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전 대구한의대 교수)의 한의학 칼럼을 새로 연재한다. 최근 이 원장은 정조와 노론 벽파 수장 심환지 사이의 편지가 공개되기 전부터 '정조 독살설'을 정면 반박한 한의학자로 화제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고금을 꿰는 이 원장의 칼럼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줄 것이다. <편집자> '낮은 한의학'을 위하여 처음 한의학 칼럼을 권유 받았을 때는 많이 망설였다. 독자에게 피와 살이 되는 얘깃거리를 정기적으로 내놓을 만한 자신이 있는지를 스스로 자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왕 시작하기로 한 만큼 많이 부족하지만, 능력이 닿는 대로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하면서 한의학에 대한 내 생각을 간단히 정리한다. 이 연재 칼럼 이름 '낮은 한의학'은 평소 내 고민의 산물이다. 나는 한의학이 지금보다 문턱이 낮아야 옛 명성을 회복하리라고 믿는다. 우선 한의학은 서민이 쉽게 찾을 수 있어야 한다. 한의학이 지금처럼 고가의 보약을 처방하는 데만 주력해서는 결코 서민과 눈높이를 맞출 수 없다. 한의학이 이렇게 된 데는 사실 한국 한의학의 발달 과정과도 관계가 있다. 한국 한의학은 옛날부터 '허'를 '보'해야 한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 때문에 한의학은 보약 처방에 주력하는 대신 침술과 같은 한의학 고유의 영역을 발달시키는 데 소홀했다. 따로 소개할 일이 있겠지만, 내가 최근 조선시대 최고의 침의(鍼醫) 허임를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의학은 인접 양의학을 비롯한 생물학 등 인접 분야와 교류하는 데도 주저해서는 안 된다. 기존 양의학, 생물학에서 축적된 성과를 한의학과 과감하게 접목시키는 시도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한의학의 성과를 양의학, 생물학을 통해서 검증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런 과감한 문턱 낮추기만이 한의학을 세계 속의 의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의학은 세상 곳곳의 턱들을 낮추는 역할을 해야 한다. 원래 의학의 최종 본령은 사람을 구하는 데서 시작해 궁극적으로 세상을 구하는 데 있다. 한의학은 세상을 향한 문턱을 낮추고, 한국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를 같이 고민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한의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부터 이런 턱 낮추기에 얼마나 적극적이었는지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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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불청객 황사, 알레르기 예방법은?
예로부터 많은 사람은 공기를 아무것도 없는 빈 곳처럼 여겼다. 남태평양, 남극대륙 같은 청정 지역에서도 한 번 호흡할 때마다 20만 개의 미세 먼지가 몸속으로 들어오는 걸 염두에 두면 이런 생각이 얼마나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지 잘 알 수 있다. 심지어 봄철 황사 현상이 한창일 때는 몸속으로 들어오는 미세 먼지는 50만~100만 개를 넘는다.
이렇게 많은 미세 먼지가 몸속으로 들어오려고 할 때 인체는 어떻게 방어할까? 우선 코털과 점액이 최전선에서 방어를 맡는다. 코털은 방풍림과 같은 역할을 한다. 바람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을 소나무 숲이 막아주듯이 코털은 몸속으로 들어오려는 미세 먼지를 일차적으로 막는 역할을 한다.
코털은 비교적 큰 먼지를 막는다면, 흔히 콧물이라고 불리는 점액은 작은 먼지를 담당한다. 점액의 역할은 옛날 식당 천장에 달려 있던 파리를 잡는 끈끈이와 같다. 점액 속에는 쓸모 없는 분자를 분해하는 효소가 있어서 미세 먼지, 바이러스 등을 끈끈이처럼 잡아서 씻거나 파괴한다.
사실 콧물 외에도 점액은 외부로부터 인체를 방어하는 큰 역할을 한다. 눈물은 외부의 이물질로부터 눈을 방어하고, 침 역시 소화 효소의 역할을 할뿐만 아니라 소화 기관을 감싸서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눈에 쉽게 띄지 않지만 귀나 피부에서도 점액이 나와서 일차적인 울타리 역할을 한다.
옛날 사람들도 이 점을 분명히 간파했다. 좋은 소나 개를 살 때는 점액이 잘 분비되는 놈을 선택했다. 점액을 건강의 척도라 여기고 코가 촉촉한 개나 소를 우선 선택했던 것이다. 탄광 광부가 기름이 돼지고기를 즐겨 먹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돼지고기는 기도의 점액 분비를 자극하고, 이 점액이 석탄 먼지를 흡착해 폐를 보호할 수 있으리라고 여겼던 것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황사 현상이 한창일 때 콧물을 동반한 재채기, 눈·입·귀의 가려움 증상의 알레르기성 비염이 나타나는 것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갑자기 많은 양의 먼지 입자가 몸속으로 들어오면 점액의 방어 기능이 한계에 이르면서 신경말단이 자극을 받게 된다. 바로 이런 자극에 대한 반응이 알레르기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황사 알레르기를 예방하는 방법은 없을까? 바로 답도 점액에 있다. 더 많은 먼지 입자를 감당할 수 있도록 점액의 분비를 촉진하거나, 코에 점액 역할을 할 수 있는 외용제를 발라주면 알레르기를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 황사 알레르기를 막으려는 한의학의 대응도 바로 이 점에 주목한다.
콧물의 분비는 신장이 담당한다. 오미자를 쪼개 보면 돼지 콩팥같이 생긴 것을 볼 수 있는데, 실제로 신장을 자극하는 데는 오미자가 제격이다. 오미자의 다섯 가지 맛 중 으뜸은 신맛이다. 신맛이 침을 고이게 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오미자는 신장을 자극해 점액을 보충하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알레르기 비염에 처방하는 소청룡탕에도 오미자가 들어간다.
그럼, 부족한 점액을 대신할 외용제로 좋은 것은 무엇일까?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바로 꿀, 참기름 등이다. 미끄러운 촉감의 꿀은 인체에서 기계 회전 부위의 윤활유처럼 작용한다. 꿀은 입에서는 침과 같은 역할을 하므로 입속 염증 치료에도 사용한다. 목에서도 가래를 삭이고, 기침·염증 치료에 효과가 있다.
많은 임상 결과를 보면, 콧속에 아침저녁으로 한 번씩 꿀을 바르는 것만으로도 질환이 호전된다. 실전 임상에서는 꿀 대신 살구씨 기름을 사용한다. 한의학에서는 살구씨의 따뜻한 기운이 멈춰있는 이물질을 움직이게 해준다고 여기는데, 실제로 살구씨 기름을 코에 바르면, 점액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염증과 같은 질환에 효과가 있다.
이처럼 황사의 예방에는 점액, 특히 코에서 나오는 콧물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평소 황사 알레르기를 고생을 했다면, 올봄부터는 옛사람의 지혜가 담겨 있는 오미자차, 꿀, 살구씨 기름 등으로 황사를 대비해보자. 화려한 봄을 잔인한 봄으로 만드는 황사 알레르기, 알고 보면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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