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이었던 강만수 국가경쟁력위원장의 소신이었다. 강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수출을 늘려 7% 경제성장률을 달성한다는 목표로 '환율주권론' 등을 주장하면서 고환율 정책을 썼다. 그러다가 작년 9월 미국발 금융위기가 본격화되면서 환율이 급등하자 뒤늦게 치솟는 환율을 끌어 내리느라 지난 연말까지 전체 외환보유고의 1/4에 달하는 600억 달러 가량을 허비했다.
지난 연말 정부의 강력한 개입으로 다소 안정세를 보였던 환율은 동유럽발 금융위기 가능성 등 '2차 위기'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치솟고 있다. 지난 24일 원-달러 환율은 지난 1998년 3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인 1516.30원을 기록했다.
윤증현 "환율은 수출 확대의 동력"
▲ 강만수 전임 장관의 환율정책 실패로 여지가 줄어든 탓도 있겠지만, 윤증현 장관 역시 '고환율=수출 증대'라는 등식을 들고 나온 것에 대해 시장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의문이다. ⓒ뉴시스 |
미국, 중국, 유럽 등 대부분의 나라들이 극심한 경기침체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과연 환율이 높다고 수출이 늘어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지금처럼 높지는 않았지만 환율이 크게 오른 상태였던 지난 1월 우리나라 수출은 전년 대비 30% 넘게 감소했다.
따라서 '고환율이 수출기업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윤 장관의 주장은 현실에 맞지 않다. 더구나 상당수의 수출기업이 상품생산을 위해서는 원자재, 기계, 부품 등을 수입해야 한다는 점에서 고환율이 수출기업의 부담을 덜어주는 작용만 하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정부 장관들은 '고장난 라디오'처럼 "환율 상승이 수출에 도움이 될 것"이란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또 윤 장관의 이같은 발언은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윤 장관은 취임 직후만 하더라도 환율 급등에 대해 "지나친 쏠림에 대해 좌시하지 않겠다"며 개입 의사를 밝혔었다. 한국은행 관계자도 "외환보유액 2000억 달러를 유지하는데 연연하지 않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며칠 사이에 정부의 입장이 바뀐 것이다.
작금의 환율 급등이 동유럽의 금융위기 등 국제시장의 불안감이 증가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정부가 섣불리 외환시장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자칫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강만수 경제팀의 환율정책의 실패로 정부는 이미 지난 한해 외환보유고에서 600억 달러 넘게 소진했다. 1월말 현재 외환보유액은 2017억 달러로 유동외채인 1939억6000만 달러에 비해 77억4000만 달러가 많을 뿐이다. 유동외채는 만기 1년 이내의 단기외채와 남은 만기가 1년 이내인 장기외채를 합한 것이다. 외환보유액이 빠르게 줄어듬에 따라 유동외채 비율이 지난해 말 현재 96.4%로 급증했다. 유동외채 비율이 100%에 육박한 것이다. 돈을 빌려준 외국계 금융기관이 만기연장을 안해주고 상환요구를 할 경우 1년 안에 외환보유액이 바닥이 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하고 싶어도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사정을 볼 때 정부가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고환율은 수출 확대의 동력이 될 것'이라는 말도 안되는 주장으로 일관하는 것도 신뢰할 만한 태도가 아니다.
'3월 위기설' 대응도 똑같아
한편 윤 장관은 이날 '3월 위기설'에 대해서도 "올해 1분기에 만기가 돌아오는 일본계 만기차입금은 20억 달러에 불과하고 일본계 자금이 국내 채권과 주식시장에 투자한 비중도 전체 외국인 투자 비중 대비 각각 0.6%와 2%에 지나지 않는다"며 가능성을 일축했다.
'3월 위기설'에 대한 윤 장관의 대응도 강만수 위원장의 복사판이다. 하지만 '3월 위기설'의 본질은 단순히 일본계 자금의 회수 문제가 아니라 동유럽 등 이머징마켓이 불안해지면서 외국계의 투자자금 회수 움직임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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