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는 눈싸라기 같다는 말이 있다. 한순간에, 작은 일 하나에도 금방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삼성 비리를 꾸준히 공론화해 왔던 시민사회단체들이 삼성 관련 사건을 심리 중인 대법원을 향해 던진 충고다. 삼성 관련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납득하기 힘든 태도가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흔들고 있다는 것.
2일 오전, 서울 서초동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실에서 민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등 1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가운데 열린 '삼성재판 대법원 의혹 관련 공동기자회견'에서 나온 이야기다.
실제로 최근 삼성 사건을 처리하는 대법원의 태도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대법원은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발행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넘기기로 한 대법관들의 결정을 뒤집고, 소부에서 다시 심리하기로 결정했다. 대법관들의 독립적인 결정을 대법원이 행정적 조치를 통해 뒤집은 셈이다.
이보다 앞서 대법원이 최근 소부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삼성 비리 사건에 대한 입장이 대법원장 및 다수 대법관과 다른 특정 대법관을 배제하려 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관련 기사 : 대법원, '삼성 판결'이 두려운가, "정권 바뀌었으니 법원도 변해야 하나?")
이처럼 납득하기 힘든 대법원의 태도에 대해 민변, 정의구현사제단 등은 이날 회견에서 조목조목 문제를 제기했다. 이들은 삼성특검법이 지난해 말까지로 정한 판결 선고 기한을 대법원이 이미 넘겼지만, "신중하고 충실하게 법률적 검토를 하기 위해서라면 그 시한을 넘기는 것도 기꺼이 수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인내할만한 상황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대법관 의견 엇갈리는 삼성 사건, 전원합의체로 넘겨야"
뚜렷한 이유 없이 선고가 늦어지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대법원이 현재 보이는 모습에는 이보다 중요한 문제가 많다. 삼성 관련 사건, 즉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발행 사건과 2007년 김용철 전 삼성 구조본 법무팀장의 양심고백을 계기로 구성된 삼성특검이 기소한 사건에 대한 대법관들의 의견이 서로 엇갈린다는 점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런 경우, 전원합의체 재판을 통해 판결하는 게 현행 법 취지에 부합한다.
이날 회견에 참가한 이들의 설명은 이렇다. "헌법과 법률에 따르면 대법원에서의 재판은, 대법관 13명이 모두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재판을 말하는 것이다.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재판을 하는 것은 예외적인 것으로, 전원합의체에 참여하는 13명의 대법관이 모두 의견이 일치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소부를 구성하는 4명의 대법관에게 재판을 맡긴 것이다.
따라서 만약 소부에서 재판을 하던 중 대법관 사이에 이견이 생기고 의견이 일치되지 않는다면, 사건은 전원합의체에 의해 심리되어야 한다. 전원합의체로 사건을 넘길지 별도 결정단계를 거치는 게 아니라, 소부에서 최종적으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넘어가는 것이라는 점은 법원행정처장도 최근 국회 업무보고에서 확인한 바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13명의 대법관이 서로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도 전원합의체 회부 결정을 무시하고, 소부에서 다시 심리하도록 했다.
"삼성 변론 전력 때문에 전원합의체 재판 두려워하나"
이에 대해 이날 회견 참가자들은 "대법원은 전원합의체에서 재판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얄팍한 술수를 쓴 것으로 비난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은 "법원은 삼성사건에 대해 이처럼 이례적인 조치를 취한 과정을 해명하고, 이번 조치에 대한 이유있는 의혹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해야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회견 참가자들은 대법원이 삼성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넘기는 것을 꺼리는 이유가 이용훈 대법원장과 일부 대법관 때문이라는 의혹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삼성에버랜드 사건 당시 삼성 측 변호인을 맡았었다. 당시 이 대법원장이 취한 변호 논리가 삼성 특검 기소 사건에 대한 1, 2심 법원 판결에서도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이런 논리 및 판결은 유사한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례 및 삼성에버랜드 사건에 대한 1, 2심 판결 내용과 상충된다. 따라서 같은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판결에 대해 최고심인 대법원이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었다.
이날 회견 참가자들은 "혹시 삼성사건이 전원합의체에 회부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대법원장과 일부 대법관들이 종래 이 사건에 관련되어 있어서 회피 또는 기피대상이 될 수 있는 상황을 피하기 위함이 아닌가 하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한 뒤, "그런데 우리는 그 판사들이 회피 또는 기피 대상이 되는 것을 그토록 싫어할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다. 또한 그 이상의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은 "일부 판사들에게 회피할 사유가 있어 스스로 재판을 회피하는 것은 불미스러운 것이 아니라 재판결과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확보하고, 사법부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다"라며 "이번 삼성사건에 관하여 즉시 이를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고 연관된 판사들이 재판을 회피하는 것은,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두텁게 할 절호의 기회가 될 것임을 사법부는 지금에라도 자각하길 바란다"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대법원, 국민의 신뢰를 되찾고자 하는가, 스스로 공정성과 독립성을 포기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회견문 전문.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을 비롯해 삼성그룹 임원들이 피고인인 삼성특검 사건과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발행 사건 등 재판 2건이 대법원에 오랫 동안 머물고 있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사건 심리가 지연되고 있음만을 우려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진정 우려하는 것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심리해야 할 상황이 발생했음에도 이를 피하기 위해 대법원이 커튼 뒤에서 온갖 의혹을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대법원은 삼성특검법이 정한 판결 선고 기한을 이미 넘겼다.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우리는 대법원이 신중하고 충실하게 법률적 검토를 하기 위해서라면 그 시한을 넘기는 것도 기꺼이 수용할 수 있으며, 그런 기대 속에서 지금껏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왔다.
