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진흥위원회가 지난 6일 발표한 올해 영화진흥사업의 세부계획을 발표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올해 영진위의 총 사업비는 작년 658억에서 약 25%(151억 원)가 감소한 507억 원으로 책정됐다. 예산이 축소된 가장 큰 이유는 과거 직접지원 대신 출자조합 등을 통한 간접지원 방식을 늘렸기 때문이다. 직접지원의 경우 '선택과 집중'의 원칙이 충실히 반영됐다. 하지만 영진위가 영화를 지나치게 산업적 관점으로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영화계에 논란이 일고 있다.
올해 영진위는 '한국영화 제작지원' 제도와 '마스터영화 제작지원' 제도를 신설했다. 먼저 '한국영화 제작지원' 제도는 과거 '예술영화 제작지원'과 'HD영화 제작지원'을 통합한 것이다. 영진위는 이 제도의 지원자격을 과거 순제작비 20억 원 내의 영화에서 10억 원 내 영화로 규정하면서 자격 요건을 좁혔다. 대신 편당 지원액을 5억 ~ 9억으로 늘리겠다는 것. 참고로 작년 지원액은 편당 4억 원 규모였다. 이 제도는 지난 1월 말 이미 접수를 마감한 상태다. '마스터영화 제작지원' 제도는 국제영화제에서 수상 경력이 있는 감독들을 지원하는 제도로, 20억 이내의 순제작비로 차기작을 만들 경우 영진위가 편당 현금 4억, 현물 2억씩 2편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단·중편/장편/다큐멘터리 제작지원'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독립영화 제작지원' 제도에서 명칭을 바꾼 이 제도 역시 단편은 5천만 원 이내, 장편의 경우 2억 이내의 순제작비로 제작된 영화만 지원신청을 할 수 있도록 자격 요건이 한정됐다. 작년까지 단편은 순제작비 1억 이내, 장편은 3억 이내의 작품이 지원을 신청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하면 신청 자격의 폭이 훨씬 좁아진 셈이다. 대신 이 제도 역시 지원폭을 과거 50%에서 70%로 늘렸다. 애초 이 제도는 '단편/중편/다큐멘터리'만을 지원할 예정이었지만 독립영화계의 반발에 부딪혀 저예산 장편 극영화도 지원 대상에 포함시키게 됐다.
이 제도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지원 편수를 줄이는 대신 편당 지원액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될 놈만 크게 밀어주겠다'는 것. 보다 좋은 작품을 선별해 더 많이 지원하겠다는 입장은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문화, 더욱이 저예산으로 제작되는 독립영화들에까지 과연 과도한 경쟁의 논리가 도입돼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다. 영화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다양성'을 오히려 훼손하며 효율성과 성과만 중시하는 것은 영화를 산업적 관점으로만 대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영화를 비롯한 문화상품은 그 속성상 당장 눈에 보이는 물적 성과로만 가치를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인데도, 지원이라는 명목 하에 영진위가 오히려 영화의 예술성과 공공성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얘기다. 한국영화의 해외진출 지원 항목과 관련해서도 문화 교류와 소개의 차원보다 '수출'과 '세일즈'가 강조되고 있는 것 역시 영진위가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을 드러내주는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영진위가 영화계와의 소통에 여전히 서투르다는 평가도 지배적이다. 영진위는 앞서 말한 한국영화 제작지원 제도의 시행과 관련해서도 이미 한차례 영화계의 원성을 산 바 있다. 작년 예술영화 제작지원과 HD영화 제작지원이 2, 3월에 시행됐던 반면, 올해 통합된 '한국영화 제작지원'은 충분한 공고 기간도 없이 지난 1월 급작스럽게 사업이 진행돼버렸기 때문이다. 나아가 다양성 영화의 개봉에 있어 마케팅을 지원했던 '아트플러스 시네마네트워크 개봉지원' 제도는 독립영화계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폐지된 뒤 끝내 되살아나지 못했다. 서울아트시네마와 인디스페이스, 미디액트 등을 내년에 공모제로 전환한다는 계획에 대해 비판이 쏟아지고 있지만 영진위는 묵묵부답일 뿐이다. 다양성영화에 대한 콘텐츠를 담았던 잡지 '넥스트 플러스'도 영진위에 의해 출판이 정지되었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전무해 보인다.
강한섭 영진위 위원장은 틈만 나면 공식석상에서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충분히 듣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피력했지만 정말로 듣고 있는 건지 어쩐지 별다른 피드백이 보이지 않는다. 일각에서 "포럼과 기자회견만 한다, 영진위가 학술단체냐"라는 지적에서부터 심지어 "영진위가 정말로 영화를 진흥하려는 곳이 맞냐"는 냉소적인 반응마저 나오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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