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 조직을 21.2% 축소하겠다는 행정안전부의 인권위 직제 개정령안이 지난 26일 차관회의에서 원안대로 통과했다. 오는 31일에는 국무회의에 인권위 축소안이 상정될 예정이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안경환)는 27일 긴급 전원위원회를 열고 "이번 일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사태의 합리적 해결을 위해 이명박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인권위는 "현재의 직제 개정령안이 시행될 경우 인권위 업무 공백이 불가피하고, 이것은 한국 사회의 인권상황 후퇴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며 "인권위 위원장이 조속히 대통령을 면담해 현 상황에 대해 보고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 인권위는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는 등 행안부가 강행하는 이번 개정령안에 대한 법적 대응을 밟겠다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국무회의 의결 이전에 사태가 합리적으로 해결되길 기대한다"며 "우리는 독립성과 자율성 존중을 전제로 모든 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협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행안부 장관, '협의 여지 없다, 기다릴 수 없다'고만 말해"
전원위원회가 끝난 뒤 열린 기자 브리핑에서 안경환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 면담을 요청한 점을 두고 "인권위는 대통령에 대한 특별 보고 절차가 있고, 취임 뒤 여러 경로를 통해서 업무보고 요청을 했지만 지금까지 대면 보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안경환 위원장은 "인권위 역시 정부가 강조하는 행정의 효율성에 대해서는 깊이 공감하고 있다"며 "그렇지만 행안부에서는 법이 요구하고 있는 관계 기관과의 협의를 전혀 거치지 않았고, 내용상으로도 위원회 활동을 중요하게 제약하는 안을 제시해 결과적으로 독립성 자체를 훼손하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안 위원장은 "행안부 장관과 수 차례 연락을 했지만, 더 이상 협의할 여지가 없다, 기다릴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고 덧붙였다.
26일 차관회의에 참석했던 문경란 상임위원은 "행안부는 계속 과학적인 검증을 거친 자료라고 얘기하고 있다"며 "만약에 그렇다면 왜 처음에는 50% 감축을, 그 다음에는 30%, 지금은 21.2% 감축안을 제시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문경란 위원은 "한 기관의 조직과 업무 개편에 관한 논의를 할 때 이번처럼 기관간의 협의없이 진행된 적은 없었다"며 "더군다나 차관회의에서 참석하고 보니 정부 차원에서 국가인권위원회 업무의 독립성과 역할에 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어 안 위원장은 "국제 사회는 지난해 정부 출범 당시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 기구로 개편하겠다는 안을 발표한 것을 두고 한국 인권위의 독립성이 위협받는다고 인식했다"며 "이번에 다시 절차에 하자가 있는 방식으로 개편안이 통과되면 정부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국제 사회에서 많은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독립성 침해는 저희가 양보할 수 없는 최후의 보루"라며 "국제 사회에서 갖고 있는 국가적 책무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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