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정부가 쇠고기 시장 개방을 요구하며 한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이명박 정부는 광우병을 이유로 캐나다보다 검역 기준 등을 염두에 둘 때 나을 게 없는 미국산 쇠고기는 수입하면서 캐나다 쇠고기는 수입을 금지해왔다. 사실상 캐나다 정부의 WTO 제소를 자초한 것이다.
주한 캐나다 대사관은 10일 "캐나다 정부는 오랜 무역 현안인 캐나다산(産) 쇠고기의 한국 시장 접근 문제를 놓고 9일 WTO에 협의를 요청했다"며 "캐나다산 쇠고기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쇠고기에 속하며 한국 시장에서 (미국과 비교했을 때) 공정하게 취급해야 한다"고 밝혔다.
캐나다 정부가 WTO에 한국 정부를 제소함에 따라, 양국 정부는 60일 이내에 양자 간 '협의'를 해야 한다. 이 협의 단계에서 양국이 합의에 실패할 경우, 분쟁 해소 절차를 밝게 된다. 캐나다 대사관 측은 "캐나다산 쇠고기 시장 개방 문제를 해결할 때 협의 절차를 충분히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협의 단계에서 한국 정부의 양보를 이끌어낼 자신감을 보인 것.
한국 정부는 "농림수산식품부, 외교통상부 등 관계 부처가 협력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며 원칙적인 입장만 내놓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캐나다산 쇠고기 수입을 막을 논리가 거의 없어서 사실상 캐나다산 쇠고기 수입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우선 미국과 캐나다는 똑같은 광우병 발생국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면서도 캐나다산 쇠고기는 2003년 5월 21일 광우병 발생 시점부터 계속해서 수입하지 않고 있다.
검역 기준도 캐나다와 비교했을 때 미국의 것이 훨씬 더 허술하다. 더구나 국제수역사무국(OIE)도 이미 캐나다를 미국처럼 '광우병 위험 통제국' 등급으로 판정했다. 2008년 한국 정부는 "국제수역사무국의 기준을 따르지 않을 경우 미국 정부가 WTO에 제소할 것"이라며 이것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중요한 근거로 내세웠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할 때,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많은 시민·사회단체는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면 캐나다산, 유럽산 쇠고기를 막을 명분이 없다"고 경고했었다. 한편, 캐나다 정부가 한국 정부를 WTO에 제소하는 이 시점에 일본, 중국, 타이완, 홍콩 등 이웃 나라는 국제수역사무국의 기준을 전혀 따르지 않고 있다.
중국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아예 안 하고 있으며, 일본은 여전히 20개월 미만의 미국산 쇠고기만 수입하고 있다. 타이완, 홍콩은 애초 한국 정부의 기준이었던 30개월 미만의 뼈 없는 살코기만 수입하고 있으며, 모든 연령의 소에서 광우병 위험 물질(SRM)의 제거를 미국에 요구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엄포와는 달리 미국 정부는 이들 일본, 중국, 타이완, 홍콩 등을 WTO에 제소하지 않고 있다. 물론 한국 정부를 WTO에 제소한 캐나다 정부도 '국제수역사무국 기준을 따르지 않는다'며 이들 나라를 제소할 움직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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