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9일 "2월 현재 취업자는 지난해 2월에 비해 14만2000명이 줄었는데, 그 대부분이 40세 미만 여성"이라고 밝혔다.
39세 이하의 여성 23만2000명이 1년 사이 일자리를 잃었다. 여성 노동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이 경기 악화라는 외부 요인과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 정책에서 여성 실업에 대한 대안은 찾기 어렵다. 그나마 있는 고용 정책도 대운하 등 남성 중심일 뿐이다. 관련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 간신히 넘었던 50% 대 다시 무너져
은수미 연구위원은 이날 한국노총이 주최한 '여성고용정책 토론회'에서 "최근 경제 위기가 여성에게, 그 가운데서도 젊은 여성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취업자가 줄어드니,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도 2006년 50.2%로 정점을 찍은 후 2년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지난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49.9%로 어렵게 돌파했던 50% 선 아래로 다시 무너져 내렸다.
권혜자 한국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은 "남성은 경제 위기 속에서도 상용직 고용이 32만6000명 증가해 자영업자와 임시고용의 감소분을 상쇄하고 있지만 여성은 똑같이 자영업자와 일용직 고용이 줄어드는데 상용직 고용마저 정체 상태"라고 분석했다.
▲ 경제 위기가 여성에게 먼저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지난 1년 사이 남성 취업자가 2000명 줄어든 데 반해, 여성 취업자는 무려 13만9000명이 줄었다. 7배 차이가 난다. ⓒ프레시안 |
취업자 수는 여성이 더 많이 줄었는데 실업자 통계엔 여성이 없다?
주목할 점은 취업자 통계에서는 여성 취업자가 남성에 비해 확연하게 줄어들었는데, 실업자 통계에서는 남성 실업자가 여성보다 더 많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지난 1년 사이 남성 실업자는 7만2000명이 늘어 13.5% 증가율을 보였지만, 여성 실업자는 3만4000명이 늘어 11.9%의 증가율을 나타냈다.
은 연구위원은 "일자리를 잃은 여성의 대부분이 비경제활동 인구로 유입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권 부연구위원도 "늘어난 비경활 인구 31만 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육아 및 가사에서 증가했다"며 이 같은 분석에 동의했다. 당연히 "경제 위기가 여성의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통계적으로 보면 은폐"(권혜자 부연구위원)되고 있다.
문제는 "실직한 여성이 곧바로 노동시장에서 이탈해 버리는 경향이 수십 년 째 지속되고 있다"(은수미 연구위원)는 것이다. 이른바 '경력단절' 현상이다.
"불행한 '88만 원 세대', 더 불행한 '88만 원 세대의 여성'"
은 연구위원은 "최근 20~29세 여성의 경우 경제활동 참가율이 OECD 평균에 약간 미달하는 수준으로 개선됐지만 30~49세는 터키와 멕시코 다음으로 낮다"며 "이는 경력단절 현상의 효과"라고 설명했다.
2007년 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 여성이 30~34세에 겪는 경력단절 현상이 나타나는 나라는 일본과 터키뿐이었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여성의 고용이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그나마 여성 취업율을 높이는데 일조했던 젊은 여성들이 취업난으로 노동시장 진입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 아래 청년 인턴제 등 질 나쁜 임시직 일자리가 청년층의 실업난 해결책으로 나오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은 연구위원은 "여성의 경우 예전에도 경력단절을 전후해 상용직에서 임시직, 일용직으로 전환하고 있고 자영업주나 돈을 받지 않고 일하는 무급근로 종사자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임시직, 일용직은 사회보험 혜택을 받기 어렵고 자영업주는 아예 배제되고 있다.
결국 지금 노동시장에 처음으로 진입하는 젊은 여성의 경우 '청년 인턴'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해 결혼 후 일정한 경력단절 기간을 겪은 뒤, 다시 임시직이나 일용직 등으로 재진입해 평생을 '질 나쁜' 일자리에서 노동을 해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88만 원 세대보다 더 불행한 '88만 원 세대의 여성'인 것이다.
물론 노동과 함께 가사나 육아 등을 책임지는 경향이 높은 여성의 경우 단시간 근로가 오히려 '매력적'일 수 있다. 은 연구위원은 "문제는 사회적 안정망의 존재 여부"라고 말했다.
그는 "유럽의 경우 단시간 근로자도 사회적 안전망의 혜택을 받고 임금 차별이 거의 없으며 원할 경우 정규직 전환이 가능하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2008년 기준 파트타임 근로의 겨우 6.3%만이 사회보험 적용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운하로 일자리 창출? 여성 고용 대책은 MB정부에 없다"
▲ 그런데 현 정부의 정책에서 여성에 대한 고민은 전혀 찾아보기 힘들다. 녹색뉴딜사업 등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통해 창출하겠다는 일자리는 대부분 남성 노동자를 위한 것이다. ⓒ프레시안 |
황선자 연구위원은 "녹색뉴딜사업 등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통해 창출하겠다는 일자리는 대부분 남성 노동자를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쉽게 말해 '삽질' 기술이 필요한 일자리에 여성의 자리는 없다는 것.
반면 보건의료, 보육, 교육 등 사회적 서비스 분야는 상대적으로 여성의 진입이 쉽다. 더불어 공공 사회서비스 확대의 효과도 만들어낼 수 있다. 황선자 연구위원은 "정책 설계에 따라 이런 분야에서도 충분히 유급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할 수 있지만, 이명박 정부가 안 하는 것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은수미 연구위원도 "여성 일자리 대책은 양의 증가 이상으로 질의 개선이 긴급하다"며 "여성 일자리의 질적 개선은 전체 일자리의 질 개선의 지표가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괜찮은 일자리'의 조건으로 △사회보험이 보장된 일자리, △상용직 일자리, △적절한 급여와 근로조건이 보장된 일자리, △일-가정 양립이 가능한 일자리 등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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