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도 없었다. 기자회견도 없었다. 비서관 회의에서 한 대통령의 말만 보도되었다.
"비판은 겸허하게 수용하고 다양한 여론을 경청하되, 일희일비하거나 좌고우면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끝을 모르고 추락하는 경제, 악화일로에 있는 민생, 격화되는 사회갈등, 이명박 정부 1년의 성적표가 낙제점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밖에도 많다. 소통부재로 인한 민심이반도 여전하고 사회갈등을 유발하는 당파성 짙은 국정운영 기조도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에게나 국민에게나 우울한 1주년이고 답답한 1주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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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대통령의 언명이 무색하게 되었다. 불과 한 달 반 만에 '상임위 직권상정 → 국회 마비 → 정국 경색'이라는 "예정된 파행"이 다시 연출되었으니 말이다. 한나라당은 국회 내 토론과 심의의 전제인 상임위 상정 자체를 민주당이 원천 봉쇄한 상황이므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설명하나, 그런 형식 논리로 풀어가기에는 여·야간 불신의 골이 너무 깊은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이로써 지난 1월의 여·야 합의가 무효화 되었다는 사실인데, 당시의 여·야 합의가 해머까지 동원된 국회 폭력 사태를 수습하면서 만들어진, 대화정치와 타협정치를 꽃피울 씨앗과도 같은 소중한 합의였다는 점에서 더욱 아쉬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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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외통위의 직권상정이 돌출적이었던 반면 이번 문광위의 직권상정이 범여권의 전략에 따른 잘 준비된 행동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직권상정은 단순히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 것이 아니라 훨씬 파괴적으로 확대 재생산 됐다고 하겠다. 과연 범여권 내에서 정치 기획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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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국회 파행과 여야 타협을 거치면서 여권을 과연 무엇을 배웠을까? '밀어붙이기'가 아니라 대화와 타협을 통한 '협력정치'만이 통합적 국정운영을 가능케 한다는 점, 그런 의미에서 '여야 협력정치'야말로 진정으로 '저비용, 고효율의 정치'라는 점을 아직도 깨치지 못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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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기력하게 나가면 우리 지지층은 실망하고 분노할 것이다."
"민주당의 전략은 한나라당이 일을 못하게 하고 법안심사를 못하게 함으로써 우리를 무기력증에 빠뜨리는 것이고 지금까지 성공한 것 아니냐. 여기에 말려들어가선 안 된다."
지난 25일 한나라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했다는 이상득 의원과 홍사덕 의원의 발언이다. 이 발언이 나온 날 오후 문광위의 미디어 관련법 직권상정이 강행되었다. 이상득, 홍사덕 의원의 발언과 문광위 직권상정 사이의 인과관계를 증거 할 자료는 없다. 박희태 대표가 그 전날인 24일 직권상정 방침을 먼저 결정했다면서 앞으로 나선 형국이니만큼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우연일까?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의원의 생각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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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다가도 선거 때만 되면 날을 세우는 것이 정당들이다. 4월 재보궐 선거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왔으니 여·야 모두 제정신이 아닐 수도 있겠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국정을 이토록 정략적으로 운영해도 괜찮은 걸까? 국정을 운영하면서 '국민'이 아니라 '우리 지지층'을 먼저 찾는 이들에게 과연 정략을 넘어선 정치, 정치꾼을 넘어선 정치인을 기대할 수 있을까?
"좌고우면 하지 말고 심기일전 하자"는 대통령의 각오가 무색해지는 취임 1주년 즈음의 풍경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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