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태그플레이션. 지난해 8월 물가 상승 기조가 꺾이면서 한동안 언론의 지면에서 뜸해졌던 말이다. 하지만 2009년 들어 환율이 급등하면서 다시 스태그플레이션의 그림자가 한국경제에 드리우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이란 경기침체 가운데 물가가 오르는 상황을 뜻한다.
특히 환율이 오르면서 생필품 물가가 다시 크게 오르면서 서민경제는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에 빠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경제위기로 임금이 삭감되는 등 실질 소득은 줄어든 상태에서 생활물가는 크게 올라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다.
생필품값 상승은 '살인적'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 2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동월 대비 4.1% 올라 7개월 만에 오름세로 돌아섰다. 석유류, 농산물 등 가격 변동성이 큰 품목을 빼고 계산한 근원물가지수는 지난해보다 5.2%나 올랐다. 물가 상승이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생필품 가격의 상승은 거의 '살인적'인 수준이다. 품목별로 양파 69.3%, 귤 59.6%, 비스킷 46.7%, 국수 40.3%, 고등어 39.8%, 우유 35.1%, 돼지고기 25.3%, 세제 17%, 스낵과자 15.8%, 빵 15.2%, 화장지 15.2%, 고추장 14.7%, 라면 14.3% 수준이다.
여기에 설탕값, 밀가루값 인상이 더해질 기미다. 해당업체들은 환율급등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환차손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고 주장하낟. CJ제일제당은 지난해 11월 설탕의 출고 가격을 15% 인상한지 4개월 만에 또 15.8% 인상했다. 제분업체들도 밀가루값 인상 시기를 엿보고 있다. 설탕과 밀가루는 식류품의 주원료로 식료품 가격에 인상분이 줄줄이 반영될 수 있다.
휘발유 가격도 환율과 함께 오르고 있다. 8일 현재 서울 지역 주유소의 평균 휘발유 값은 ℓ당 1601.20원으로 1600원을 넘어섰다. 전국 주유소 판매 평균 휘발유 값은 ℓ당 1532.74원이었다. 지난 1월 ℓ당 1300원대였던 휘발유 값이 석달 사이에 300원이나 올랐다.
교육비 부담도 커지고 있다. 2월 교육물가지수는 1년 전에 비해 4.8% 올랐다. 새 학기를 맞아 여자 교복비는 12.5%, 남자 교복비는 12.3% 올랐고, 대입종합반 학원비는 8.4% 올랐다. 보육시설 이용료도 6.6% 상승해 평균 물가상승률을 크게 상회했다.
반면 소득은 줄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전국가구 월평균 실질소득은 302만3000원으로 1년 전에 비해 2.1% 줄었다.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수치다.
특히 전국가구 중 소득 하위 30% 계층은 가계살림이 적자가 난 가구의 비율이 55.1%로 전분기보다 4.4%포인트 늘었다. 반면 소득 상위 30% 중 적자가구의 비율은 10.4%로 2.7% 줄었다. 경제위기의 고통이 하위 계층에 집중되고 있다. 저소득 계층일수록 소득이 줄어들었는데 생필품 물가는 오르는 이중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가상승 원인인 환율, 진정 기미 안 보여
정부는 물가상승이 환율급등으로 인한 '일시적 현상'으로 보고 있다. 현재 환율이 오버슈팅(과열)된 것이라는 점에서 환율이 진정되면 물가불안도 가라앉을 것이란 진단이다.
문제는 환율이 언제 진정될지 누구도 모른다는 점이다. 이종우 HMC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환율에 대해 "상반기 동안 1400-1500원 대를 박스권으로 하는 높은 수준에서 머물 수 있다"고 예측하기도 했다. 이 센터장은 "그러면 지난해 나타났던 실물 위축 현상이 더 구체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수입업체는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놓일 것이고 환율 상승으로 물가도 강한 상승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환율이 내려간다 하더라도 물가는 이미 높은 수준에 '고정'돼 있게 된다. 한번 오른 물가는 쉽사리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서민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에 빠진 것에 대해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박순자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9일 "이런 경기침체 상황에서 환율폭등으로 물가각 오르면 우리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에 빠질 수 있다"면서 "무엇보다도 구조조정과 임금 삭감에 노출된 서민들로서는 생필품 가격마저 올라 이중고를 겪는 처지가 될 것이다. 외환당국은 환율 안정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런 상황은 12일로 예정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 결정에도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물가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해야 하는 한은 입장에서 경기침체 상황만을 고려해 금리를 무작정 내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은이 그동안 기준금리를 공격적으로 내려 현 기준금리는 2.0%로 사상 최저 수준이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이번 금통위에서 0.25% 금리를 인하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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