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 주체의 됨됨이와 로비 대상의 면면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한다. "청와대와 권력 생리에 훤한" 박연차 회장이 지난해 6월 청와대를 떠난 추부길 전 홍보기획비서관이나 이종찬 전 민정수석에게만 매달렸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로비의 목적이 세무조사 무마와 검찰 고발 방지였던 점에 비춰볼 때, 그리고 세무조사 돌입시점이 지난해 7월 31일이었던 점에 비춰볼 때 '끈 떨어진 사람'에게 매달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을 근거로 언론은 '배후' 가능성을 제기한다. '조선일보'는 "로비의 최종 대상 인물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하고, '한겨레'는 한 발 더 나아가 "추부길 전 비서관이 15-17대 총선에서…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의 선거캠프에 몸 담은 점도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대목"이라고 한다.
▲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뉴시스 |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의문 제기다. 권력의 생리를 잘 모르는 사람도 능히 제기할 만한 문제다.
근데 이상하다. '조선일보'의 기사 한 구절이 전혀 다른 문제를 던진다.
"국세청은 작년 11월 박연차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를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건너뛰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보했다"며 "박연차 회장과 연결된 누군가의 '입김'을 의식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번 수사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시점에 주목하자. 지난해 11월이면 검찰이 박연차 회장과 '친노' 비리에 수사역략을 집중하던 때다. 바로 이 때 국세청은,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은 정상경로를 건너뛰어 직보하고 그런 이상행동을 용인할 정도로 "누군가의 입김"을 의식했다.
분명하다. 이 "누군가"가 추부길 전 비서관이나 이종찬 전 민정수석은 아니다. 지난해 11월이면 두 사람 모두 청와대를 떠난 지 다섯 달이 지난 후다.
알았다고 봐야 한다. 최소한 어슴푸레하게라도 '배후'에 숨어있는 '실세'가 누구인지 국세청과 이명박 대통령, 나아가 검찰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이렇게 봐야만 정상경로를 뛰어넘어 대통령에 직보한 국세청의 '월권'이 용인된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사정이 이랬는데도 반영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검찰이 박연차 회장을 구속하면서 1차 수사결과를 내놓았을 때는 이명박 정부 사람이 연루된 로비는 혐의 내용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가 확고했다면, 성역을 가리지 않고 비리의 뿌리를 도려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면 나올 수 없는 결과였다.
물론 한 가지 경우의 수는 남아있다. 수사기법 상 어쩔 수 없었을 가능성이다. 박연차 회장의 입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사건의 성격상 수사가 어려워 1차와 2차로 나눠 수사를 진행했을 가능성이다. 이렇게 보면 이명박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는 시간차를 둘 뿐 일관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성립되지 않는다. 다른 정황이 강력히 이의를 제기한다.
검찰은 멍하니 지켜봤다. 로비의 진실을 밝히는 데 핵심적인 진술을 해야 할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이 미국으로 떠나는 걸 수수방관했다. 지난 15일, 그러니까 검찰이 '박연차 리스트' 수사에 박차를 가하던 그 시점에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출국수속을 밟았는데도 막지 않았다. 어찌보면 박연차 회장보다 더 먼저 불렀어야 할 사람을 놓친 것이다.
바로 여기서 막힌다. 이명박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가 검찰에 제대로 전달된 건지, 검찰은 확고한 의지로 수사에 임하고 있는 건지 확신할 수 없다. 정반대의 경우 또한 의문이다. 검찰이 정권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추부길 전 비서관 정도로 '퉁치는', 꼬리자르기식 수사를 하는 거라면 일부러 수사를 확대해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의혹을 키울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뭔가? 1차 수사와 2차 수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검찰이 내놓는 파편적인 수사결과보다 더 궁금하고 더 중요한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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