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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 들으며 소달구지 속도로…

[이정전 칼럼]<6> 우리는 행복한가

행복에 관하여 필자가 쓴 책을 읽고 어떤 독자가 질문을 해왔다. 우리나라 국민의 행복지수가 낮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사실 우리 국민의 행복지수는 그리 낮은 편이 아니다. 고도 경제성장 덕분에 우리 국민의 행복지수가 이제 거의 선진국 문턱에 와 있다. 선진국 중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낮은 일본에 비해서 그리 뒤지지 않는다. 다만, 세계가치조사에 의하면 선진국이 아닌 나라들 중에서 우리보다 행복한 나라가 상당히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칠레, 브라질, 인도네시아, 필리핀, 그리스, 등이 그런 나라들이다. 이런 나라들은 경제적으로는 우리보다 뒤처져 있지만 행복지수로는 우리보다 위에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높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 잘 살게 되었는데 우리 국민의 행복지수는 왜 높지 않을까? 그 이유를 알아보는 한 가지 방법은, 행복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제시하는 행복의 비결들을 하나씩 짚어보는 것이다. 행복의 비결 중의 하나는, 자신을 남과 자꾸 비교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신을 남과 비교하다 보면 상대적 박탈감이 쌓인다. 상대적 박탈감은 우리의 행복을 앗아가는 가장 큰 요인이라는 점은 굳이 심리학자들의 연구를 들먹거리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왜 우리는 불평등에 민감한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서 대단히 평등주의적이며 불평등에 민감하다고 하는데, 경제학자들이나 신자유주의자들 중에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도 있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시기심이 강하고 남 잘 되는 꼴을 참지 못하는 나쁜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이들은 푸념한다. 3불을 고수하는 교육정책이나 성공한 기업가를 존중해주지 않는 사회풍토가 우리 국민의 평등주의적 성향을 잘 반영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그 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남을 많이 의식한다는 뜻이고 또한 그 만큼 상대적 박탈감을 많이 느낀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국민성만을 탓할 수는 없다.

상대적 박탈감의 정도는 어떤 계층의 사람과 나를 비교하느냐에 달려있다. 달리 말해서 어떤 계층의 사람들을 벤치마킹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나보다 조금 잘 사는 계층한테는 별로 부러울 것이 없지만, 나보다 훨씬 잘 사는 고소득계층을 쳐다보면 심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대체로 보면, 안정된 사회에서는 사회계층이 비교적 뚜렷하게 구분되며, 계층간의 섞임도 별로 많지 않다. 따라서 대부분의 국민들이 까마득하게 높은 상위 계층보다는 두어 계층 높은 사람들을 주로 비교대상으로 삼는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다르다. 지난 반세기 우리 국민은 그야말로 격동의 시대를 살아왔다. 전쟁도 겪었고, 심심치 않게 정변도 있었고 혁명도 있었다. 그런 가운데 계층간의 뒤섞임도 빈번했다. 전쟁 중에 거지 신세가 된 부자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전후 복구시절에는 맨손으로 서울에 올라와서 돈방석에 앉은 졸부들 또한 얼마나 많았던가. 내 주위에서 친숙하게 보고 듣던,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까맣게 높은 계층으로 올라갈 때, 그런 사람들의 신세와 내 신세를 비교해보지 않을 수 없다. 사회계층의 뒤섞임이 심하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자연히 아주 높은 계층의 사람들까지 벤치마킹하게 된다. 따라서 상대적 박탈감을 많이 느낄 수밖에 없는 풍토가 우리 사회에 자연스럽게 조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잘 사는 사람들이 어떤 방법으로 잘 살게 되었는가도 중요하다. 성실하게 땀을 흘린 결과 잘 살게 된 사람들 보고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그러나 그 동안 우리 사회에서 만연했던 정경유착이나 부동산투기와 같이 사회적 지탄을 받는 방법으로 잘 살게 되었다면, 이들을 쳐다보는 사람들은 더 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빨리빨리'와 행복지수의 연관관계

