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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좌에서 극우 선봉장으로의 변신한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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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좌에서 극우 선봉장으로의 변신한 그들

[박동천의 집중탐구]<24>계몽주의와 권력숭배

제2장 계몽주의와 권력숭배

코페르니쿠스(1473-1543)는 지동설이 옳다고 믿었지만 죽음에 임박해서야 저서의 출간을 허락했다. 갈릴레오(1564-1642)는 지동설을 주장한 탓에 교회 재판에 회부되어 유죄판결을 받고, 죽을 때까지 연금(軟禁)에 처해졌다. 혈액의 소순환 경로를 밝힌 근대 해부학의 선조 세르베투스(1511-1553)는 교회에 의해 화형당해야 했다. 과학적 신념을 기반으로 삼위일체설을 부인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면 뉴턴(1642-1727)은 생전에 천재과학자라는 영예를 듬뿍 누렸고, 죽어서는 국민장으로 추앙을 받았다. 이만큼만 봐도, 코페르니쿠스에서 뉴턴에 이르는 기간은 인류의 정신에서 암흑이 광명으로 바뀐 전환기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뉴턴 이후에도 정치, 경제, 사회, 도덕, 종교 등의 영역에서는 광명이 찾아오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과학이 찾아낸 진리탐구방법을 정치에도 적용하면 광명한 사회를 조직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 지식인들이 나타났다. 이들을 계몽주의자라고 부르는데, 이들 중에서 특히 콩도르세(1743-1794)와 생시몽(1760-1825)이 합리주의로써 정치를 개편하자는 발상을 명시적으로 표명했다.

콩도르세는 당대에 보기 드물게 남성과 여성을 가리지 않고 인민에게 참정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산에 따른 참정권 제한은 필요하다고 봤는데, 그래야 책임감 있는 투표가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재산이 있는 사람만이 나라의 정책이 만약 잘못 되었을 때 손해를 보게 되기 때문에, 투표하기 전에 바른 선택을 하려고 탐구의 노력을 기울이리라고 봤다. 그가 꿈꾼 사회는 민주주의나 인민주권보다 공공 이성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인민 대다수가 충분히 개명되기 전에는 민주주의란 단지 중우정치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콩도르세는 민주주의와 합리주의 사이에서 고민한 흔적이 뚜렷하지만, 생시몽에게서는 그런 흔적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생시몽은 개명된 세상에서는 관리하는 행정 기능만이 남고 지배하는 정치 기능은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놀고먹는 계급(les oisifs)이 주도하는 부당한 세상에서나 지배 따위가 필요하고, 일하는 계급(les industriels)이 주도하는 세상에서는 생산적인 기능들이 재능에 따라 합리적으로 배분될 테니까 서로 남의 것을 빼앗으려는 권력투쟁이 사라지리라고 기대했다. 과학자, 금융인, 실업가 등이 사회를 이끌어 가면 된다고 본 것이다.

계급 없는 사회에서는 지배가 필요 없으니 국가가 없어지게 된다는 마르크스의 꿈은 이런 배경에 뿌리를 둔다. 이들은 모두 과거의 인류역사는 불합리한 정치사회로 점철된 데 비해, 미래의 발전된 사회는 합리적인 탈정치사회가 될 거라고 보면서도, 이 전환이 한 순간에 이루어지리라는 추정에 대해서는 누구도 의문을 품지 않았다. 즉, 불합리하기만 했던 인류가 어떻게 느닷없이 합리적이 될 수 있는지에 관해 되새길 줄을 모른 것이다.

사실 이런 생각은 2500년 전 플라톤에서부터 나타난다. 플라톤의 『국가』를 읽으면 (나는 이것이 피상적인 독해라고 보지만 여기서 따질 문제는 아니다), 마치 지혜가 뛰어난 철인이 정치적 판단을 내리고, 용맹이 뛰어난 전사들이 방위와 치안을 담당하며, 나머지 목전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각자 취향과 적성에 따라 원하는 물품을 생산하는 일에 종사한다면 사회가 잘 짜여질 것 같은 그림이 나타난다. 정치판에서 만날 벌어지는 말다툼, 뇌물이나 독직에 관한 추문들, 추문이 나와도 속 시원히 밝혀지는 일은 드물고 도마뱀 꼬리 자르기로 넘어가는 관행, 그러다 여차하면 사람들을 잡아가거나, 아니면 기어이 전쟁까지 일으키는 작태에 싫증이 난다면 정치 없는 세상을 꿈꾸는 것도 무리는 절대로 아니다.

