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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행정관은 '재수없게'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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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행정관은 '재수없게' 걸렸다

[김종배의 it] 강희락 '현실론'과 접대비 실명제 폐지

정부가 부산하다. 청와대 행정관의 성 접대 의혹사건이 불거진 후 여기저기서 '공직기강 확립' 구호를 제창한다.

청와대는 3월 30일부터 100일 특별감찰에 들어갔고, 행정안전부는 지방공무원에게 고급음식점과 유흥업소 출입 자제령을 내렸으며, 국세청은 4급 이하 직원들에게 골프 자제령을 발동했다. 경찰도 예외가 아니다. 직원들에게 유흥주점과 고급음식점 출입금지령을 내렸다.

당연한 조치다. 100일 한시 감찰이 아니라 365일 상시 감찰을, 출입자제령이 아니라 금지령을 내려도 모자랄 판이니 정부 조치는 지극히 당연하다.

근데 왜일까? 빈수레가 덜컹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고, 겉 다르고 속 다르다는 인상을 떨칠 수가 없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정부가 1월 국무회의를 열어 접대비 실명제를 폐지하는 내용의 법인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고, 3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건당 50만원 이상의 접대비를 지출할 경우 접대 상대방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접대목적 등을 기재하도록 한 규정을 이른바 '규제개혁' 차원에서 없애버린 것이다.

통이 컸다. 접대비 실명제 개정을 건의했던 전경련도 이렇게 파격적으로 요구하지는 않았다. 다만 접대비 실명제 요건을 건당 5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완화해달라고 건의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한 발 더 나갔다. 통 크게 규정을 아예 없애버린 것이다.

정부의 이런 통 큰 조치가 어떤 그늘을 만들어냈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청와대 행정관 등을 접대한 케이블업체의 팀장은 술값과 이른바 2차비용 180여만원을 법인카드로 긁었다. 49만원씩 쪼개지 않은 채 통 크게 한 번에 쓱 긁어버렸다.

어땠을까? 청와대 행정관 등이 경찰의 우연한 단속에 걸리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물어보나 마나다. 어떨까? 정부의 '접대비 실명제' 폐지 덕에 통 크게 접대하고 속 편히 접대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물어볼 필요가 없다.

강희락 경찰청장이 그랬다. 청와대 행정관 성 접대 의혹사건을 거론하면서 "재수 없으면 걸린다"고 했다.

그의 말이 맞다. '도덕'의 잣대가 아니라 '현실'의 잣대를 갖고 그의 말을 평가하면 부정할 수 없다. 걸리는 사람이 바보다. 정부가 앞장서서 접대 받은 흔적을 세탁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는데도 걸린다면 그건 우연의 결과가 되고 재수 옴 붙은 현상이 된다.

아이러니다. 아니, 허무개그라고 하는 게 더 맞겠다. 스스로 독을 깨놓고선 그 독에 물을 퍼담으라고 하니 실소 외에 어떤 표정을 지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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