, 좀 더 신중해야

결국, 최근 들어 글로벌 경기 회복 기대감이 높아진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이는 공급 주도의 경제지표 개선에 따른 착시 효과일 가능성이 높다. 소비자 신뢰지수는 소폭 반등했다손 치더라도 여전히 역사적 저점 수준에 머물러 있고, 고용에 대한 불확실성도 높다. 오히려 소비 지표 추가하락 우려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최근 경기바닥 기대감에 따른 금융시장의 우호적 반응이 경제지표와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단기적으로 경기지표 개선을 지속시킬 수는 있다. 그러나 최근 공급주도의 경기 회복 기대감은 궁극적으로 소비 수요가 뒤따라오지 않는 한 재차 악화될 수밖에 없다.

고용과 소비자 신용시장의 불확실성이 제거되어야 지속적인 소비회복이 가능하며, 현 경기국면에서 이에 대한 희망은 아직 감지되지 않고 있다. 경기가 비록 바닥을 탈피했다고 하더라도 V자 궤적의 경기 회복 가능성은 조금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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