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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대계를 바꾸는 열 가지 차이는?

[김명신의 '카르페디엠'] 북유럽 교육 탐방 ④

십 수 년 전 내가 교육 운동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무렵, 한국 교육 문제를 열렬하게 비판하고 대안을 고민하는 자리, 좌중에 누군가 해답처럼 "내가 살던 미국에서는…", "내가 살던 독일에서는…" 모두들 부러워하면서 상황 끝! 묵묵부답! 다들 축 쳐져서 서둘러 논란을 종료시켰던 적이 많았다.

최근 핀란드 스웨덴교육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의 학자들도 핀란드 교육을 연구하거나 아예 안식년 행선지를 핀란드로 선택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한국은 사회체제도 다르고 조세부담율도 다른데 어찌 비교가 가능하냐고 폄하하거나 토론 중 핀란드 교육을 예로 들면 마치 '사대주의' 사상이라도 옮아온 듯 비판하거나 삐딱하게 보기도 한다.

그런 측면과 그런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 스웨덴과 핀란드 방문 일행이 마음에 가장 깊이 새기고 온 것은 민주주의 발전과 교육의 발전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다. 그 결과 두 나라는 올바른 교육이 가야 할 모습, 인간 권리로서의 교육, 학교는 학생에게 어떤 것들을 제공해야 하는지 제대로 보여 주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한국과 다른 두 나라- 미국과 베트남에서 학부모로서 교육을 경험한 적이 있는데 이번 스웨덴, 핀란드 방문은 민주주의가 정착된 나라의 교육 문제를 구체적으로 살펴 보고 시야를 넓히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예전에는 미처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충격을 경험한 것이다.

한국과 핀란드 교육이 다른 점은 대략 10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교육 철학과 교육목표였다. 나머지 9가지는 교육철학과 목표가 다른 점에서 파생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핀란드는 민주주의와 평등을 기초로 교육을 국가가 책임지고 모든 국민에게 양질의 공교육을 제공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교육을 설계했다. 정규학교는 물론이고 대안학교를 포함해 학교의 교육과정과 형태가 어떻게 다르든지 간에 그 자율성과 독립성은 최대한 인정하되 재원은 국가 혹은 지자체가 책임진다는 것이다. 국민이 원하는 모든 교육을 국가와 지자체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한사람도 낙오자 없이 안전하게 항해한다는 것이다.

항해의 최종 목표는 개인의 행복과 국가발전이다. 한국도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하지만 그 과정이나 결과는 그렇지 못하다. 한국은 민주주의, 올바른 교육 철학은 모두 박제화되었으며 현실은 입신양명의 도구로서의 교육, 신자유주의 교육 시장화와 상품화된 학생이 있을뿐이다. 얼마 전 방한한 세계교원단체연합(EI) 루우벤 사무총장은 "세계 여러 나라 교원노조가 정부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이 사실이지만 한국처럼 민주주의를 표방한 나라에서 일제고사 관련 교사들이 파면 조치를 당하는 등 심한 어려움을 겪는 것은 드문 사례"라고 말했다. 그 정도로 한국교육이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표방했으되 내용적으로 그렇지 못하다.

헌법과 교육기본법상에 규정된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는 개인능력이 부족하면 더 많이 교육받을 권리를 갖는다는 뜻이 아니라 교육받을 권리가 침해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교사, 학생, 학부모 할 것 없이 학교를 둘러싸고 겹겹이 싸인 비민주의 벽을 넘기는 어렵다. 교육을 둘러싼 시장의 힘이 강하여 국가의 공공적인 힘보다는 시장의 힘이 지배하고 교육 정책에 대한 너무 많은 이견과 갈등이 존재하고 있다. 그 결과 핀란드와 한국 같은 최고 학력이지만 교육의 과정과 결과가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두 번째 다른 점은 핀란드는 학교 간 다양화가 아닌 학교 내 다양화를 취한다는 점이다. 특목고, 자시고가 들어설 여지는 아예 없다. 그 결과 한국과는 달리 핀란드는 지역 간, 학교 간 학력 차가 적다는 점이다. 핀란드도 학생의 학력이 높아질수록 부모의 배경에 따라 교육방치 학생이 늘어나므로 중학교에서는 학급당 인원수를 절반으로 줄여 낙오학생이 없도록 배려한다. 수준별 이동수업이 아니라 같은 학급내에 개인별 교육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학습부진아도 특수교육대상자에 포함시켜 최선을 다해 교육한다.

이를 위해 대부분 작은 학교, 팀별 학교제로 운영한다. 작은 규모라야 학급이 학교가 한눈에 들어오고 학력이 처지는 학생이 드러나기 때문이고 책임과 권한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학급당 인원수는 개발도상국 수준과 비슷하다. 정부는 저출산만 믿고 학급당 인원수 줄이기에 소극적으로 대응하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학급당 인원수 줄이기와 거대 학교 반으로 쪼개기 등 교육의 본질적인 문제를 후순위로 놔두면 그만큼 교육개혁은 지체될 수밖에 없다.


