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이상하다. 한나라당 안에서 다른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문방위 한나라당 간사인 나경원 의원이 말했다. "(미디어 관련법을)상정만 해준다면 2월 중에는 처리하지 않겠다는 수정제안도 (민주당이) 거부하고 있다"고 했다.
한나라당의 3선 중진인 권영세 의원이 말했다. "괜한 정치적 논란을 일으킬 법안은 뒤로 미루고 한나라당이 경제에 올인 한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했다.
또 있다. 여권 실세인 이상득 의원이 지난 8일 이명박계 비공개 모임에서 했다는 말이다. "앞으로 100일이 국정을 판가름한다"고 했다.
종합하면 이렇다. 한나라당은 전투태세를 갖추지 못했다. 당내 이견이 공공연히 표출될 정도로 집안 단속에 실패하고 있다. 초재기에 몰려있는 것도 아니다. 꼭 2월 국회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절박감도 없다. 오히려 앞으로 100일을 내다볼 정도다.
그럼 뭔가? 성동격서 전략일까? 야당의 말초신경을 미디어 관련법에 집중시킨 다음에 다른 쟁점법안을 처리하려는 걸까?
가능하지 않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경고했다. "한나라당이 미디어법을 직권상정할 경우 지난해 12월 외통위 사태가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상임위 활동 전면 보이콧을 경고한 것이다.
야당이 이렇게 나오면 쟁점법안 처리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상임위가 사실상 마비되고 법안 심의는 중단된다. 결국 기댈 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뿐인데 이조차 불투명하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은 국민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할 때만 할 것"이라고 선을 그어버렸다.
그래서 궁금하다. 한나라당은 도대체 뭘 어쩌자는 것인가? 당장 처리할 의사가 없으면서도 미디어 관련법으로 전운을 고조시키는 이유가 뭘까?
그게 고리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당 입장에서도 미디어 관련법이 고리이기 때문이다.
의장 직권상정 카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면 한나라당이 강구할 묘책은 따로 없다. 오로지 하나, 쟁점법안에 대한 일괄타결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변해야 한다. 핵심 쟁점인 미디어 관련법에 대한 입장을 조정해야 한다. 야당이 내세우고 국민이 그렇게 바라볼 정도로 '등가교환'의 모양새를 만들어줘야 하고 그러려면 최소한 미디어 관련법에서 양보안을 내놔야 한다. 철회 또는 대폭 수정 카드를 내놓고 금산분리와 출총제 같은 '경제법안'을 따내야 한다.
민주당 입장도 마찬가지다. 의석수가 절대 열세인 자신들 입장에서 일괄타결을 통해 주고받기를 하는 것 자체가 성과다. 그래서 굳이 마다 할 이유가 없다. 다만 한 가지가 걸린다. 거래품목이다, 사문화 되다시피 한 출총제를 내주는 것까지는 강구할 수 있어도 금산분리마저 맥없이 내주면 역풍에 휘말릴 수 있다. 경제민주화의 근간을 흔들었다는 지지층의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 이런 역풍을 피하려면 분산시켜야 한다. 관전자의 눈길을 상징효과가 큰 쪽으로 돌려야 한다.
맞아떨어진다. 미디어관련법을 놓고 전운이 고조되면 극적 효과는 배가된다. 한나라당의 '양보'는 대승적 결단이 되고 민주당의 '거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된다.
문제는 시기다. 일괄타결을 이룰 시기를 언제로 잡느냐가 중요하다. 당기면 잡음이 나온다. 여야 모두 '너무 쉽게 내줬다'는 내부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미루는 게 좋다. 가급적 2월 국회 이후로 미루는 게 좋다. 이왕이면 4월 재보선 쟁점이 되지 않도록 멀찌감치 미루는 게 좋다.
근데 난감하다.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그 사이에 몇 가지 변수가 돌출될 수 있다.
한나라당의 원내 지도부가 바뀐다. 누가 원내대표가 되느냐에 따라 타결의 기조가 흔들릴 수 있다.
재보선 결과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행여 어느 한 당이 참패를 하는 상황이 빚어지면 정국지형이 바뀌고 이해의 균형관계가 깨진다.
여야 모두 일괄타결의 불가피성을 인정한다면 남는 문제는 결국 시기다. 어떤 시기에 어떤 모양새를 연출하며 일괄타결을 이뤄낼지가 관건이다. 무작정 당기지도 않고 마냥 미루지도 않는, 절묘한 타이밍을 잡아내는 게 관건이다.
물론 단편적일 수 있다. 이런 진단과 전망이 반쪽짜리에 불과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상수, 바로 청와대의 희망과 욕심과 전략을 살피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뜨뜻미지근한' 홍준표 체제 대신 강성 원내 지도부를 세운 다음에 입법전쟁을 재촉발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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