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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말로만!

[김종인·전성인의 한국경제論] 한국경제 현안 <상>

최근 진동수 금융위원장이 11년 만에 정부가 공적자금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한국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가 미국발 금융위기라는 외부충격만이 아니라 한국경제 내부의 구조적 문제가 폭발한 것이라는 점에서 '구조조정'은 중요한 현안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발표한 구조조정안을 보고 11년 전의 '실패'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김종인 박사는 "정부가 명확한 산업정책의 비전을 갖고 산업 전반에 대한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데 현재와 같은 애매한 잣대로는 제대로 안 된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97년 IMF 위기 이후 구조조정도 기업의 과잉부채와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정부가 공적자금을 통해 해소해주는 것으로 그쳤다. 공적자금 조성 등 돈 쏟아부을 계획만 내놓고 산업정책의 방향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현 정부의 구조조정안 역시 11년 전 행태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김 박사는 특히 건설업, 조선업 등의 구조조정이 필요하게 된 근본 원인이 과잉투자에 있다면서 "5000만의 경제 인구를 가진, 자원이 별로 없는 나라에서 어떻게 하면 자원을 효율적으로 쓸 것인가를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정한 게임을 주관하는 '심판'인 정부가 '경쟁'이 가져오는 효율성을 맹신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이번 연재분을 위한 대담은 지난 2월5일 김종인 박사의 사무실에서 진행됐다.<편집자>


전성인 : 오늘은 한국경제의 현안에 대해 얘기를 나눠봤으면 합니다. 건설-조선업 구조조정, 부동산 경기, 금융 구조조정, 정부의 친기업 정책, 한미 FTA, 감세 등 재정정책, 대북경협, 노동시장 등을 주요 주제로 했으면 합니다.

우선 한국경제 상황을 보면, 최근까지 공식적인 국내 경제연구단체의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 전망은 0에서 2% 사이였는데, 결국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2% 성장률을 전망치로 제시했습니다. IMF도 주요 21개국 중에서 한국의 성장률이 -4%로 가장 낮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1월 수출도 30% 넘게 감소했고, 한국의 핵심산업인 IT 산업의 수출 둔화세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민간소비도 급속히 식고 있습니다. 오늘 이 건물의 1층 사무실 하나가 비어 있는 걸 보면서 드디어 불황의 효과가 나타나는 구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부동산 시장은 정부가 오히려 투기를 조장하는 정책을 펴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일부 지역만 투기적 문제가 살아날 조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우리 형편에서는 제로에 가까울 정도로 낮추고 있지만, 일반 서민의 자금난은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또 남북관계도 삐걱거리고 있습니다. 북한이 최근 대포동 미사일을 다시 발사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는데, 정치적 제스처이지만 자칫 한국경제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2월 임시국회에서 또 한 번의 입법전쟁이 임박한 듯 합니다.

산업적 측면이든, 제도의 측면이든, 한국경제가 기로에 서있다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이런 인식을 기저에 깔고 한 부문씩 정책을 검토해 봤으면 하는데요, 먼저 건설, 조선, 최근에는 IT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들 업종의 구조조정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평가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금융감독 당국이 신용평가 회사를 불러다가 구조조정에 대한 보고서를 자제하라고 지시했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죠. 구조조정이 얼마나 시급한 문제인지, 어떤 방식으로 누가 해야 하는지,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하는지 등 구조조정에 대한 의견을 먼저 말씀해 주시죠.

'구조조정'의 참뜻을 알고는 있는지

▲ 김종인 박사. ⓒ프레시안
김종인 : 경제정책을 하는 사람들이 구조조정이라는 말의 참뜻을 알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경영학적 측면에서 기업은 시장의 변화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항시적으로 구조조정을 해야 합니다. 이건 기업의 몫이죠. 반면 산업 전반에 대한 구조조정은 정부가 산업정책 차원에서 해줘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애매한 잣대로는 구조조정이 안 됩니다.

