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학 신입생 중 4000여 명이 입학사정관 제도를 통해 대학에 합격했지만 대부분 수험생과 교사들은 이러한 사실이 금시초문이라고 한다. 아직은 일부에게만 알려져 있는 입학사정관제는 일부 교육 운동 진영에서도 도입하기를 바랐던 정책이다. 장기적으로 바람직하고 현재로서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현재로서 반대를 하면 과거 점수제로 돌아가자는 말이 되지만 그렇다고 이 제도를 찬성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우선 오랫동안의 교육 운동 경험으로 볼 때 경쟁이 완화되고 서열이 완화되지 않은 입시 정책은 번거롭기만 할 뿐 탁상공론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정한 대입 제도가 도입 취지를 살리려면 제도 적용의 조건과 여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대학입시와 관련해 새로운 제도가 도입된다는 것은 자칫하면 새로운 유형의 사(死)교육을 불러오거나 꼬리가 몸통을 뒤흔드는 격으로 고교 교육 과정을 왜곡시키는 것을 이미 여러 차례 봐왔기 때문이다. 이번엔 그런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입학사정관 제도가 올바로 실행되려면 고등학교에서 교사의 평가권을 강화시켜 내신(학생부의 교과 성적)과 비교과 영역에서 학생에 대한 다양한 평가 내용을 학생부에 담도록 하고, 이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대학은 이를 적극 반영하는 '선순환' 구조를 이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 정보에 목마른 강남 지역 학부모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진학컨설팅과 고급 사교육을 과연 외면할수 있을까? 지난 2월 입시학원 설명회에 참가한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2010 대입전망 및 성공 재수전략을 경청하고 있다. ⓒ뉴시스 |
대학입학 경쟁이 심하고 서열화된 상황에서는 입학사정관에게 보다 객관적이거나 엄격한 조건을 요구할 것이다. 입학사정관의 선발 행위를 사회 전체가 신뢰해야 하는데 대학에 대한 신뢰는 그리 높지 않다. 그러다 보면 입학사정관제의 재량권이 위축될 것이다.
입학사정관제는 선발 경쟁보다는 선발 이후 교육 경쟁을 중요시하는 나라, 합격한 학생들의 대학 졸업률이 50% 안팎에 이르는 나라에서 주로 할용한다. 입학사정관이 적당히 뽑은 후 치열한 교육 경쟁이 전제돼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선발이 곧 졸업이라 상황이 다르고 명문대 입학이 곧 기득권 기차의 탑승 여부를 가르는 것이어서 이 제도가 놓일 맥락이 다르다.
둘째, 고등학교의 평가권과 특성화가 존중되어야한다. 고등학교에서 교사가 평가한 것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하지만 대학에 많이 보내는 것이 능력으로 인정되고 거의 모든 고등학교가 입시에 올인하는 상황에서 고교 특성화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현재로서는 입학사정관이 무엇을 기준으로 학생의 잠재성을 무엇으로 판단하겠다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아무래도 성적과 리더십, 잠재력 등일 텐데 이 제도를 운용하는 미국의 경우 학력이 고만고만한 학생이 있을때 기왕이면 리더십, 봉사 활동, 특기 등을 겸한 학생, 그 대학이 중요시하는 가치-다양성 등이 학생이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각오를 담은 에세이등을 보고 종합 판단하고 입학에 절대적 권한을 가졌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불과 몇 달 밖에 남지 않았고 해당학과 교수들과 함께 한다고 하는데 일단은 성적이 기준이 될것이지만 수험생들은 입학사정관제가 무엇을 중요시하는지도 모르고 있다. 답답한 일이다.이에 자칫하면 입학사정관에 기준에 맞추기 위해 고교 과정이 왜곡될 우려가 있다. 일테면 고만고만한 봉사 활동의 차별화를 위해 일부 외국어 고등학생이 아프리카로 봉사 활동을 떠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몇 년 전 대입 논술이 도입되자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논술 실력을 단시간에 습득하기위해 학원으로 몰려가 서울대 자연계 심층면접에서 '존경하는 한국의 과학자를 말해보라'는 면접관 질문에 거의 모든 수험생이 장영실을 1순위로 하는, 순위가 고착화된 답변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는 외워 쓰는 논술과 면접의 실상을 보여준 것으로 꼬리가 몸통을 뒤흔든 예다. 결국 입학사정관이 중시하는것을 미리 준비하기 위해 학교 현장이 다시 한 번 요동칠 우려가 없지는 않다.
제발 학생 신분과 본분에 어긋나는 기준일랑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말았으면 한다. 그러나 정보에 목마른 강남 지역 학부모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진학 컨설팅과 고급 사교육을 과연 외면할수 있을까? 대학 입시도 부익부 빈익빈, '서울 강남 지역과 강북의 대입 격차는 학부모의 정보력 차이이니 강북 학부모님도 분발해 달라'는 강북의 한 교장선생님의 회한섞인 당부는 이 점에서 의미심장한 것이다.
입학생 선발에 절대 권한을 가진 미국의 입학사정관의 경우 30~50대로서 대체로 보수적이라고 한다. 입학 사정의 기준은 '이 학생을 선발했는데 무리가 없을것 같다'가 판단 기준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대학 측이 입학사정관을 평가하는 기준도 엄격해 입학사정관이 1년에 몇 명을 만났나, 만난 학생 중 몇 명이 지원했나, 지원자 중 몇 명의 입학을 허락하고, 입학을 허락한 학생 중 몇 명이 실제 대학 등록을 했나, 마지막으로 등록한 학생의 1년간 학업 성적이 어떠한가 까지 감안하여 입학사정관의 재계약과 연봉이 정해진다고 한다. 한국 대학은 입학사정관을 대학의 필요라기보다 정부가 관심을 갖고 예산을 지원하니 비정규직으로 선발하고 있다. 현재 290명의 입학사정관이 있고 90%가 비정규직이라고 한다. 만약 정부의 예산 지원이 없어지면 대학들이 어떻게 할 것인지 궁금하다.
부작용부터 문제 삼아 제도를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얼마전 특수목적고나 각종 올림피아드 경시 대회에서 수상한 학생을 우대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일반계 고등학생 선발 비중을 늘리겠다고 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포항공대가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고교등급제를 하겠다고 시사한 것은 이명박 정부가 3불 폐지를 우회하여 고교등급제를 하기 위한 명분으로 입학사정관제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긴장하게 만든다.
아직은 탁상공론식으로 정책의 장단점을 말하고 성패를 판단하기 이르다. 다만 제도의 점진적인 도입과 정착을 통해 잠재력 있는 학생에게 기회를 주고 더 나아가 대입 경쟁을 완화하고, 고등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이룰 수 있도록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듯 조심스레 제도를 정착시키고 동시에 대학 서열과 입학 경쟁 완화에 손을 대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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