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는 분명하다. 미국, 영국, 호주, 일본 모두 '표준 평가'(일제고사)를 한국과 같은 용도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계교원단체총연맹(EI·Education International)의 프레드 벤 리우벤 사무총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국 정부가 일제고사를 통해 학교와 교사를 평가하겠다면서 외국도 그렇다고 주장하는데, 어떻게 보느냐'는 기자의 질문을 듣고서였다.
리우벤 총장이 재직하는 EI는 전 세계 172개국 400여 개 단체, 3100만 명의 교사가 회원으로 가입된 유일한 국제 교원단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초청으로 지난 9일 한국을 찾은 리우벤 총장은 3일간 정진후 전교조 위원장을 비롯해 교사, 학부모, 국회의원 등을 만나며 바쁘게 움직였다.
11일 서울 중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그는 "국제 기준에 비춰 봤을 때 한국 정부의 교육 정책과 교원 정책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법규, 민주주의 국가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경우"
리우벤 총장은 "우선 정부와 교원단체의 관계 악화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정부라도 교육 목표를 달성하려면 교육 전문가인 교사들과의 대화를 제한하거나 억제해선 안 된다"며 "한국 정부는 교육 정책 입안 과정에서 교원노조와의 적절한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리우벤 총장은 "교사는 병원의 의사와 같아서 단 한 명의 의사가 존재해서 모든 환자에 동일한 진단과 처방을 할 수 없는 것"이라며 "일제고사 때문에 교사들을 해직한 것은 명백한 실수"라고 말했다.
그는 "이는 한국 정부가 국제 기준에 미달하는 정책을 집행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더군다나 최근 한국 정부와 교원노조의 단협 무효화는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 정면으로 위반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리우벤 총장은 "특히 한국 법규는 교원의 노동권 제약과 정치 활동 제약 부분에서 국제 기준에 크게 미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는 굉장히 예외적인 경우"라며 "자기의 신념과 일치하는 후보를 도왔다고 해서 해고되고 투옥되는 것은 굉장히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일제고사를 교사 평가 기준으로 하겠다니…"
리우벤 총장은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경쟁과 효율'을 중심으로 가속도를 내는 각종 교육 정책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물론 어느 나라나 자국 정책을 설립할 권리가 있다"며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는 교육의 상업화가 번성하고 있고, 이처럼 사교육이 급격히 커지는 나라는 드물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교육을 본받을 사례로 언급한 것을 두고도 "오바마 대통령이나 그를 수행하는 비서들이 한국의 현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며 "공교육이 아닌 사교육이 지나치게 확장되고 있는 한국 현실은 우려할 만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리우벤 총장은 "물론 경쟁 자체에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러나 경쟁을 과도하게 강조한 정책은 외국 사례를 봐도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정책들은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다"며 "유네스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에 이런 문제를 제기하고 경고를 발동해서 국제 사회의 관심을 촉구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기자 간담회에 앞서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만났던 리우벤 총장은 "한 여당 의원이 일제고사 때문에 해직된 교사들은 중앙정부와 상관없는 문제라고 하더라"며 "원칙적으로는 맞는 것 같지만, 지역 교육청의 행위가 국제 기준에 어긋나는 사안이기 때문에 중앙 정부가 시정을 촉구하고 개입하는 것이 옳다"고 밝혔다.
리우벤 총장은 일제고사 실시와 이를 통한 교사·학교를 평가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정책을 두고서 "OECD는 적절한 교사 평가 기준을 찾으려 오랜 시간 노력하고 있다"며 "그러나 표준 평가에서 고민해야 할 점은 교육의 내용이지 형식은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편, 리우벤 총장은 이번 방한에서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만나려 했다. 그러나 교과부는 "단식 중인 정진후 전교조 위원장과 일제고사 해직교사들의 농성장 방문을 취소하지 않으면 면담을 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리우벤 총장은 "안타깝게 생각할 뿐"이라며 "(교과부 장관과) 만나진 못했지만 서로 무슨 입장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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