금융기관이 대출할 때는 해당기업의 신용을 철저히 검증해서 돈을 다시 회수할 수 있을 것임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금융기관이 대출한 기업 중 돈을 돌려받는 게 불가능하다, 금융기관들은 신용이 공여된 해당기업들이 국내외 시장에서 중장기적으로 생존이 가능한지를 엄격히 분석하여 이를 바탕으로 해당 기업들을 과감하게 퇴출시켜야 구조조정이 됩니다. 하지만 이 경우 금융기관들의 손실이 노출되고 이로 인한 금융기관 책임자들의 책임문제가 발생하니까 제대로 못하는 거지요.

우리가 IMF 사태 이후 구조조정을 외쳤는데, 기본적으로 과잉부채를 공적자금으로 메워주고,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정부가 공적자금을 통해 해소해주는 것에 끝났습니다. 산업간 구조조정은 있었다고 보지 않아요. 그러다가 2001년 9.11사태 이후 우리경제에서 구조조정이란 말이 그동안 없어졌죠.

이번에도 국제 금융위기로 우리 경제도 어려워지게 되니까 구조조정이란 말이 다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우리 금융기관의 현재의 문제는 미국발 금융위기와 별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봐요.

한국의 금융위기, 미국발 금융위기와 별 상관 없다

전성인 : 얘기가 금융 구조조정으로 넘어 가는데, 말 나온 김에 금융 구조조정에 대한 얘기를 해주시죠.

김종인 : 우리나라 금융은 왜 지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느냐. 우리나라 금융기관이 스스로 잘못을 저질렀고, 금융감독당국이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IMF가 구제금융을 주는 조건으로 금융감독 강화를 권고해서 금융감독 체계를 개편했어요. 정부의 금융감독 기능을 통합해서 금융감독위원회를 만들고 금융감독원을 산하에 뒀습니다. 그런데 금감위라고 이렇게 막강한 기구를 만드니까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사람들이 자기 일을 찾다 보니까 금융이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산업이라는 생각에 빠지게 됐어요. 우리가 금융을 발전시키려면 금융기관들을 대형화하고 글로벌 스탠더드, 즉 미국식 감독체계를 도입해야겠다, 그러다보니 감독체계가 당연히 느슨해졌죠.

노무현 정부 들어서는 동북아 금융허브를 만들겠다면서 재경부에 금융허브를 위한 과를 만들었어요. 금융허브를 하려면 우리 금융기관들의 덩치를 키워야겠다는 쪽으로 얘기들이 진행됐습니다. 덩치를 키우려면 매출이 늘어야 하는데 IMF 이후 대기업들은 은행 부채를 많이 쓰려고 하지 않으니까 대기업의 자금 수요는 별로 늘지 않았어요. 그래서 금융기관이 선택한 것이 소비자 금융 쪽으로 돌아 개인을 상대로 주택 담보 대출을 늘리고, 중소기업에 돈을 뿌려주는 게 사회적으로도 많이 요청되니까 신용도도 제대로 따지지 않고 대출을 늘렸습니다. 또 건설업체들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도 많이 늘렸습니다.

은행이 제대로 못하면 금융당국이 감독을 통해서라도 바로 잡았어야 하는데 은행감독도 적당히 하다 보니까 오늘날 문제가 생겼죠. 은행이 자체 문제를 완전히 해소하지 못해서 소위 신용공급기관으로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데 이들에게 어떻게 기업들 구조조정을 하라고 하겠습니까.

전성인 : 우리나라는 기업 구조조정을 채권단인 은행이 하는 방식인데, 기업 구조조정을 하다보면 은행도 상처가 날 수밖에 없는데, 자기가 건강한 체질이 아닌 상태에서 어떻게 칼질을 할 수 있겠냐는 말씀이지요?