그러나 두 개의 사건을 다루는 대법원 각 소부에서 의견일치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언론보도가 몇 달 전부터 간간이 나오던 데 이어, 최근 대법원에서 소부를 재구성하고 두 사건을 재배당한 과정을 종합해보면, 신중하고 충실한 검토 때문만이 아니라 다른 어떤 이유로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 아닌가 의심할 만한 여러 가지 사유가 드러난다.
헌법과 법률에 따르면 대법원에서의 재판은, 대법관 13명이 모두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재판을 말하는 것이다.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재판을 하는 것은 예외적인 것으로, 전원합의체에 참여하는 13명의 대법관이 모두 의견이 일치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소부를 구성하는 4명의 대법관에게 재판을 맡긴 것이다.
따라서 만약 소부에서 재판을 하던 중 대법관 사이에 이견이 생기고 의견이 일치되지 않는다면, 사건은 전원합의체에 의해 심리되어야 한다. 전원합의체로 사건을 넘길지 별도 결정단계를 거치는 게 아니라, 소부에서 최종적으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넘어가는 것이라는 점은 법원행정처장도 최근 국회 업무보고에서 확인한 바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언론을 통해 알려진 여러 사정을 종합해보면, 애초 삼성에버랜드 사건을 심리했던 대법원 2부에 참여하고 있던 4명의 대법관은 치열한 심리를 벌였으나 일치된 결론을 내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2009년 1월 중순경 전원합의체에 넘기기로 결정하였다는 것이다.
대법원 소부에서 전원합의체 회부 결정이 내려지면 주심대법관이 수석대법관에게 보고하고, 수석대법관은 전원합의체용 보고서 작성을 재판연구관에게 지시하게 되는데, 이러한 절차가 한 달이 지나도록 진행되지 않았고, 한 명의 대법관이 임기만료로 퇴임하였다는 이유로 대법원은 지난 2월 18일 소부를 개편하여 새로운 소부에서 삼성사건 2건 심리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대법원의 조치가 법과 원칙에 충실한 것인지, 아니면 삼성사건에 대한 또 다른 정치적 의지가 작용한 결과인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확인된 것은 삼성에버랜드 사건을 맡았던 대법원 2부 대법관들의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고, 전원합의체로 넘기기로 결정하였다는 점이다. 또한 삼성특검 사건이 삼성에버랜드 사건과 법적 쟁점이 같다는 점에서 삼성에버랜드 사건이 전원합의체로 갈 경우 삼성특검 사건도 전원합의체로 가야하고, 특히 삼성특검 사건의 경우 2심에서 대법원 판례와 반하는 판결을 선고하였으므로 전원합의체의 심리를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전원합의체를 통한 재판을 극구 피하려고만 하고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대법원은 전원합의체에서 재판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얄팍한 술수를 쓴 것으로 비난받을 수밖에 없다. 대법원은 삼성사건에 대해 이처럼 이례적인 조치를 취한 과정을 해명하고, 이번 조치에 대한 이유있는 의혹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대법원만은 법과 원칙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고 믿은 만큼 대법원의 판단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지금 대법원에 대해 쏟아지는 의혹이 해명되지 않는다면,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판결결과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국민들은 사법부가 법과 원칙에 따라 재판하는 것을 기대하고 신뢰한다. 대법원은 국민의 기대를 저버려서는 안된다. 재판은 정의롭고 공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렇게 보여야 한다는 경구는 대법관들이라면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다.
혹시 삼성사건이 전원합의체에 회부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대법원장과 일부 대법관들이 종래 이 사건에 관련되어 있어서 회피 또는 기피대상이 될 수 있는 상황을 피하기 위함이 아닌가 하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판사들이 회피 또는 기피 대상이 되는 것을 그토록 싫어할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다. 또한 그 이상의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일부 판사들에게 회피할 사유가 있어 스스로 재판을 회피하는 것은 불미스러운 것이 아니라 재판결과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확보하고, 사법부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다. 이번 삼성사건에 관하여 즉시 이를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고 연관된 판사들이 재판을 회피하는 것은,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두텁게 할 절호의 기회가 될 것임을 사법부는 지금에라도 자각하길 바란다.
신뢰는 눈싸라기 같다는 말이 있다. 한순간에, 작은 일 하나에도 금방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지금 전 사회가 신뢰의 위기를 겪고 있다. 사회 신뢰구조의 최후 보루라는 사법부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 사건의 처리과정은 대법원이 국민의 신뢰를 얻고자 하는 노력을 시작할 것인지 아니면 신뢰의 기반 자체를 무너뜨릴 것인지를 방증할 것이다.
우리는 대법원이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잘못을 더 이상 범하지 말 것을 촉구하며, 아울러 대법원이 그 동안의 경과를 해명하고 관련 사건들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지 않을 경우 보다 강력한 행동에 나설 것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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