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닝하는 교수 1류 연주자로 이름 있는 음악 교수 P 씨는 동료들에게 놀림 받는 일이 한 가지 있다. 입학시험 때마다 커닝을 한다는 것이다. P 교수는 수험생의 연주를 자기가 정확히 평가했는지 자신이 없다. 그래서 옆 칸의 동료에게 대충 어느 정도인지 사인을 보내달라고 염치없이 부탁하곤 하는 것이다. 채점자가 소신껏 자기 평가를 내리지 않고 동료의 평가를 따라가려는 것은 물론 잘못이다. 그러나 동료들은 P 씨를 '커닝 교수'라고 놀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그의 성실성에 경의를 품는다. P 교수에게 남들만한 평가 능력이 없겠는가. 그가 커닝을 하는 까닭은 자신의 평가가 학생들의 운명에 부당한 영향을 끼칠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에 있는 것이다. P 교수는 자신의 행위가 커닝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입학한 학생에게 수시로 평가를 내릴 때도 필요하면 동료들과 언제든지 의논하는 법인데, 입학 시험이라고 안 그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수험생의 운명을 좌우하는 일인데, 더더욱 동료들의 의견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입학 시험은 P 씨뿐 아니라 예술계 교수들에게 늘 골치 아픈 문제다. 대부분 교수들은 학업 성적보다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학생들을 원한다. 그런데 전형은 학과와 실기를 합산한 성적으로 결정된다. 그래서 많은 교수들은 실기 평가를 극단화한다. 수준이 웬만하면 90점 이상을 주고, 그렇지 않으면 40점 이하로 깔아버리는 것이다. 재능 없는 학생이 학과 성적으로 밀고 들어오는 것을 최대한 막겠다는 뜻이다. 이런 추세가 P씨처럼 소심한 교수들을 더욱 안절부절하게 만든다. 듣는 느낌이 좋고 나쁜 데 따라 5점을 더 주고 덜 주는 문제라면 괜찮다. 그런데 90점을 주느냐 40점을 주느냐 하는 일을 놓고 자신의 평가에 확고부동한 자신감을 가지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그쪽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예능 분야의 고액 과외가 극성을 부리는 까닭의 상당 부분도 이와 같은 평가의 극단화에 있다는 지적이 있다. 종래의 '백화점식' 전형 방법은 예술 분야뿐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나 실효성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 영역 저 영역의 성적을 합산해 한 줄로 세워놓고 자르는 식으로는 특정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학생들이 설 땅이 없다. 특히 우수 학생이 몰리는 일류대학일수록 '뛰어난' 학생보다 '흠 없는' 학생만이 들어가게 된다는 불만이 있어 왔다. 몇 개 대학에서 추진하고 있는 다단계 전형 방법에 거는 기대가 크다. |
▲ 미술 실기고사 채점 광경. 예술을 가르치고자 하는 이들과 배우고자 하는 이들을 맺어주는 과정이 이처럼 초현실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뤄진다는 사실은 예술 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비예술적인 평가 방법은 평가를 받는 사람들뿐 아니라 평가를 행하는 사람들까지도 강박에 몰아넣는다. ⓒ연합뉴스 |
홍익대학이 미술대학 입시에서 실기고사를 폐지할 방침을 발표했다.
놀라운 발표다. 미술 전공 학생을 뽑는 과정에서 작품 활동의 적성을 가장 직접적으로 측정하는 심사 방법을 배제한다는 것이 우선 놀라운 일이다.
미술 전공 학생 모두에게 실기 능력을 요구한다는 데는 문제가 있었다. 미술을 전공하고 나아가 미술에 종사한다 해서 어느 수준 이상의 실기 능력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평론과 교육을 비롯해 미술계에 필요한 역할 중에는 작품을 만드는 능력보다 미술에 대해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이 더 중요한 것도 많이 있다.
따라서 입학생 일부에게 실기 아닌 다른 전형 방법을 적용시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입학생 전체에게? 미술 전공의 적성을 측정할 다른 방법도 있겠지만, 실기고사의 효력을 대치할 만한 것이 있을까?