김종인 : 금융기관 입장에서 칼질을 하면 자기네도 상처가 나니까 안 해요. 자기들 생존을 위한 부분만 하지, 그 이상 뭘 하겠느냐는 게 전반적으로 깔려 있는 분위기 아닙니까. 지금 조선과 건설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동차 부분은 IMF 당시 구조조정을 제대로 했어야 해요. 그 분야를 못한 게 지금도 그대로 문제로 남아 있는 것 아닙니까. 그때 구조조정이란 게 결국 뭐였습니까? 서로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결국 부채를 공적자금을 넣어서 해소해주고, 주인만 살짝 바꿔주고 그런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산업간 구조조정이 안 된 거죠. 그것이 안 된 이상 구조조정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성인 : 지금까지 말씀을 요약해보면 채권자인 금융기관이 생존을 위해 상시적으로 하는 구조조정이 있고, 이런 자생적인 구조조정 이외에도 국가가 산업정책적 차원에서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데 지금 두 가지가 다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금융기관은 자기가 해야 하는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자면 대손충당금을 많이 쌓아야 하고, 손실을 봐야 하기도 하고, 자기자본비율이 낮아질 수 있으니까 안 합니다. 정부가 자동차산업을 어떻게 끌고 나가야 하는가 등 산업정책적 측면에서 합병을 하거나 퇴출을 하거나 이런 차원의 구조조정도 제대로 안 이뤄지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법이 없어서 은행의 자본확충을 지원하지 못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예금자보호법에 의하면 금융기관이 부실화되면 예금보험공사가 지원을 할 수가 있지만, 그 전에는 돈을 집어넣을 수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저는 다른 토론회 등을 통해 정부가 위기관리특별법이라도 만들어서 필요하다면 선제적으로 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고 이에 의해 돈을 집어넣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었는데요.

지금 정부가 하는 것은 그런 방식은 아닌 것 같습니다. 공적자금을 집어넣어서 은행을 돕는 정공법적인 방식이 아니라 이상한 방식으로 가고 있죠. 기업의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금융기관이 튼튼해져야 한다, 그런데 은행들이 지금 문제가 되고 있다, 이를 막으려면 자본확충이 필요하다, 그런데 법적인 제약 때문에 공적자금은 넣을 수가 없다. 그러니까 산업자본을 통해 은행이 증자를 하게 만들자, 그래서 금산분리 완화가 경제살리기 라는 참으로 희한한 논리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특정 기업의 부침에 나라의 운명이 좌지우지되는 불안한 한국경제

김종인 : 미국 금융위기의 경우, 절제를 잃어버리고 제도적인 규제 장치가 없는 게 원인이 됐어요. 우리나라도 5000만의 경제 인구를 가진,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어떻게 하면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는가를 냉정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조선업, 건설업 구조조정의 문제가 발생한 근본원인은 과잉투자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이 갑자기 시장경제를 이해하는 것처럼 시장 진입의 자유를 왜 막냐, 이것도 규제니까 풀자, 그래서 조선회사가 우후죽순격으로 생겼어요. 과거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건설업은 정부가 무조건 건설업 가지고 경기부양 효과를 보려고 하니까 비중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동차 산업도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구조와 전 세계를 보면 이미 포화상태입니다. 그런데도 일부 학자까지 편승해서 시장 진입의 자유를 왜 억제하냐고 해서 90년대에 자동차 회사가 또 생겨났어요. 정부 스스로가 경제정책 쪽에서 파행을 저질렀다고 봐요. 정부가 단호하게 생각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도 금산분리를 완화해서 산업자본이 끼어 들어가면 증자가 되지 않겠느냐, 현 시점에서 산업자본이 다른 의도가 없으면 은행 증자에 참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반면 산업자본이 금융에 들어갔을 때 그 부작용이 어떤 것인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어요. 급하면 산업자본이 소유 은행의 자금을 마음대로 써버릴 수도 있고, 그 책임을 국민의 세금으로 갚아야 하는 꼴이 올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구조는 매우 불안정한 구조입니다. 몇 개의 특정기업에 일국의 전체 국민이 목을 매고 살아야 하는 그런 구조를 만들어가는 경제정책은 합리적인 경제정책이라고 보기 힘들죠. 이렇게 납득되기 힘든 정책을 내놓고 경제가 잘 되길 바라는 것은 말도 안 되죠.

▲전성인 홍익대 교수. ⓒ프레시안
전성인 : 시장 진입을 자유롭게 하면 시장의 효율성이 늘어난다는 것은 두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시장의 자유스런 진입으로 경쟁이 촉진되니까 딴 짓을 하는 기업이 버텨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숨어 있는 중요한 또 다른 전제는 잘못한 기업이 망하는데 사회적 비용이 크지 않다는 것입니다. 경제원론에서는 사회적 비용이 없죠.

