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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연리스트'와 '사이버모욕죄', 그리고 '용산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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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연리스트'와 '사이버모욕죄', 그리고 '용산참사'

[김종배의 it] 뒤틀어진 법치, 참으로 갑갑하고 참으로 희한하다

'성매매 특별법'이 아니라 '형법상 강요죄'라고 한다. 경찰이 '장자연 리스트' 수사선상에 오른 사람들에게 '성매매 특별법'이 아니라 '형법상 강요죄(교사 또는 방조)'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해는 한다. '성매매 특별법' 위반행위를 입증하려면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당사자가 성행위가 있었다고 인정하거나, 성행위의 흔적과 대가를 찾아야 한다. 쉽지 않다. 장자연 씨는 이미 고인이 됐다. 경찰이 남성 4명의 DNA를 확보했다고 하지만 그것이 성행위를 입증하는 직접적 물증이 되기는 어렵다. 게다가 사안의 성격상 성행위의 금전적 대가가 오갔을 가능성은 극히 적다. 경찰이 '성매매 특별법' 대신 '형법상 강요죄'를 들여다보는 사정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만하다.

일단 이렇게 이해하고 묻자. 그럼 잘 될까? '형법상 강요죄' 혐의는 입증할 수 있을까?
ⓒ뉴시스

그렇지가 않나 보다. 이명균 경기경찰청 강력계장이 일찌감치 선을 그었다. "고인이 문건만 남기고 사망한 상태에서 형법상 강요죄를 확인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이명균 강력계장 말 그대로다. '강요당한' 주체 장자연 씨는 진술을 할 수 없다. 이미 고인이 된 터라 어떻게 강요를 당했고 어떤 압박감을 느꼈는지 구체적으로 진술할 수 없다. '강요한' 주체들이 발뺌할 것이 뻔한 상황에서 '강요당한' 주체의 증언까지 확보할 수 없기에 혐의 입증은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니다.

"잠자리를 강요당한 적 있다"는 표현이 '장자연 문건'에 담겨있는 점, 그리고 참고인으로 경찰에 출석한 동료연예인들이 잠자리 강요가 있었다고 진술한 점이 한 가닥 실마리가 될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장자연 문건'에 '잠자리 강요'를 한 주체가 특정되지 않았으면 아무 소용없다. 동료연예인들이 잠자리 강요를 느꼈다고 해도 그것을 장자연 씨의 당시 심리상태와 동일시할 수 없기에 소용없다. 이런 글귀와 진술은 기껏해야 정황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

마지막 방법, 즉 장자연 씨 소속사 대표 김모 씨가 귀국해 성행위 강요와 '포괄적 대가'에 대해 이실직고 하는 경우를 상정할 수 있지만 이럴 가능성은 현재로선 없다. 그는 귀국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추리다보니 할 수 있는 말이 하나 밖에 안 남는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술 접대와 잠자리 강요에 괴로워하던 한 여성이 목숨까지 끊었는데, 그리고 이런 상황이 빚어지는 과정에 이른바 사회유력인사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그냥 덮을 건가?

갑갑증을 극한수치로 끌어올리는 물음임에 틀림없지만 그래도 호흡을 가다듬자. 사법처리만이 징치 방법인 것은 아니다. 사회적 규탄도 징치의 한 방법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당사자들을 고개 숙이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 또한 성립될 것 같지 않다. 경찰이 '출장조사'를 한다고 하지 않는가. 사회 유력인사들을 경찰서로 불러 포토존에 세우는 게 아니라 세상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묻겠다는 것 아닌가. 경찰이 실제로 이렇게 하면 '장자연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고, 그 사람들의 행위를 확인할 수 없다. 그들이 사법처리 대상에서 빠져나가는 순간 그들이 벌인 행위는 '사생활'이 된다. 경찰이 이름과 행위를 공개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경찰이 공개하지 않은 상태에서 세간에 흘러다니는 '리스트'만 믿고 실명 비판을 하면 영락없이 명예훼손 소송에 휘말린다. 사회적 징치 또한 법률적 속박에 갇히는 것이다.

참으로 갑갑하고 참으로 희한하다. '장자연 리스트' 수사가 법의 한계와 법치의 허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갑갑하고, '장자연 리스트' 수사와 대비되는 다른 사건이 법의 한계를 뛰어넘는 창의성과 과감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희한하다.

정부가 추진한다. '사이버모욕죄'를 신설해 모욕감을 느낀 당사자를 제쳐놓고 국가가 직접 사법처리하는 방안을 제도화하려고 한다. 어떤 강요행위는 피해자가 입을 열 수 없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을 판인데 어떤 모욕행위는 피해자가 호소하지 않아도 국가가 대리 징치하려고 한다.

검찰이 규정했다. '용산 참사'를 수사한 끝에 누가 화염병을 던졌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던진 화염병으로 불이 나 사람이 죽었으니 공동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어떤 부적절 행위는 당사자가 누구인지 특정되지 않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판인데 어떤 호소 행위는 똑같이 행위자가 특정되지 않았는데도 국가가 나서 도매금으로 처벌했다.

상식과 통념이 바라본 법과 법치는 이렇게 희한하다.

* 이 글은 뉴스블로그 '미디어토씨(www.mediatossi.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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