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민주정부, 인권정부임을 자부했지만 국가보안법 폐지 실패, 집시법 개악 등이 보여주듯이 사상의 자유, 집회의 자유에 있어서는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에 관한 한 괄목할 만한 신장을 이루었다. 이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난도질해온 보수언론들을 읽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민주화의 최대 수혜자는 역설적이게도 민주화에 부정적이었던 보수언론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 같은 언론의 자유까지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과거 군사독재와 달리 이 같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과 공격이 원칙과 법치주의라는 이름아래 법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예전처럼 정보기관의 불법체포와 지하실에서의 고문 등에 의해서가 아니라 법의 이름아래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종의 '법치파시즘'내지 '사법파시즘'으로 나아가고 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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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권 들어 유독 늘어난 것이 바로 법치주의 타령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1월 12일 라디오 연설에서 MB악법 처리를 둘러싸고 일어났던 여야간 폭력적 대립과 관련, "온 국민이 지켜야할 법을 만드는 국회에서 법을 무시하고 지키지 않는다면 과연 어떻게 법치주의가 바로 설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사실 MB정권이 MB악법을 제정하는 이유로 들어 나온 것이 바로 법치주의이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지난 해 10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불법시위에 대한 집단소송제도를 도입해 '헌법 위에 떼법'이라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법치주의를 확립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 2월 대표 연설에서도 "불법시위에 관한 집단소송제와 사이버모욕죄 도입, 도시 게릴라처럼 복면을 착용하고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폭력시위도 근절"함으로서 "법치주의를 확고하게 세우겠다"고 밝혔다. 지난 용산 참사역시 '법치주의 확립 과정에서 빚어진 불가피한 사고'라는 것이 청와대의 생각이다.
이명박 정부만이 아니다. 촛불시위가 뜨거웠던 지난해 여름 보수적인 대한변협은 "흔들리는 촛불 넘어 길 잃은 법치주의를 우려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법치주의라는 이름아래 촛불시위를 공격했다. 인권과 민주주의의 보루가 되어야 할 법치주의가 형식만의 법치주의로 전락하여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공격무기로 사용되고 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주목할 것은 이 같은 '형식적 법치주의'와 '사법파시즘'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비판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이 충분히 보수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정계로 복귀한 보수적 정치인이자 대법관출신의 실력 있는 법조인인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이다.
이 총재는 미네르바 구속 당시 "실정법을 위반하기만 하면 처벌 대상으로 보는 형식적 법치주의는 국가 독재시대의 유물이고 이제는 행위의 의도와 내용 등을 입법취지에 비춰보고, 사회적 정의 관념에 부합하는지 가려 처벌 여부를 결정하는 실질적 법치주의 시대"라며 "미네르바 논평의 주된 의도가 허위사실을 유포해 경제상황을 혼란스럽게 하고, 내용 또한 주요내용이 허위사실이었다면 모를까, 한두 가지 허위사실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처벌하는 것은 실질적 법치주의에 반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사실은 나치의 파시즘의 많은 부분들이 형식적 법치주의에 기초했었다는 점이다. 즉 파시즘의 반인류적 범죄 중 상당부분은 단순한 폭력이 아니라 법에 기초해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
법치파시즘, 사법파시즘은 법의 이름아래 합법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어떤 면에서는 단순한 폭력에 기초한 물리적 파시즘, 원시적 파시즘에 비해 더욱 위험하다. 사실 중요한 것은 법을 이용한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 그자체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그 같은 공격이 법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다수 국민들이 이 같은 공격에 대해 무덤덤하고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많던 촛불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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