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추가로 흔들린다면 더 이상 지지선을 예상하기 어려운 형국으로 상황이 나빠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서서히 제기된다. 환율상승분을 감안할 때 현 주가 수준은 이미 1992년 당시로 돌아섰다.
결국 환율이 앞으로 금융시장 전망의 핵심지표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환율 폭등세가 멈추지 않는다면 국내 금융지표를 시작으로 실물경제에도 어느 때보다 강한 압박이 추가로 가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위기설'의 주무대로 꼽힌 3월 첫 거래일, 코스피지수와 원-달러 환율은 기존 하락·상승 추세를 그대로 이어갔다. 강도는 지난 달보다 더 강해졌다. ⓒ연합뉴스 |
외국인 연일 순매도…코스피 세자릿수 장기화하나
2일 코스피지수는 개장과 함께 큰 폭으로 자유낙하한 끝에 전날보다 44.22포인트(4.16%) 하락한 1018.81로 장을 마감했다. 새해 들어 연일 최저점 기록을 쏟아낸 끝에 지난해 10월 23일(1049.71)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밀려났다.
15거래일 째 연속 순매도 행진을 이어가는 외국인은 이날도 무려 4164억 원 순매도를 기록해 장 하락세를 이끌었다. 이날 순매도 물량은 지난해 11월 4일(4496억 원) 이후 최대 규모다. 외국인과 함께 프로그램에서도 5999억 원 규모의 매도우위 기조가 이어져 지수하락을 부채질했다.
개인이 대규모 순매수로 외국인의 매도 물량을 소화하고 장 초반 순매도세를 보이던 연기금도 막판 들어 순매수로 전환, 10거래일 연속 순매수 기조를 이어갔으나 하락장을 되돌리기는 역부족이었다.
주가가 하락세를 멈추지 않자 이제 시장에서는 세자릿수 재진입을 넘어 지난해 10월 27일 기록한 저점(892.16)마저 위협받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성진경 대신증권 시장전략팀장은 "기술적 분석으로 볼 때 1000선은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대내외적 환경이 점차 악화돼 투자심리가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며 "기업이익 전망치도 이미 많이 낮아진 상태라 1000선이 깨진다고 해도 저점매수를 유발할 매력이 떨어진다. 지난해 저점을 테스트하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만약 코스피가 신저점을 다시 찍는다해도 지난해와 같은 빠른 반등세를 기대하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온다. 지난해 당시는 저점을 찍은 후 빠른 속도로 주가가 반등, 사흘만에 1000선을 다시 회복했다.
이승우 대우증권 연구위원은 "이미 빠른 속도의 V자형 반등은 물 건너 갔다. 아직까지 코스피를 시작으로 경기가 장기침체기에 진입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실물과 금융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모양새라 주가지수 저점 횡보의 장기화 가능성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했다.
성 팀장도 "대외여건이 워낙 불투명해 일정부분 저지선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저가매수세 유입이 어렵다"며 "만약 주가지수가 세자릿수에서 오랜 기간 머문다면 추가하락 공포는 더 커질 수 있다는 점도 문제"라고 평가했다.