그러나 이런 그림을 그려서 뭔가 마음의 도피처로 삼고 위안을 느끼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현실을 어떻게 이런 그림에 맞출지, 그리고 과연 이런 그림대로 하면 불쾌한 정치는 사라지고 쾌적한 행정만이 남게 될지는 여전히 따져봐야 할 문제로 남는다. 그리고 이 두 질문은 사실 한 덩어리로 다뤄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이 그림을 구성하는 뼈대 부분이 부정합이기 때문에, 현실에 적용한다는 것은 고사하고 애당초 설계도 자체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그림에서 가장 핵심적인 결함은 정치적 사회적 안건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어떤 성격을 가지는지를 간과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대북정책이라든지, 한반도 대운하, 금융위기의 해결책, 기타 등등의 의제들은 앞 장에서 제시한 구도에 따라 말하면, 산술적 합리성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라기보다는 의지와 결단에 따라서 사람들 사이에 서로 다른 정답들이 교차하는 종류의 문제에 가깝다. 다시 말해서, 산수 문제라면 정답과 오답의 구분이 정치와는 상관없는 차원에서 확정되어 있지만, 정책적 쟁점에 관해서는 정답과 오답의 구분 자체가 거의 의미가 없고 지지하는 사람들의 세력이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서 채택되거나 폐기될 수밖에 없다고 봐야 할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인민의 의사를 수렴해서 결정하는 민주적 리더십과 엘리트가 구상한 정책을 인민에게 설득해서 끌고 가는 불도저 리더십 사이에 어느 편이 더 도덕적이라거나 더 효과적이라는 일반적인 답은 있을 수 없다. 이런 질문은 정답이 있기는 있는데 인류의 지식이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못해서 지금은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아니라, 양자택일형으로 제기된 문제 자체가 잘못된 경우에 해당한다. 따라서 "사정에 따라서 다르다"는 지극히 평범한 대답밖에는 할 수가 없다. 행정학이나 경영학에서 조직이론이나 리더십을 조금이라도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이 사실을 익숙하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체의 정치적 구성에 관해서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플라톤이나 생시몽의 그림처럼 합리적으로 조직된 사회에서는 정치가 필요 없으리라는 환상을 아껴 간직한다. 이 환상 때문에 "이념공방", "정치공방", "정쟁", "정치적 판단"과 같은 단어들이 자체로 뭔가 나쁜 일이라는 의미의 낙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 또는 경부대운하를 건설하면 안 된다는 주장은 정치적이고 이념적인가? 당연히 그렇다. 국가보안법을 존속시켜야 하고 경부대운하를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도 따라서 당연히 그만큼 정치적이고 이념적이다. 일상적으로 필수적인 행정업무 또는 어떤 명백한 범죄처럼 사회적으로 쟁점이 될 수 없는 재판업무는 정치와 상관이 없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런 경우 탈정치적인 결정이 가능한 것은 정치세력 사이의 이념적 도덕적 정향과 상관없이 확립된 사회적 규칙이 있기 때문이지, 행정이나 사법이 본래 정치와 상관이 없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종전까지 일상적으로 필수적인 행정업무라고 간주되었지만 일각에서 필요 없으니 폐지하자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바로 정치적인 쟁점이 된다. 연쇄살인범에 대해서도 처벌하는 데는 아무 이의가 없지만, 사형해야 하는지는 정치적 쟁점이 되는 것도 바로 똑같은 이치다.

