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지난 7일 용산 참사 추모 집회에서 16명의 경찰이 집회 참가자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정부, 경찰, 보수 언론이 나서 적극적으로 논란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입을 모아 "이런 나라 어디 있냐"
이명박 대통령은 9일 강희락 경찰청장, 이길범 해양경찰청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이런 나라가 어디 있느냐"며 일명 '집단 폭행 사건'을 놓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대통령은 "선진 일류국가를 만들기 위해선 공권력이 확립되고 사회질서가 지켜져야 한다"며 "경찰관이나 전경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고,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불이익을 입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한승수 국무총리도 이날 오전 열린 간부회의에서 "선진국 어느 나라에서 공권력을 행사하는 경찰관이 이렇게 폭행당하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며 강한 유감의 뜻을 밝혔다. 한 총리는 "법질서 확립을 위해 공권력 집행을 방해하거나 훼손하는 세력과 행동에 대해서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법과 원칙에 따라 엄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과 한 총리의 발언은 앞서 <조선일보>가 이날 1면 머릿기사에 '경찰이 두들겨 맞는 이 나라'라는 제목으로 폭행 사건을 보도한 것에 대한 일종의 화답으로 보인다. <동아일보>도 이날 사설에서 '경찰, 언제까지 시위대에 몰매 맞을 건가'라는 제목으로 '엄격한 법 집행관'이 될 것을 주문했다.
"불법이 합법 우롱"…"상습 시위꾼 검거"…"차라리 전쟁이라면"
경찰도 공격적인 발언을 연달아 쏟아내는 한편, 적극적인 폭행 사건 홍보에 나서고 있다. 이날 임명된 강희락 신임 경찰청장은 "경찰이 매 맞는 상황은 국민들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법질서 확립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강희락 청장은 특히 이날 취임식에서 `용산 철거민 점거 농성 사건'을 대표적인 불법 사례로 지목하면서 "불법이 합법을 우롱하고 폭력과 억지가 국민의 일상을 짓밟는 일은 다시는 용인될 수 없다"며 "주요 도로에 화염병을 던지고 도심 교통을 마비시키는 상황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주상용 서울경찰청장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상습 시위꾼'이라는 표현을 쓰며 "상습 시위꾼들은 200∼300명 정도로 그간의 채증 자료 등을 바탕으로 전원 검거하겠다"고 밝혔다.
주상용 청장은 "경찰을 공격하는 걸 묵과할 수 없다"며 "시위 노하우가 상당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용산 집회를 두고 "순수하게 (시위)한 사람은 다 떨어져 나갔고, 숫자가 줄어들면 도시 게릴라화한다"며 "죽기살기로 부딪혀오기 때문에 경찰도 피해가 생기겠지만 반드시 검거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그는 "(불법시위에 대해) 최루탄을 쏘면 쉽게 진압 가능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경찰봉도 거의 사용을 안 한다. 하퇴부를 공격할 수 있지만 폭행으로 비쳐질까 안 한다"며 "앞으로 검거 훈련을 보강해서 경찰 신뢰를 떨어뜨리지 않는 조치를 하겠다. 경찰 피해를 최소화하는 조치를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철성 영등포경찰서장은 이날 오전 집단폭행을 당해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경비계 소속 김모(27) 순경을 위로 방문한 자리에서 "1980년대에는 솔직히 백골단 등이 투입돼 심하게 시민을 진압하고 폭력적인 방법도 동원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누가 그러느냐"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어느 집회를 봐도 경찰이 먼저 공격하는 경우는 없다"며 "차라리 전쟁 상황이라면 마음껏 진압했을 텐데 그럴 수 없으니 우리로서도 답답하다. 주말마다 도로를 점거하는 등의 시위 방법은 분명히 잘못됐다"고 덧붙였다.
대책위 "시민도 많이 다쳤다"
한편, 경찰은 시위대를 해산하는 과정에서 연행한 8명 중 홍모(43) 씨 등 4명에 대해 경찰관 폭행과 불법 시위 혐의로 이날 오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또 서울 혜화경찰서는 이 경찰서 박모(36) 경사의 지갑을 빼앗아 신용카드를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는 용의자 신원을 확인해 검거에 나섰다고 밝히며 편의점 폐쇄회로(CC)TV에 찍힌 용의자의 사진을 공개했다.
경찰은 집회 채증 자료용으로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을 편집해 언론에 공개하는 등 집회의 폭력성을 부각하고 있다. 이는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집단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현장 동영상을 공개하지 않는 조치와 사뭇 대조적이다.
이에 대해 '이명박 정권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 홍석만 대변인은 이날 오전 평화방송 <열린세상 이석우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불법 시위라고 하더라도 적법한 직무집행이 있어야 하는데 경찰은 일방적으로 무시했다"며 "경찰이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데 사실상 시민들도 많이 다쳤다"고 지적했다.
홍석만 대변인은 "시청 쪽에선 동영상 생중계한 언론사들이 경찰에 강제로 감금돼 30여분 동안 취재를 못 하게 하고 그 다음에 그 과정에서 기자재가 파손이 되고 폭행당하는 일도 있었다"며 "또 일부 시민이 많이 다쳐서 응급실로 실려가는 일들도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홍 대변인은 "용산 참사 현장에 세워둔 전경버스에 방화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도 경찰에서는 전철연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방화를 했다고 주장했지만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며 "일단 무슨 일만 터지면 시위대와 범대위가 했다고 매도하면서 도덕성에 흠집을 내려는 시도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에 신용카드를 훔쳐서 사용했다면 그건 신용카드 절도 사건이지 시위와 이 사람을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홍 대변인은 "저희도 여러 증언과 자료를 수집해 별도의 기자 회견을 열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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