"달러 환산시 이미 코스피 1992년 수준"
이와 관련, 환율상승분을 감안했을 경우 이미 코스피지수는 17년 전 수준까지 내려왔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성봉 삼성증권 연구위원은 이날 오전 보고서를 내고 "최근 환율 수준을 감안한 코스피지수는 400선대며 이는 지난 1992년 8월 당시 명목주가지수(물가상승분을 제외하지 않은 지표) 500선 수준"이라며 "지금 외국인에게 코스피지수는 500선 수준이라고 느껴질 수 있다. 원화로 계산하는 코스피지수를 달러 환산시 고점대비 이미 70%가량 주가가 빠진 상태"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코스피지수가 낮은 수준까지 미끄러진 상태라 만약 세자릿수 하락 후 빠른 반등에 실패할 경우, 자칫 과거 20여년 간 지속된 게걸음장세가 다시 시작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대외 경기전망이 워낙 불투명해 기업실적 개선 가능성을 점치기 어려운데다 상승장세를 이끌어갈 매수주체를 찾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달러환산지수로 전환한 코스피지수 움직임. 현재 코스피지수는 환율상승분을 감안할 경우 지난 1992년 8월 수준까지 떨어진 상태다(삼성증권 제공). ⓒ프레시안 |
즉, 현재 지수가 1000이라손 치더라도 기준지수가 만들어지던 지난 1980년 1월 4일 당시 환율(약 600원)로 환산할 경우 400대로 평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코스피의 장기 횡보는 금융시장 전체의 자금 재생산성을 낮출 수도 있다. 지수가 활기를 띄지 못하면서 투자수익률이 낮아진다면 저금리 때문에 은행으로도 회귀하지 못하는 자금이 단기시장으로만 흘러들어갈 뿐, 시장에 고른 유동성을 배분하는 데에는 기여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실물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소재용 하나대투증권 금융경제팀장은 "이미 경기가 마이너스 수준으로 돌아서 현재 코스피에도 경기 부진이 상당부분 반영된 상태"라면서도 "하지만 만약 주가가 저점 횡보를 장기화한다면 경기회복 속도를 늦추는 시그널로 새롭게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1600원선 코앞…'문제는 환율'
문제는 환율이다. 환율이 안정되지 않는 한 지금의 금융시장 침체는 한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날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일대비 36.30원 오른 1570.30원에 거래를 마쳐 종가기준으로 지난 1998년 3월 이후 1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12시 23분경까지도 상승세를 멈추지 않았으나 오후 들면서 당국으로 추정되는 세력의 매도물량이 나와 상승분을 일부 반납했다.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미국 정부의 금융규제와 상업은행 국유화 등이 2차 금융위기 도래 가능성을 자극한 데다 심리적 저항선이던 1500선이 완전히 멀어졌다는 사실이 상승세를 자극한 것으로 판단했다.
최창호 굿모닝신한증권 투자분석부 차장은 "특히 환율 문제가 경기 불확실성을 상당부분 반영하는 모습"이라며 "금융시장에서 심리는 매우 중요한데 지금의 불안함을 해소할 재료가 없어 환율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은 (심리 안정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환율 상승세를 진정시킬만한 이슈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대체로 이번 주 내에도 지속적인 1600선 테스트가 이어질 것이라는데 의견을 모은다.
이승우 연구위원은 "장기적 경기 전망이 여전히 어두운 가운데 은행 국유화 등 단기이슈가 추가로 시장을 압박하는 형국"이라며 "당분간은 환율 상승 추세를 반전시킬 이슈가 없다는 점이 부담"이라고 언급했다.
소재용 팀장은 "작년 9월과 비교할 때 내부적 요인은 당시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문제는 대외여건이 더 나빠졌다는 데 있다"고 평가했다.
외국인이 떠는 이유…"대공황 목전?"
그나마 동유럽 위기나 미국 은행 국유화에 따른 금융 추가불안 리스크는 이미 시장에 노출된 재료다. 만에 하나 미국 다우존스산업지수 등 주요 금융지표가 일제히 대공황 당시 모습을 이어간다면 파국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질 수도 있다.
이와 관련, 김성봉 연구위원은 "다우지수는 이미 2002년 저점을 하향돌파해 추가 하락할 경우 딱히 지지선을 찾기 어렵다. 명목 다우지수는 1997년 수준이지만 소비자물가를 차감한 실질 다우지수의 경우 1995년 수준까지 떨어진 상태"라고 지적했다.
1990년대 중반은 인플레이션 없는 장기 안정성장, 곧 '골디락스' 추세가 이어져 신경제가 도래할 것이라는 믿음이 강할 때다. 김 연구위원은 "다우지수가 여기서 더 무너진다면 결국 신경제 이전의 경제로 세계 경제가 회귀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결국 현재 미국 증시는 대공황과 블랙먼데이 사이의 기로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블랙먼데이 당시 다우지수는 단기간 급락했지만 이후 완만한 반등세를 이어갔다. 반면 대공황 당시는 반등에 실패하면서 하락 전환 후 약 3년 간 80%가 넘는 하락률을 기록했다.
아직 저점을 찾기 어렵다는 평가가 현실화한다면 미국 증시는 블랙먼데이가 아니라 대공황기로 돌입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곧 원-달러 환율 추가 상승은 물론, 코스피 등 주요 경기지표 추가 하락을 자극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에는, 세계경제 추가 침체로 연결될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 '제2의 대공황'이 주가지수 상으로는 가능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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