하지만 현실에서는 기업을 망하게 하는데 비용이 엄청나게 듭니다. 대규모 시설투자도 다시 전환하기 힘들고, 협력업체들도 줄도산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진입의 자유를 줄 때도 경쟁을 촉진하고 효율성을 증진시키는 한도까지는 늘여도 되지만 마구잡이식으로 진입하게 하면, 마지막에 퇴출시키는 게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김영삼 정부 때 경제학자들이 교육개혁위원회에 들어가서 교육도 경쟁이라면서 대학설립준칙주의에 의해 대학 인가를 엄청나게 많이 해줬어요. 지금 많은 대학이 경제적 용어로 얘기하자면 부실에 빠졌죠. 그래서 퇴출시켜야 하는데 다니고 있는 학생이 있으니 결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인구 5000만이 사는 나라에서의 경제정책의 의미도 이런 측면에서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경제원론에 나오듯이 아무나 들어와 장사를 하다가 잘되면 좋고, 안되면 망하면 된다는 식의 사고는 너무 현실과 괴리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시장의 성과가 오로지 효율만 가져다 주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정부가 상식을 갖고 산업별로 경쟁의 강도와 퇴출의 비용을 고려하면서 구조조정정책을 해야 합니다.

금산분리 완화 문제도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이 합쳐진 거대한 경제세력이 나올 경우, 국민경제가 거기에 의존하게 되고, 부실화될 경우 국민 세금이 들어가야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합칠 때야 자기들이 맘대로 합쳤다지만 퇴출시킬 때 사회적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가기 때문에 사전에 구조적 제약을 가하는 게 현명하다는 의미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세금은 덜 걷고 돈은 더 푼다, 가능할까?

김종인 : 교과서적으로 얘기하면 무수히 많은 경쟁자가 시장에서 경쟁하는 게 좋은 것처럼 생각하고 그런 식으로 논지를 전개하는 사람이 있는데, 경쟁도 시장의 상황 뿐만 아니라 결과를 보고 그 경쟁이 얼마나 효율적인가를 따져서 판단해야 합니다.

또 지금은 우리가 예전에 문을 닫아 놓고 우리 안에서만 경쟁을 논할 때 경쟁이 의미가 있는 것이지, 지금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시장이 개방된 상황에서 전 세계적으로 경쟁해야 하는 상황인데, 경쟁을 강화하기 위해서 진입 장벽을 풀자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얘기입니다.

전성인 : 이제 재정정책에 대해 좀 살펴봤으면 합니다. 감세 정책은 현 정부가 당초 표방했던 정치적 슬로건입니다. 그런데 감세는 애초에 작은 정부를 전제로 한 것인데, 지금 경제위기가 진행되다보니 정부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대통령 본인의 스타일도 관료를 동원해서 여러 가지 경제정책을 하는 관치경제적 습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작은 정부와 감세라는 당초 이데올로기적 포지션과 실제 경제운용이 많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는 감세 정책은 당초 약속대로 하면서 재정은 늘리겠다, 세금은 덜 걷고 쓰기는 많이 쓰겠다고 하고 있는데, 논리적 모순의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일각에서는 재정 건전성이 우려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김종인 : 우리나라 조세부담율은 22%로 낮은 나라는 아닙니다. 국제적으로 봤을 때 상당히 높은 나라에 속합니다. 우리의 문제가 어디에 있냐면 정부 지출에 의한 국민의 혜택이 다른 나라에 비해 크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독일은 조세부담율이 21.7%인데 지출을 통한 납세자의 혜택이 우리보다 훨씬 잘 돼 있습니다. 교육만 하더라도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거의 다 무료입니다. 반면 우리는 조세부담율은 비슷한데 사교육비가 엄청 나게 듭니다.

전성인 : 고객 입장에서 보자면 돈을 많이 내는데 피부로 느끼는 혜택이 적다는 것이죠.

