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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아줌마', 같고도 또 다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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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아줌마', 같고도 또 다른 이름"

[철학자의 서재] <동양 여성철학 에세이>

▲ <동양 여성철학 에세이>(김세서리아 지음, 랜덤하우스중앙 펴냄). ⓒ프레시안
한국 여성의 주체되기가 어려운 이유!

"라라랄라~ 달려가는 여성시대!"로 시작하는 한 개그 프로그램에서, 너무도 '안' 생긴 개그우먼이 자신을 남성과 여성의 평등을 지향하는 여성학자라고 소개하는 코너가 있었다. 남성처럼 수염을 길게 하고 나온 그 개그우먼이 "여자들은 왜 (…) 못하게 합니까? 저는 적극적인 여성이므로 당연히 (…)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외치면, 다른 패널들이 "에이~, 다른 여성들은 다 하는데!"라고 놀리고 그녀가 풀죽은 모습을 하면 끝나는 개그였다.

이 개그를 한때 유행했던 "생각대로 T!"라는 광고와 연결해 생각해보면, 현대인들은 뭐든 생각대로 이룰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여성들 또한 생각대로 남녀차별 없는 세상에서 진취적이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쫓아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다. 늘 그렇듯 '안' 생기지 않아야 한다는 등의 단서 조항도 그렇지만, 그 개그우먼처럼 남성에 가까움을 보여줄 수 있을 때라야 비로소 자기 뜻대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서구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여성들은 보통 이렇게 여성이 미를 한껏 뽐내거나 남성다움을 보여줘야 인정받을 수 있는 상황들을 두고 서구 근대 사상에 내재해 있는 문제점, 즉 이분법적 사유를 바탕으로 한 이성(남근)중심주의에 따른 여성 억압적 태도 때문인 것으로 생각한다. 여기서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란, 대립적 관계에 서 있는 남성을 뛰어넘어 여성을 여성 그 자체로 드러내줄 상징체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 있는 창조적 여성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보다 '우리'를 강조하는 한국적 상황에선 그런 서구적인 방법으론 뭔가 2%로, 아니 어쩌면 98% 부족하다.

한국 여성들의 좌절은 남성과의 대립적 구조보다는 유교 전통의 가족 제도와 연관된, 그 속에선 남자도 일정 정도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는 그런 전근대적이고 부정적인, 다시 말해 19세기적 삶의 경험들을 자신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하는 데서 비롯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동양 여성철학 에세이>(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의 글쓴이 김세서리아 역시 이 점을 강조해, 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으며 많은 서구 여성주의 이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여성철학은 한국적 사회 현실의 특정한 맥락 안에서 남존여비, 남아선호 사상, 명절증후군 등과 같은 한국 여성의 경험과 사유의 틀을 철학적 사유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한국 여성 문제점의 한 자락이 유교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한, 유교에 대한 검열 작업이 필수적이며 그래야 우리의 실제 삶과 유리되지 않은 지금, 여기, 나(우리)에게 주어진 문제를 올바르게 그리고 생생하게 건드릴 수 있다." (195쪽)

현대 사회에서 욕망하는 주체 이미지는?

개인의 이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유민주주의에서는 불합리한 전통과 결별하고 자신이 정한 규칙대로 행위하는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개인'을 가장 바람직한 인간상으로 여기며, 그 구체적인 실현 가능성을 위한 사회체제 구축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그 와중에 급변하는 정보화 사회로의 전환을 눈앞에 두게 되면서, 현대 사회에선 과거의 흉노족처럼 목적에 따라 전 세계를 누비면서도 개인의 자유롭고도 합리적인 선택들을 중요시할 줄 알며 또 스스로 판단하고 새로운 유형의 질서까지도 창조해낼 수 있는, 이른바 '도시 유목민'을 새로운 주체 이미지로 전망하며 그에 따른 사회체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변화와 그런 상황을 만들고 유지하는 시스템의 영향 아래, 서구 현대의 많은 여성들은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개인'이 되어 과거의 여성 억압적 구조에서 탈피하기를 욕망해왔고, 이제는 가정에서 사회, 자국에서 세계로 그 주된 삶의 영역을 확장시켜 나가며 스스로 창조적으로 도전하는 주체가 되기를 욕망하기에 이르렀다. 서구 현대 사회 또한 다양한 요구에 따라 여성들이 자신의 욕망에 따라 진취적이고 능동적으로 사고·행위하며 삶의 영역을 넓혀갈 수 있는 여건조성에 힘쓰고 있다.