행복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화목한 가정과 좋은 인간관계를 행복의 첫 번째 비결로 꼽는다. 돌이켜 보면, 압축경제성장 과정에서 우리는 얻은 것도 많지만 잃은 것도 적지 않다. 우선, 사회의 기반을 이루는 우리의 가정에 점차 금이 가고 있다. 어느덧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이혼율과 가장 낮은 출산률을 기록하였다. 미혼모가 급증하고, 독신가정이 많아지고 있으며, 별거부부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 모두가 행복을 좀 먹는 주된 요인이라는 것이 선진국 사회에서 밝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돈벌고 출세하기 바빠서 온정적 인간관계 만들기를 소홀히 하고 있다. 돈에 관련된 인간관계는 많아지는 반면, 깊은 정으로 연결된 인간관계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핵가족화하면서 친족관계가 점차 사라지고 있고, 급속한 도시화로 지역공동체도 감소하고 있다. 먹고 살기 바빠서 동창회에도 잘 나가지 못한다.

사실, 그 동안 우리국민은 너무나 바쁘게 살아왔다. 그 결과 세계 최대의 유조선도 만들게 되었고 IT강국도 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 바쁘게 뛰면 우리도 곧 선진국이 된다. 하지만, 선진국이 된다고 해서 우리 국민이 자동적으로 행복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행복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그 증거를 무수히 많이 제시하고 있다. 지난 반세기 지속적 경제성장 덕분에 선진국의 소득수준이 엄청나게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선진국 국민의 행복지수가 높아지지 않았다. 아무리 소득수준이 높아진들 그로 인해 국민이 행복해지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인가.

최근 '워낭 소리'라는 영화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어느 작가는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소달구지의 속도가 적당한 삶의 속도라고 말한다. 소달구지 타고 메밀꽃 들판을 지나노라면 주위의 온갖 아름답고 정겨운 것들이 빼곡히 눈에 들어온다. 그 하나하나를 음미하고 생각하면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그러나 시속 200km로 달리면 우리는 아무 것도 제대로 볼 수 없다. 음미할 것도 없고 생각할 겨를도 없다. 우리 국민은 그 동안 시속 200km의 속도로 달려왔다. 그야 말로 정신없이 달려왔다. 모두들 경제적으로는 여유가 생긴 것 같은데 마음으로는 여유가 없다.

▲ 세계 최대의 유조선을 만들고, IT강국을 만드느라 늘 바빠서 자신의 행복을 위해 노력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만든 사회시스템이 개인의 행복을 등한시하게 됐다. ⓒ워낭소리
우리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비록 경제적으로는 어려웠어도 마음으로만은 여유작작하게 살았다. 1월 보름이면 오곡밥과 각종 견과류를 챙겼고, 가족과 친지들의 생일이 오면 꼬박꼬박 선물을 돌렸으며, 각 절기 때마다 그 의미를 되새겼고, 동짓날에는 어김없이 팥죽을 끓여 먹으면서 다음 해를 생각하였다. 이렇게 우리 어르신네들은 소달구지 타고 가듯이 하루하루를 꼭꼭 씹고 음미하는 가운데 생활의 즐거움을 찾았다. 그나마 어르신네들이 챙겨주기 망정이지 요즈음 사람들은 절기도 잘 모르고 산다. 일주일 전은 고사하고 엊그제 무엇을 했는지도 잘 기억하지 못하면서 떠밀리다시피 산다.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깊은 행복감을 주는 것들, 예컨대 화목한 가정, 좋은 인간관계, 보람 있는 일거리 등은 유조선이나 컴퓨터 만들 듯이 서둔다고 해서 뚝딱 얻어지는 것들이 아니다. 마치 오래 묵혀야 장맛이 나듯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도 오랜 시간 천천히 묵혀야 얻을 수 있다. 마치 피아노를 잘 치기 위해서 오랜 시간 연습해야 하듯이 행복도 오랜 시간 차근차근 노력해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세계 최대의 유조선을 만들고 IT강국을 만드느라 늘 바빠서 우리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노력할 겨를이 없었다. 시속 200km로 달려서는 깊고 지속적인 행복을 얻을 수 없다. 이제 이 만큼 잘 먹고 잘 살게 되었으면 워낭소리 들으며 소달구지 속도로 살아가는 법도 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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