합리적 조직을 통해 사회를 탈정치화한다는 발상은 합리성을 제일층위의 것으로만 이해하면서, 제이층위의 합리성에 관해서는 완전히 관심 자체를 기울이지 않은 결과다. 다시 말해 말하는 사람 각자의 의지나 기질에 따라서 제일층위의 합리성이 서로 다른 의미로 정형화되는 상황, 즉 합리성에 관한 복수의 관념들이 서로 경합하는 상황을 그냥 하나의 합리성으로 통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셈이다. 여러 갈래의 합리성이 서로 경합할 때 어쩌면 통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통일은 합리성에 관한 진정한 기준이 새삼 발견된 덕택이라기보다는 힘의 우열에 힘입은 결과이기가 쉬울 것이다. 힘이란 발가벗은 무력에서부터 여론의 지지까지를 망라한다.

제임스 번햄이 『관리혁명』(Managerial Revolution, 1941)에서 주장한 내용을 조지 오웰이 권력숭배일 뿐이라고 비판한 사실을 음미해 볼 가치가 있다 (George Orwell, "Second Thoughts on James Burnham", 1946). 번햄은 1930년대 말까지만 해도 트로츠키 계열을 추종한 마르크스주의자로 미국 사회당에서 활동했지만, 당내 권력투쟁에서 패배하고 히틀러와 스탈린의 득세를 보면서 사회주의 대신 전문가에 의한 지배 쪽으로 전향했다. 자본주의는 (자기가 보기에) 14세기 경에 시작된 제도이기 때문에 시작이 있는 만큼 끝이 없을 수 없는데, 그 다음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관리전문가들의 체제가 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전혀 독창적인 것이 못 된다. 그 전에 이미 콩도르세나 생시몽이 꿈꿨던 이상도 있었고, 파레토나 모스카 및 미헬스의 엘리트 이론도 있었다. 현대사회가 전문 관료에 의한 지배로 흘러가려는 경향은 막스 베버도 감지하고 우려를 표명했고,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1932)를 통해서 경고가 발령되기도 했다. 실제로 번햄보다 불과 2년 전에 이탈리아의 브루노 리찌가 『세계의 관료화』(1939)를 출판했기 때문에 표절의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게다가 조지 오웰도 1930년대에 쓴 여러 저술들을 통해 이런 관료화 경향을 고발하다가, 『동물농장』(1944)과 『1984년』(1949)을 내놓게 된다. 차이는 번햄은 이를 반긴 데 비해 오웰은 혐오했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오웰은 그런 번햄의 입장에서 권력숭배를 적확하게 읽어냈다.

권력숭배란 무슨 의미인가? 오웰은 번햄이 어떤 시기에 어떤 말을 했는지를 추적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찾아냈다.

1. 1940년 후반에 집필된 『관리혁명』에서 번햄은 독일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영국이 패할 때까지 독일과 소련의 동맹이 유지될 것이며, 그 다음에는 소련도 독일에게 패배할 것으로 전망했다.

2. 독일군이 독소 불가침조약을 폐기하고 모스크바 교외까지 진격한 1941년 후반에 쓴 『관리혁명』의 영국판 보론에서 번햄은, 독일과 소련의 결별이 시작되어 소련이 이미 패배한 것처럼 썼다.


3. 일본이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맺은 1944년초에는 일본과 소련이 동맹을 맺어서 미국에 대항할 것이라고 썼다.

4. 연합군이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주춤거리고 소련군이 동유럽으로 진출하던 1944년 겨울에는 소련이 세계를 정복할 것으로 예언했다.

이런 관찰을 토대로 오웰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앞으로도 계속된다"고 예언하는 패턴을 번햄에게서 찾았다. 다시 말해서, 세상은 어떤 시대에나 똑같을 뿐 나아지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이다. "인간은 두 종류, 자기중심적이고 위선적인 부류와 두뇌가 없는 우중(愚衆)으로 나뉜다. 우중은 돼지처럼 이끌려서 우리 안에 갇힌다. 여물통을 딸각거리는 막대소리에 이끌릴지 아니면 배를 차여서 이끌릴지는 그때그때 필요에 따를 뿐이다" - 오웰이 요약한 번햄의 사고방식이다.