사실 더 놀라운 것은 미술 사교육 '업계'에 대한 충격이다. 주택가마다 널려 있는 미술학원 중에는 "홍대 출신"을 간판에 표시해 놓은 집이 많다. 어느 대학 어느 과에 들어가려면 그 과에서 점수 따는 데 필요한 요령을 익혀야 한다는 것이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상식이다. 홍익대 미대 실기고사는 수많은 졸업생들의 밥줄 노릇도 해 온 것이다.
실기고사는 예술 교수들의 권위를 권력 차원까지 키워놓기도 했다. 홍익대의 이번 조치가 근년 거듭 드러나 온 실기고사 관계 비리로 인해 촉발된 것 아닌가 하는 관측도 있거니와, 드러난 비리는 저질러진 비리의 일부분일 수밖에 없다. 수험생들이 레슨 받으러 비행기 타고 다닐 정도의 비상한 경쟁 상황은 비리를 키우는 온상이 아닐 수 없다.
실기고사를 대신할 대안은 아직 분명치 않다. 홍익대 관계자가 "예컨대 면접 과정에서 그릇이라는 소재를 주고 평화를 어떻게 구현할 것이냐고 묻는 방식이 될 것"이라 했단다. "간략한 미술 테스트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자세히 알려질 경우 또 다른 사교육을 유발할 수 있다"며 구체적 언급을 피했다고도 한다.
이런 언급을 보면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평화에 대한 의견을 듣는 것이 예술관 파악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실기고사를 대신할 만한 효과가 있을 수 있을까? 테스트 방법을 "사교육 유발"을 피하기 위해 시험 날까지 비밀로 묶어둘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대책은 없는 채로 비리의 충격을 덮어버리기 위해 개혁의 충격을 불러오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설령 비리에 몰려 충분한 대책 없이 취해진 조치라 하더라도 홍익대학의 결정은 용기도 있고 의미도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실기고사를 유지하되 운용 방법을 개선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대책일 수 있다. 모르긴 몰라도 그런 합리적 노력은 지금까지 꾸준히 있었을 것이다. 너무나 두텁게 쌓여 있는 관습과 이해관계가 그런 합리적 노력을 좌절시켰기에 이처럼 '혁명적'인 방침이 나오게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지금 '자율 전공'이란 이름으로 정원 일부에 적용시키려는 전형 기준을 입학생 전원에게 기계적으로 확대하는 것은 썩 바람직한 일 같지 않다. 학생부 40%, 수능 50%, 면접 10%라는(정시 전형의 경우) 이 기준은 아무래도 전공 적성을 측정하는 최소한의 효과를 확보하기 힘들 것 같다. 실기고사 대신 이 효과를 얻을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데 창의적 노력이 많이 모이기 바란다.
차제에 입학생 선발의 원리를 한번 살펴보자. 대학들이 어떤 학생들을 받아들이고 싶어 하는가 하는 것은 스스로 베푸는 교육의 의미를 어떻게 보는가에 달려 있는 일이다. 고려대학이 특수목적고(특목고) 졸업생을 우대하려 애쓴 정황이 뚜렷이 드러나 있는데도 대학교육협의회는 감싸주려고만 든다. 학생 선발에 관한 대학 경영자들의 어떤 공감대를 보여주는 일이다.
더 잘 '준비된 학생'들을 받고 싶은 것이 대학 경영자들 사이의 폭넓은 공감대다. 그리고 그 준비 수준을 보여주는 첫 번째 지표가 투입된 교육비다. 많은 교육비를 투입할 수 있었던 학생일수록 자기네 대학을 거쳐 간 뒤에도 사회에서 성공해 '훌륭한 졸업생'으로 학교를 빛내줄 가능성이 크다고 그들은 생각하는 것이다.
대학이 사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사회가 대학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대학교육협의회의 자세에는 후자의 관점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홍익대학의 '충격적' 결정이 '혁명적' 성과를 거두기 위해 이 관점을 뒤집는 노력이 이어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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