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하기 때문이다. 언론이 고 장자연 씨 자살로 불거진 연예계의 음습한 관행, 그리고 그런 관행을 가능케 한 노예계약에 대해 비분강개하는 것은 인지상정으로 보거나 사회정의로 보거나 책잡을 일이 아니다. 공정거래를 앞세우고 인권을 옹호하는 데 어떤 사람이 토를 달 수 있겠는가.
언론의 비분강개 이면에 선정주의가 깔려있다는 의구심, 언론의 대서특필 이면에 미모의 여배우, 이른바 사회지도층에 대한 성상납, 미스터리한 진실 등등의 '미끼성' 소재를 활용하려는 '장삿속'이 깔려있다는 의구심을 지우지 못하면서도 굳이 토를 달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분강개의 사회성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 돌아보련다. 비분강개의 진정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따져보련다. 다른 노예계약 사례에 대해서도 언론이 이렇게까지 비분강개했고 대서특필했는지를 회상하련다.
▶2007년 6월, 한 여성이 수면제를 다량 복용하고 자살을 기도했다. 한 여고의 행정실에서 12년 동안 계약직으로 일했던 이 여성은 2007년 7월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학교측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자 비정규직법이 비정규직 보호는커녕 계약해지를 유발하는 법이 되고 있다며 "살려달라"고 눈물로 호소했지만 학교측으로부터 최종통보를 받은 내용은 6월말로 계약을 해지한다는 것이었다.
▶2008년 5월, 대불산단 내 모 조선사의 하청업체 대표인 최모 씨가 자살했다. 원청업체와 갈등을 빚다가 대금을 받지 못했고 이 때문에 3개월 동안 직원 급여를 사비로 지급하다가 끝내 목숨을 끊었다. 그는 직원 급여를 맞추기 위해 "처갓집 상가 팔고 전세금 날리고 나라에서 나온 창업자금까지 다 날렸다"라고 유서에 적었다. 그리고 또 하나, 원청업체의 모 이사에게 "살려달라구요"라는 애원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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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상해서였을까? 그런 사례는 흔하디흔한 것이어서 뉴스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던 것일까? 이미 짚을만큼 짚은 문제라서 구구절절 보도하는 게 사족에 가깝다고 결론 내렸던 걸까? 그렇다고 치자. 그럼 이건 어떨까?
▶2005년 12월, 한 신문사 지국을 운영하던 박모 씨가 목 매 자살했다. 그는 신문사 지국을 운영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끌어다 쓴 1억 3천여만원을 갚지 못한 채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판촉전쟁을 벌이는 대형 신문사가 지원금은 아예 주지 않거나 '코딱지' 만큼 주면서 무리하게 부수확장과 판촉경품을 강요하자 견디다견디다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그는 유서에 이렇게 적었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2008년 8월, 한 방송사 프로그램의 보조 구성작가 김모 씨가 방송사 옥상에서 투신자살했다. 김 씨의 자살 이유에 대해 경찰은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했고, 동료작가들은 월 50∼80만원에 불과한 박봉에 인격적 모독까지 비일비재한 현실이 자살의 배경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른 데가 아니다. 고 장자연 씨 자살에 비분강개하는 언론사에서 벌어진 일이다. 언론이 밖을 향해 공정거래를 주창할 때 언론사 안에서 벌어진 일이다.
지금도 횡행한다. 방송사에선 인력회사에서 파견 나온 행정보조직에게 2년 만기가 되기 직전 짐을 싸게 한다. 신문사 지국은 지금도 아파트 단지를 돌면서 백화점 상품권, 심지어 1만원짜리 지폐를 여러 장 내민다. 이게 현실이다. 노예계약에 비분강개하는 언론이 내부에서 벌이는 일이다.
달리 할 말이 없다. 친절한 금자 씨가 했던 말,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 외에는 달리 던질 말이 없다.
냉소를 가득 담아 던지는 말만은 아니다. 일말의 기대를 얹고 던지는 말이기도 하다.
언론의 지적대로 노예계약을 뿌리 뽑으려면 노예주를 단죄해야 하고 노예상을 도려내야 한다. 10명 안팎이라고 하지 않는가. 고 장자연 씨가 '노예'처럼 술시중을 들고 심지어 성상납까지 했다는 대상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 중에 언론계 인사도 들어있다고 하지 않는가. 밝혀내야 한다. 누군지 밝혀 사회에 드러내야 하고 지금 비분강개하는 것과 똑같은 목소리로 질타해야 한다.
이게 비분강개하는 언론의 진정성을 조금이라도 내보일 수 있는 마지막 창구다.
* 이 글은 뉴스블로그 '미디어토씨(www.mediatossi.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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