번햄에 대한 오웰의 비판을 조금만 더 따라가 본다. 마키아벨리 시대라면 차라리 계급 구분이 불가피했을 뿐만 아니라 바람직했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생산력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사람이 육체노동에만 종사한다면 문명의 발전은 가망이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기계 덕택으로 필수품 생산의 문제가 해결된 마당에도 왜 계급 구분이 유지될까? 번햄이 이 질문을 묻지 않는다는 사실이야말로 권력숭배가 그의 내면에서 나오는 목소리임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오웰은 지적한다. 권력, 사기, 전횡을 그가 내심에서 승인하고 원하기 때문에 그 모든 얘기를 하고 있다는 증거다. 역사의 진행이니 추세니 전망이니 하는 소리는 자기가 권력을 원한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오웰은 번햄을 비판한 지 4년 후인 1950년에 합리주의의 미명 아래 사실상 권력을 숭배하는 얼빠진 지식인들에 대한 비판정신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사망했다. 오웰보다 2년 늦게 태어난 번햄은 1987년까지 살았다. 독일의 승리를 점쳤다가 소련의 세계정복을 예언하는 등, 우왕좌왕하던 번햄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냉전기에 자신의 서식처를 찾았다. 트로츠키주의 급진파에서 시작했다가, 스탈린 숭배를 거친 후, 소련을 공격하는 미국 보수주의의 나팔수로 확실하게 전향한 것이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1983년 번햄에게 자유훈장(National Medal of Freedom)을 수여했다. 물론 이와 같은 경우에 자유란 단지 반공주의에 대한 순응을 뜻할 뿐이다.

▲ ⓒ연합뉴스
이재오, 김문수에서부터 신지호에 이르기까지 극좌로 시작했다가 극우 선봉장으로 변신한 사례들은 대한민국에도 넘쳐난다. 나는 이들의 변신을 특별히 탓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내가 오웰을 인용하면서, 그리고 그에게 공감하면서 지적하고 싶은 사실은 이것이 권력욕일 뿐이지 살아남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쩌면 그들의 입장에서는 "살아남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치더라도 그것은 "권력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이지, 배를 채우기 위해 빵을 훔친 장발장의 "살아남기 위해서"와 같은 뜻일 수 없다. 영화 <얼라이브>에 나오듯, 안데스 꼭대기 눈밭에 고립되어 먼저 죽어간 동료들의 시신을 뜯어먹어야 했던 1972년 우루과이 럭비팀의 "살아남기 위해서"와도 같은 뜻일 수가 없다.

지금 한국 사회의 자칭 좌파 중에 10년이나 20년 후에 극우의 나팔수 노릇을 하게 될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는 자체로 파괴적이며 소모적인 질문이기 때문에 묻지 않는다. 누가 그런 의문을 가지고 있다면 그때 가서 알아보라고, 그때까지는 그냥 잊으라고 권하고 싶다. 단, 권력숭배라는 유혹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극좌에서 시작했다가 극우로 전향하는 일에 충격을 받아 상심하지는 말도록 대비는 되어 있는 편이 나을 것이다.

상심이야말로 유혹에 넘어가기 시작하는 첫 단추이기 때문이다. "권력숭배는 현재의 정치적 추세가 계속되리라는 믿음에 거의 어쩔 수 없이 빠지도록 만들기 때문에 정치적 판단력을 흩뜨려 버린다" - 오웰의 관찰이다. 옳고 그름에 개의치 않는 권력숭배자들이라도, 제2차세계대전을 통해 자유사회가 전체주의보다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우월할 수 있다는 사실은 볼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기술관료의 지배가 아무리 추세인 것처럼 보이더라도, 개인적 자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여지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태어날 때부터 권력숭배를 체질로 타고난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자유를 한때나마 원했다가 그 쪽으로 전향하는 사람이라면 다소간의 좌절에 절망해서 모든 희망을 포기했다는 얘기밖에는 되지 못한다.

태생적인 천품이나 성향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갓난애는 고사하고 스무살 청년이나 심지어 칠십세가 가까운 이명박 대통령을 두고도 천품을 알아낸 다음 장차 행보를 예측할 재주가 나에게는 없기 때문에 그 방향으로는 할 말이 전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얘기, 따라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어떤 지적인 결함, 혹시 부지중 빠져있을지 모르는 오해나 착각이나 무지나 강박관념이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려는 지적 용기의 결핍 때문에 이런 자포자기가 생길 수 있다는 측면이다. 장을 바꿔서 이 측면을 추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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