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씨는 서른다섯 살에 학습지 교사를 시작해 올해 10년차다. 회사 내에선 선배보다 후배가 더 많은 중견 교사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일이 편해지기는커녕 더욱 힘에 부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몸도, 마음도 "골병 상태"다.
"무거운 학습지 들고 다니다 보면 어느새 골병"
"학습지 교사 오래하면 골병이 든다. 우선 빡빡한 방문 일정 때문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 또 말은 얼마나 많이 하는지. 몸이 나빠질 수밖에…."
유진미 씨는 유아와 초등학생을 가르친다. 교재를 들고 다녀야 하는데, 유아 교재라고 무게를 만만하게 봐선 오산이다. 김 씨는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림도 많고 교재도 두껍다"며 "한쪽 팔로는 들지도 못해 양손으로 들고 다녀야 한다"고 토로했다.
학습지 답안지를 들고 다녀야 하는 초등학생 교재 또한 무게가 나가긴 마찬가지다. 그는 "오전부터 저녁까지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하루 종일 교재와 답안지를 들고 돌아다니다 보면 팔이 빠질 듯 아프다"며 팔을 토닥거렸다.
게다가 밤 10시까지 아이를 가르치다보면 다음날 아침엔 목이 아예 잠겨버린다. 그나마 점심때쯤이 되어서야 겨우 목이 풀린다. 그는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목이 아파 남편과 아이와 말하기도 싫어진다"고 말했다.
▲ 국내 학습지 시장의 규모는 상당하다. 그러나 정작 교사들에 대한 처우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뉴시스 |
기본급은 아예 없고, 월급은 100만 원도 안 돼
이렇게 일을 해도 유진미 씨 손에 잡히는 돈은 한 달에 100만 원이 채 안 된다. 학습지 교사의 월급에는 기본급이 아예 없고 오로지 실적에 따른 수수료가 있다. 학생을 많이 맡을수록 월급을 많이 받는 셈이다. 그가 맡은 과목 학습의 수는 100개가 안 된다. 여느 교사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10년간 일했지만 그의 수수료는 학습지비의 45%였다. 50% 이상 받는 교사도 있지만 스타급 교사들에 국한된다. 실적이 떨어지는 교사는 회사에서 실시하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는 "일도 힘든데 교육까지 받는 때는 죽을 것 같다"며 "교육 받는다고 실적이 올라가지도 않는데 결국 교사를 괴롭히기 위한 방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떨어지는 실적을 맞추기 위해 유아 학습지도 맡았다. 그동안 초등학생만 맡았지만 늘어나는 학원과 공부방이 초등학생을 빼앗아 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문제는 초등학생에 비해 유아 교육이 훨씬 힘들다는 점이다. 그는 "아이를 이해시키기 위해 노래도 부르고 율동도 해야 한다"며 "그렇게 하고나면 정말 진이 빠진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힘들어도 어쩔 수 없다.
줄어드는 학습지 회원들…"회사 눈치 보기가 더 심해졌다"
그나마 경제 위기로 사정은 더 나빠졌다. 형편이 어려워졌다는 이유로 여기저기에서 학습지를 끊는 학부모들이 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학습지 시장 전반적으로 침체의 길을 걷고 있는 상황이다. '눈높이'로 유명한 대교는 2008년 영업 이익이 전년대비 27% 감소한 572억1000만원을 기록했다. 매출액 역시 전년에 비해 0.7% 줄어든 8410억9000만 원이고 당기순이익도 46.3% 감소한 258억2300만 원으로 집계됐다. 외국어 교재 출판업체 능률교육도 2008년 영업 이익이 전년대비 7.7% 감소한 43억6800만 원에 그쳤다.
회사는 이제 줄어든 회원 수를 충당하라고 닥달한다. 유 씨네 회사는 얼마 전 소규모 구조 조정을 단행해 몇몇 지국장을 해고했다. 신학기가 시작되면 가방이나 기타 학용품 등 아이들 사은품이 회사에서 지급됐지만 이번에는 전무했다. 그는 "매년 받아온 어머니들은 선물을 계속 바라기 때문에 별수 없이 사재를 털어 선물을 하고 있다"며 답답한 상황을 전했다.
학습지 교사를 소개해주면 회사가 일정 소개비를 지급했는데 이마저도 끊겼다. 경제 위기도 위기거니와 학습지 교사를 지원하는 20대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전엔 교사를 구하기 위해 생활 정보지나 신문 하단에 광고도 실었는데 지금은 싣지 않아도 찾아오는 구직자가 많다.
넘쳐나는 교사들, 한정된 일거리
회사의 입장도 변했다. 교사들에게 공공연히 '잘하라'며 압력을 가한다. 유진미 씨는 "일거리는 한정돼 있는데 교사는 많으니 일을 나눠주는 회사의 입장에서는 말 잘 듣는 직원에게 우선 일을 배당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어쩌겠나. 아니꼽지만 회사 말을 잘 들을 수밖에 없다"고 푸념했다. 특히 지국장과 팀장의 눈치를 보려면 숨이 턱턱 막힌다.
"팀장은 자기 말을 잘 듣는 교사에게 일을 몰아준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하다. 예를 들어 아파트 단지에서 학습지 홍보를 통해 들어온 수요를 팀장은 특정 교사에게 몰아준다. 나머지 교사들은 스스로 회원을 찾아야만 한다."
유 씨에 따르면 잘 나가는 교사의 월급은 300만 원이 넘는다. 그의 월급이 100만 원이 안 되니 간극이 200만 원이 넘는 셈이다.
월급을 결정짓는 수수료 계정이 이뤄질 때도 마찬가지다. 계정 자체가 무원칙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상사에게 잘 보이는 사람일수록 유리하다는 것. 유진미 씨는 "회사에서 자주 쓴 소리를 하다 보니 수수료 비율이 갈수록 삭감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힘들어도 다른 일은 엄두가 안 난다"
일을 하다보면 속상한 일도 자주 생긴다. 특히 젊은 학부모가 자신에게 거리낌 없이 말 할때면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자존심 때문에 집에 가서 남편에게 하소연도 하지 못한다. 그는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런 기분을 알지 못한다"며 "다들 나를 두고 선생님이라고 하지만 선생님으로 대우는 거의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유 씨는 친구 만나는 것도 꺼려진다. 저녁 때 만나는 것이 피곤하기도 하지만 자신 스스로 자격지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적은 돈이긴 하지만 지금 같은 경제 위기에 무시하지 못하는 액수다. 그가 처음 이 일을 시작한 것은 10년 전 IMF가 터진 직후였다.
"1998년 처음 학습지를 시작했다. 그 전에는 방과 후 공부방을 만들어 가야금 레슨을 진행했다. 대학 때 가야금을 전공했기 때문이다. 남편보다 수입이 좋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IMF가 터지니 레슨 받던 아이들이 정말 모두 그만뒀다. 그 전엔 돈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레슨을 접을 수밖에 없는데다 남편 사업까지 IMF로 망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결국 그는 학습지 교사를 택했다. 가야금 레슨 때 아이들 공부를 봐주기도 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별로 힘들지 않고 낮에 약간만 하면 될 거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벌써 10년이 지났다. 처음 그가 일을 시작할 때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면 그만두겠다고 생각했지만, 벌써 아이는 훌쩍 커 중학교 3학년이 됐다.
그는 "다시 가야금 레슨을 하는 것에 대해 수시로 생각하지만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막막하다"며 "더군다나 다시 경제 위기 아닌가"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매일 매일이 고되고 힘들어도 다른 일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유 씨. 나이 마흔다섯, 그가 활짝 웃으며 일할 날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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