그에 발맞춰 이리가레이·그로츠·브라이도티 등으로 대변되는 서구 3세대 페미니스트들은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차이'에 들러붙어 있던 부정적인 의미와 폭력적인 종속화 양식을 일소하는 것임을 주장하며, 새로운 주체 이미지(예를 들면, 유목적 주체) 형성을 통해 그것을 이루고자 한다.

이러한 활동들을 실시간으로 접한 다양한 층의 한국 여성들도 이제는 새로운 주체되기를 욕망하며 차이가 차별화의 근거일 수 없음을 주장하게 되었다. 서구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을 그 자체로 긍정할 수 있는 상징어(또는 체계)를 찾듯, 한국의 여성주의자들도 타자지배적이지 않으면서도 여성이 온전한 주체로 거듭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서고 있으며 한국의 여성철학자 김세서리아도 그런 선상에 있다 하겠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녀는 한국적 상황에 맞는 새로운 여성 주체되기의 모델을 찾아 동양의 신화, 유교, 노자철학 속으로의 긴 여행을 떠난다는 점이 다르다.

새로운 주체를 욕망하는 이유 또는 되려면?

한국 여성들 대부분은 태어나면서부터 또는 한때 동등하고 평등한 교육의 기회 가운데 한 개인으로서 자신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쫒다가도 결혼·출산·수유 앞에선 더욱 심하게 19세기적 삶의 상황과 21세기적 욕망 사에서 갈등을 겪게 된다. 악조건 속에서도 일부 여성들은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삶을 유지해 나가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울화병을 키우거나 대체 보상(자식과 남편의 성공 등)을 기대하며 고된 삶을 견디어낸다. 가정을 버릴 순 없으니….

남편을 탓하거나 사회체제를 욕하며 뭔가를 요구해보지만, 여성들 각자의 고통이 줄어드는 느낌은 없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공허함이 밀려와 저항하거나 나름의 돌파구를 찾을라치면 그런 여성들 이름 앞엔 언제나 '나쁜', '못된', '약아빠진' 등의 수식어가, 그녀들 가슴엔 죄의식이 남게 마련이다. 자기 자신을 찾으려는 또는 새로운 주체로 서려는 여성들의 노력이 가족 중 누군가를 희생 제물로 삼거나 가족의 해체라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아무 노력이나 대가 없이 새로운 의미(상징) 체계나 사고(행동)방식을 형성해낼 순 없을 테니 말이다. 저항(새로운 주체되기)의 끝이 타자를 지배하려거나 해체 그 자체에 머물려는 것이 아니라면 좌절해서도 안 된다. 한국인 각자가 오랜 세월 내면화해온 유교 전통의 사고방식이나 행동방식을 반성하고 바꾸지 않는 한, 억압 없는 사회체제로의 변화는 물론이고 밝은 미래 사회란 꿈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힘든 가운데서도 '새로운 주체되기'를 욕망한다면, 그럼 이제 새로운 주체 이미지 형성을 위해 과거 동양 철학으로 흔적 찾기 여행을 떠난 김세서리아의 <동양 여성철학 에세이>에 주목해 보자. 이 책에서 글쓴이는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소재들을 통해 동양의 전통 안에 보이는 페미니즘적 요소 또는 반페미니즘 요소를 동양철학 그것도 동양의 여성철학자의 관점에서 파헤치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말은 곧 글쓴이가 동양 전통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넘어, 여성주의와 연관하여 신화·유교·노자철학 등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 함의를 창의적이고 주체적으로 새롭게 읽어낼 것임을 뜻하는데, 여기서 독자들이 새로운 주체되기의 이미지를 그려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새로운 주체되기를 향한 흔적 찾기 여행

첫 여행지인 동양의 '신화'에서 글쓴이는 '항아'를 비롯한 동양 여신과 '여와', 영웅들의 처녀 어머니들 이야기를 통해, 주체적인 여성의 이미지가 나쁘지만은 않으며 한국 여성들도 그 자체로 긍정적인 창조적이면서도 독립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창출해낼 수 있음을 역설한다. 이 순간 허구로만 여겨져 오던 신화가 한국 여성들의 새로운 사고(행동)방식 모델로 되살아나게 된다.