▲ 핀란드는 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PISA)에서 다른 국가에 비해 학생간, 학교간의 학업 성취도 격차가 좁은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헬싱키대학

셋째, 교육 목표 측면이 다르다. 핀란드는 기술 혁신보다 교육을 통해 어떻게 혁신적인 인재를 양성하는가에 중점을 둔다. 그 결과 학력의 정의가 크게 차이가 났다. 핀란드는 소통과 창의성, 문제해결력, 소통의 교육, 개인의 요구와 기업, 사회요구를 수렴하여 미래 국가경쟁력을 준비하는 단계로서의 교육과 학력개념을 중시한다. 학력개념은 계속 발전하여 점차 사회적 소통력, 개인 역량 등을 중시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은 주입식 교육, 대입 경쟁, 타인과 비교우위에 있는 지식, 아는 것을 어떻게 활용·분석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아느냐를 중시하며 암기를 중요시한다.

넷째, 누가 교육을 책임질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핀란드 중앙 정부는 교육 목표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교사와 학교, 지방정부가 책임진다. 한국은 교육이 과거 중앙정부 통제에서 지자체와 학교 등으로 분산되어 책임소재가 모호하다.


▲ 핀란드에서는 산모가 아이를 낳으면 지자체에서 선물로 유아용품 박스를 선물한다. ⓒ김명신
다섯째, 개인이 어떤 방법을 통해 교육목표를 성취하는가이다. 핀란드는 무학년제, 학습자개인에 맞춘 서비스, 자율을 강조한다. 통합 교육 속에서 개별교육을 실시한다. 이는 수준별 수업을 도입하기 위해 노력 중인 한국 교육 관계자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최근 부시 정부에서 일제고사 파동에 휩쓸린 미국의 경우 학력을 높이기 위해 주입식 문제풀이 교육으로 퇴행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영국도 <위기의 학교>라는 책이 나올 만큼 일제고사식 학력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 일부 지역에서는 이를 폐지하고 있다.

특히 핀란드는 3자 대화(학생, 교사, 학부모)를 통해 학습 목표를 정하는데 반해 한국은 중앙정부가 정한 것을 학교가 받아들이고 이후 대학입시에서 한 번 더 굴절되므로 극심한 왜곡 현상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직업교육 역시 핀란드는 인문교육과 직업교육의 넘나들기가 유연하나 한국은 실업교육에 대한 불신, 만연한 학벌·학력주의와 대학에 가야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파행 운영되고 있다.

여섯째, 교육 공간이 달랐다. 학생이 공부하기에 가장 적합한 교육환경, 학교건축 측면에서 핀란드는 교육력 배려, 팀별 작업, 작은 학교가 가능한 학교 구조로 되어 있다. 이 문제는 한국도 마음만 먹으면 비교적 단기간에 변화가 가능한 부분인데 아직까지도 일제시대 때부터 결정된 천편일률적인 학교 공간, 저렴한 건축비를 바탕으로 한다. 한국의 교도소는 평당 건축단가가 300~400만 원 수준인데 반해 학교평당 건축 비용은 이보다 낮다. 참고로 백화점 문화센타 건축비용은 평당 1000만 원이 넘어섰다는 점은 한국 교육이 교육환경적 측면에서도 열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 로비가 있는 중앙건물을 바탕으로 18개 선택과정을 수업할수있도록 방사형으로 설계된 야르벤빠 고등학교. ⓒ김명신
일곱 번째는 교사의 전문성 부분이다. 교사의 창의성과 전문성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는 교육에서 매우 중요하다. 핀란드는 유치원 교사를 제외한 모든 교사가 석사 이상 소지자로서 교사의 전문성과 자율성이 존중된다. 한국은 최근 우수한 인재가 교사가 되기는 하나 자율성이 부재하여 제대로 역량이 발휘되지 못한다.

여덟 번째는 학습부진아에 대한 대책이다. 핀란드는 학습부진아를 특수교육대상자로 분류하여 공부를 잘하는 학생보다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한국은 이번 일제고사 파동에서 보듯 낙오자를 양산하고 있다.

아홉 번째는 교육 재정 문제이다. 2002년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교육 재정은 핀란드(7.2%)와 우리나라(7.1%)가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핀란드는 전액 정부의 지출인 반면, 우리나라는 2.8%가 민간 부담, 즉 사교육비이며 정부 지출은 4.3%에 불과한 실정이다.

열 번째, 평가의 개념이 다르다. 그 나라라고 해서 대입선발이 없는 것이 아니고 교원 평가가 없는 것이 아니고 학교 평가가 없는 것이 아니지만 모든 평가는 서열화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개인과 학교와 교육과 사회 전체가 발전하기 위한 과정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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