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말년, 한나라당 대선후보인 이명박 후보가 '경제살리기'를 최우선 공약으로 내건 것에 대해 "내 임기 동안 주가가 3배 오르고, 국민소득이 2만 달러가 됐다"고 반박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종종 '경제지표'를 들어 경제가 나쁘지 않다는 점을 역설하곤 했다.
경제지표가 꼭 실제 경제 상황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제상황이 좋다'는 주장에 대다수 서민들의 속이 뒤집어졌던 것은 바로 이런 '경제지표'와 '현실'의 괴리를 보여주는 사례다.
'경제를 살리겠다'며 정권을 잡은 이명박 대통령도 본인이 "경제를 망쳤다"고 비판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3월 사상 최대 무역수지 흑자 기록, 1600원 대 턱밑까지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이 1300원 대로 하락한 사실, 주가가 다시 1200대로 회복된 점 등을 들어 "한국경제 상황이 비교적 양호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지표만 보면 지난해 4사분기 경제성장률이 환란 이후 최악인 -5.6%를 기록하는 등 연말까지만 해도 추락할 것 같았던 한국경제에 갑자기 훈훈한 봄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속사정을 살펴보면 결코 기뻐할 일이 아니다. 2009년 3월 '사상 최대 무역 흑자'를 기록한 것은 우리 경제가 급작스럽게 호전돼서가 아니라 현실과 경제지표 사이에 존재하는 '시차'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명박 정부는 호전된 경제지표를 크게 부각시켜 일종의 '환각효과'를 확산시키려는 것처럼 보인다.
수출보다 수입 줄어 무역수지 흑자
1일 지식경제부가 발표한 '3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3월 무역수지는 46억1000만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달 수출이 283억7000만 달러로 1년 전보다 21.2% 준 데 반해 수입이 237억6000만 달러로 36.0%나 급감했기 때문이다. 3월의 수입감소율은 1998년 10월(-39.3%) 이후 가장 큰 폭이었다.
수입이 준다는 것은 그만큼 내수가 위축됐다는 얘기다. 특히 우리나라 수입의 상당부분이 수출품 생산을 위한 원료나 부품임을 감안하면 결코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공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선박 수출 빼면 수출 32.5% 감소
수출 증가율은 -21.2%로 지난해 11월 -19.5%, 12월 -17.9%, 올해 1월 -34.2%, 2월 -18.3%를 기록한 데 이어 5개월 연속 두자릿수 마이너스를 기록하게 됐다.
그러나 -21.2%도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수치가 아니다.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이 줄었다. 바로 우리 수출의 15% 정도를 차지하는 선박 때문이다.
선박의 경우, 선박을 수주한 뒤 실제 인도하기까지는 2-3년까지의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수출액으로는 선박을 인도하는 시점에 한꺼번에 잡힌다. 따라서 3월 선박 수출액 41.1억 달러는 조선업이 최대 호황기였던 2006년께 수주한 물량이다. 지난 4분기에 수주한 물량은 1척에 불과하다.
게다가 조선업체들은 계약과 동시에 수주액의 대부분을 이미 선물환으로 팔아버렸다. 이를 받아준 은행은 해외에서 단기 차입을 했다. 이 경우 조선업체들은 인도시 들어오는 달러로 은행들에게 갚으면 되니까 환율변동에 따른 리스크가 없다. 반면 은행들은 환 리스크를 대신 떠안고 외화를 단기차입해 조선업체에 넘기는 것이다. 따라서 조선업체의 선박수출액은 무역수지에는 수출액으로 잡히지만 실제 우리 외환시장에 들어오는 돈이 아니다. 들어오는 순간 바로 은행이 단기차입한 외채를 상환하느라 빠져나가는 돈이다.
홍종학 경원대 교수는 "3월 수출액은 선박을 제외해야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며 "선박 수출액을 빼면 수출 감소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3월 수출을 품목별로 보면 선박류만 61% 증가했을 뿐 컴퓨터(-50%), 석유제품(-48%), 자동차(-46%), 반도체(-38%), 가전(-33%), 무선통신기기(-20%) 등 나머지 품목들은 모두 크게 감소했다. 선박류를 뺄 경우, 3월 수출 감소액은 117.3억 달러로 1년 전에 비해 32.5% 감소한 규모다.
홍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이 올해 150억 달러~200억 달러 무역수지 흑자가 날 것이라고 얘기했지만 올해 선박 수출액이 550억 달러 정도임을 감안하면 실제로 300억 달러 이상 적자가 난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현재 영국을 방문 중인 이명박 대통령은 현지시간으로 31일 저녁 미국의 케이블 경제뉴스 채널인 CNBC와 인터뷰에서 "지금 세계 무역이 많이 침체된 데 비해 한국수출은 지난 1월부터 2월, 3월까지 비교적 안정세를 유지해 아마 올해 연말에는 150억 달러~200억 달러 가까이 무역수지 흑자가 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우리 경제상황이 양호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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