다음 여행지는 음양 개념의 유래사로, 이곳에서 새로운 주체되기를 위한 흔적 찾기 여행의 절정이 이루어진다. 비로소 한국 남녀 차별화의 근거개념인 음양 개념이 처음부터 남존여비라는 가치 개념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었음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글쓴이에 따르면, 고대 중국에선 존재론적 개념으로만 사용되던 음양 개념이 가치 개념으로 바뀌어 남존여비의 관념으로 고착화된 것은 한, 송 대이다. 그러니 더 이상 한 시대에 국한된 음양 개념을 근거로 차이를 차별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비유컨대, 얼짱·몸짱을 기준으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평가할 수 없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로써 생명을 창출하는 원리이자 우주를 구성하는 음양 관계가 지금 우리가 생각하듯 모순이나 대립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끌어안는 혹은 서로를 있게 하는 존재 원리이며 음과 양은 서로 다른 성질(차이)을 지니지만 서로 동등한 지위를 가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것으로 모든 것이 다 해결된 것은 아니다.

글쓴이는 남녀차이뿐만 아니라 여성들 간의 차이까지도 고려할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차이를 가지면서도 둘 간의 차이(틈) 안에 무수히 많은 사이가 존재할 수 있음을 이해할 것을 촉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이 개발이 곧 차이의 인정과 그 안에서의 연대, 융화, 총화를 고려하게 하는 것임을 역설한다.

제도화된 어머니를 넘어서

'어머니'라는 여행 종착지에 다다르면서 글쓴이의 목소리는 좀 더 권고적으로 바뀐다. 여기서 글쓴이는 유가 인간 본성론에 따를 경우, 여성은 도덕 주체(군자나 성인)가 될 아들과 남편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해야하는 조력자에 불과하지만, 한국 여성들이 "임신, 출산, 수유라는 생물학적 측면과 자녀 양육이라는 사회적 역할, 자애롭고 희생적인 품성 등을 여성의 중요한 자질로 강조해온 제도화된 모성"에 갇힐 필요 없다고 역설한다.

특히 유교적 여성 정체성의 내면화가 혈연애에 매몰되어 '우리'라는 핑계를 대고 '나' 중심적인 행위를 산출하는 '아줌마'를 양산할 수 있음을 경고하며, 인간에게 유의미한 유교의 가르침에 따라 끊임없는 배움의 과정과 부단한 자기개발의 의지와 힘을 산출할 것을 촉구한다. 글쓴이는 이를 위해 하나의 방법으로, 한국 여성들이 인간의 몸과 그에서 비롯된 욕망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양명학 또는 주체적 실천을 존중하는 태주학파 등의 사상을 잘 활용하여 바람직한 몸 가꾸기, 좋은 욕망 길들이기에 성공하기를 권유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여성들 사이에 스스로의 교환과 소통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나갈 수 있는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라도 입양·대안가족·공동체 가족 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열린 마음으로 가족 개념을 이해하는 자세를 가질 것을 당부한다.

마지막으로 글쓴이는 노자철학이 자연을 살아 있는 존재 또는 생명을 키워내는 근원지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사회법칙이나 문명에 대한 비판적 무기로 활용될 수 있지만, 노자철학을 통한 어머니에 대한 존경심 표하기는 자칫 여성을 다시 한 번 가족 내 희생자로 만들 수 있는 억압의 원천일 수도 있음을 상기시키며, 노자철학이라는 상징체계에서 찾아야 할 것은 "높으면 누르고 낮으면 들어올리며, 남으면 덜어내고 모자라면 보태준다로 수렴되는 자연의 원칙을 이해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나도 타자들도 자유로울 수 있게 하는 주체되기를 욕망하며….

'철학자의 서재'는 <프레시안>과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서평 연재입니다. 매주 주말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철학자들이 심사숙고해 선정한 책을, 철학자가 직접 심혈을 기울여 쓴 서평으로 소개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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