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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연 리스트'의 원조 성종…그의 말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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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연 리스트'의 원조 성종…그의 말로는?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酒色 밝히는 권력자를 향한 경고

최근 한 연예인이 성 상납과 같은 성 착취를 당했다는 이유로 목숨을 끊어 논란이 되고 있다. 적지 않은 권력자들이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라고 불리는 데 이름이 올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하긴, 형식이야 어떻든 권력이 성에 집착해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서울에서 이른바 '밤 문화'가 가장 발달한 곳이라면 누구나 서울 강남구의 선릉역 일대를 떠올릴 것이다. 바로 이곳엔 선릉이 있다. 그럼, 선릉에 누워있는 왕은 누구일까? 바로 조선의 제9대 왕(1457~1494) 성종이다. 공교롭게도 성종은 자타가 공인하는 '밤의 황제'였다.

▲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조선의 제9대 왕 성종의 무덤인 선릉. ⓒ문화재청
오죽하면 당시 사람이 '주요순 야걸주'라고 평했을까? 실제로 그는 낮에는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였던 요, 순 임금처럼 정사를 돌봤고, 밤에는 중국 하나라의 걸, 은나라의 주 임금처럼 주색잡기를 밝혔다. 실제로 그는 <경국대전>을 반포하는 등 조선 전기의 문물제도를 완성했지만, 한편으로는 밤마다 '밤의 황제'다운 나이트라이프를 즐겼다.

성종은 거의 밤마다 궐 안에서 곡연을 열어 후궁, 기생 등과 어울렸다. 잘 알려진 대로, 그는 25년 재위 기간 동안 세 명의 왕후와 아홉 명의 후궁을 맞아 16남 12녀를 낳았다. 어찌나 자식이 많았던지 나중에는 궁궐에서 기를 수가 없자 궐 밖의 여염집에서 살게 할 정도였다.

성종은 첫 번째 왕후였던 한명회의 딸 공혜왕후 한 씨가 일찍 세상을 뜨자, 두 번째 숙의 윤 씨를 왕후로 맞았다. 이 윤 씨가 바로 연산군의 어머니다. 그는 윤 씨를 두고도 형인 월산대군과 함께 호색한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특히 정소용, 엄숙의 등 후궁은 그의 각별한 총애를 받았다.

이런 성종의 나이트라이프는 결국 사단이 났다. 성종을 질투한 윤 씨가 비상이 든 주머니 등으로 '방양'이라는 저주 의식을 치르다 발각돼 폐비가 돼 쫓겨난 것. 결국 윤 씨는 사약을 받기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윤 씨의 아들 연산군을 역사상 가장 타락한 왕으로 만든 '폐비 윤 씨 사건'이다.

성종의 재위 기간이 25년으로 긴 세월 같지만, 그가 죽은 나이는 서른여덟 살에 불과하다. 불행한 가족사 못지않게 그의 죽음도 나이트라이프의 연장선상에 있다. 사망할 무렵의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면, 성종 25년 12월 22일 "이질로 편찮은 데다 부종을 앓았다"고 그의 병세가 처음 나온다. 이튿날인 23일 의관 송흠은 그의 진찰 결과를 이렇게 보고한다.

"성상의 몸이 몹시 여위셨고 맥이 급하게 뛰어 한 호흡에 일곱 번이나 됩니다. 얼굴은 누렇게 시들었고, 허리 밑에 적취(積聚)가 있으며, 내쉬는 숨은 많고 들이시는 숨은 적으며 입술이 건조합니다. 청심연자음(淸心蓮子飮), 오미자탕, 청심원(淸心元) 등의 약재를 처방하고자합니다."

성종의 대표적인 증상은 체중 감소, 갈증, 부종, 배꼽 밑의 종기 등으로 당뇨병 말기의 만성 신증후군과 유사하다. 서양 의학의 당뇨병을 한의학에서는 '소갈(消渴)'이라고 한다. 소갈은 상중하 세 종류로 나뉘는데 그중에서 성종이 앓은 소갈은 하소로, 흔히 신소(腎消)라 부르는 것이다. 신소는 신장의 기능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다시 성종의 병세를 보자. 성종을 특히 괴롭힌 것은 배꼽 밑의 작은 종기, 적취(積聚)였다. 성종은 문안을 온 내의원 윤원로 등에게 "배꼽 밑에 작은 종기가 있는데 조금씩 아프고 빛깔도 약간 붉다"라고 고통을 호소한다. 이후 성종은 특별히 손을 써보지도 못하고 급격히 증세가 악화돼 24일 갑작스럽게 숨을 거둔다.

마침 한의학에서 최고의 의서로 꼽히는 <황제내경>에 버금가는 화타가 지은 <난경> 56편에 성종의 증세에 대한 설명이 있다. 아랫배에 있는 적취는 신장 부위에 있다고 해 신적(腎積)이라고 한다. <난경>에 따르면, 신적은 신수가 부족해서 생긴다. 신수는 바로 신장의 혈액 등을 말한다.

이 신수가 고갈되면 혈액에서 물, 단백질 등으로 구성된 혈장이 줄고 혈구만 남는다. 이 혈구가 피부 밑에 쌓여서 응고된 게 바로 적취인 것이다. 이런 <난경>의 설명은, 신장에 문제가 생겨 단백질 등이 걸러지지 못하고 오줌으로 배출되면 결과적으로 혈액 속에서 혈장 성분이 부족하게 돼 똑같은 증세가 나타난다, 이런 식의 서양 의학의 설명과 대동소이하다.

처방을 보면 성종이 소갈, 즉 당뇨병으로 신장에 문제가 있었음을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다. 청심연자음은 소갈이 왔을 때 처방하는 대표 약물이다. 연밥씨로 만드는 청신연자음은 소변을 자주 보는 것을 막아서 몸 안의 수분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신장에서 걸러지지 못한 단백질을 몸속에 잡아두는데 일정 부분 효과가 있었으리라.

오미자탕도 마찬가지다. 오미자는 다섯 가지 맛 중에서 신맛이 가장 우세하다. 오미자를 쪼개 보면 안이 돼지 콩팥처럼 생겼는데, 실제로 신장의 기능을 돕는데 큰 효과를 발휘한다. 그러나 이런 처방도 제 기능을 못하는 신장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럼, 이렇게 성종의 신장이 나빠진 원인은 무엇일까?

원인을 한 가지로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려우나 과다한 주색을 즐긴 성종의 방탕한 생활이 큰 원인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한의학에서 신장은 성 능력의 상징이다. 결혼한 신랑의 발바닥을 때리는 풍습도, 발바닥에 뿌리를 둔 신장 경락을 자극해, 첫날밤 신랑의 성 능력을 자극하려는 것이다. 성종은 과다한 주색은 이런 신장에 큰 부담을 줘 결국, 죽음을 불렀다.

▲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프레시안
'밤의 황제' 성종의 호색 행각은 톡톡한 대가를 치른다. 자신은 한창때인 서른여덟 살의 나이로 죽고, 또 아들이 역사상 최악의 왕으로 기록되는 한 원인을 제공한다. 이렇게 나이트라이프로 호된 일을 겪고도 여전히 그는 환락의 거리를 지키고 있다. 그는 자신의 전철을 밟는 이 시대의 권세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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