김종인 : 감세정책은 경제상황이 어렵기 전에 선거 공약으로 내놓은 것인데, 경제가 어려워지니까 정부는 감세가 소비수요를 늘려서 경기부양 효과를 낸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소득세를 보면, 국민의 55%가 세금을 안 냅니다. 중간 이하 계층은 소득세를 안 내는 것인데, 고소득층을 감세를 해주면 과연 소비가 늘 것인지 따져 볼 필요가 있어요. 감세가 고소득층의 가처분 소득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하겠지만 이미 충분한 소비를 하고 있는 이들이 세금을 깎아준다고 소비를 더 늘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감세정책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 전 별로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전성인 : 세수 추계와 관련해서도 정부가 세금을 덜 걷고 많이 쓴다는 게 마음에 걸립니다. 정부는 불황기의 경기대책으로 합리화하고 있지만, 경제가 안 좋은 상황에서 세율까지 떨어뜨려 놓으면 올해 세수가 얼마나 부족하게 될지, 또 내년은 어떻게 될지, 계속 감내할 수 있는 정도인지, 그렇지 않고 무책임하게 감세를 했다가 세수가 안 들어와서 난리법석을 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김종인 : 케인즈 이론상의 기능적 재정에 따르면 정부가 세금을 걷는 목적은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시중의 통화량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란 이론도 있습니다. 이는 정부는 세금을 안 걷어도 돈을 얼마든지 쓸 수 있다는 논리 아닌가요? 지금 정부 태도는 세수가 줄어들어도 정부가 빚을 지거나 발권력을 동원하거나 하면 되기 때문에 신경 안 쓴다는 식입니다. 예전에 리카르도 이론에 따르면 세수를 낮추면 오히려 소비가 준다고 합니다. 왜냐면 감세를 하면 정부가 빚을 많이 쓸 수밖에 없는데(소위 리카도의 등가성(Ricardian Equivalence) 정리이지요), 그러면 나중에 정부가 세금을 더 많이 걷어갈 것이라고 생각해서 소비를 줄인다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맞는지 우리가 정확히 얘기를 할 수는 없지만, 왜 우리가 후대에 부담을 많이 전가시켜야 합니까?

노무현 정부 때는 후대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면서 국민연금 개혁해야 한다더니, 지금은 그걸 따질 여유가 없으니까 따지지 않는 것 같아요.

전성인 : 그렇습니다. 연금개혁 할 때는 미래를 생각해서 후손들에게 너무 많은 부양 부담이 생기니까 지금부터 연금을 깎고 수급액을 줄여야 한다는 논리를 폈는데, 이번 감세는 미래의 조세부담을 엄청나게 늘리는 것입니다.

김종인 : 이번 감세정책의 모순을 보면 감세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세부담률이 크게 줄지 않았어요. 또 감세 정책이 한나라당 특유의 정책도 아닙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도 기업 환경 개선을 얘기하면서 감세를 계속 했어요.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경제사회정책적인 측면에서 보면 결코 좌파 정권이 아닙니다.

전성인 : 이번에는 남북한 경제협력 부분을 한 번 살펴 볼까요? 최근 대북문제가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김대중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10년 동안 추진한 남북경협을 통해 남북간 관계 개선이 있었습니다. 물론 노무현 정부 초기에는 북핵사태가 터져서 한때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남북 관계는 협력관계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상황이 조금 바뀐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대북관이 상당히 강경기조라서 불필요하게 북한을 자극하고 있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미국도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북미간 관계 변화도 지켜봐야할 변수입니다. 이런 대북 문제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어떠하리라고 예상하십니까? 단순히 정치적 측면에서만 끝날지, 아니면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보시는지요?

'대북 퍼주기'보다는 북핵해결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 훨씬 더 클 것

김종인 : 대북문제는 현재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면서 '비핵개방 3000'을 내세우고 그 이후 관계가 단절된 상태에 있는데, 대북관계를 경제와 관련해서 얘기하면 복잡한 설명이 필요해요.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대북정책을 한나라당이 '대북 퍼주기'라고 계속 반대하면서 상호주의를 내세우고 있어요. 이 문제를 우리나라와 직결해서 애기하기보다는 동서독 분할 당시 서독의 동독에 대한 자세를 갖고 얘기할까 합니다.

1969년에 브란트가 동방정책을 표방하고, 동독과 기본조약을 72년에 체결하고 '한민족 두 국가'를 추진할 때 당시 야당인 기민당이 브란트 정책에 대해 엄청나게 반대했습니다. 한나라당보다 더 극단적인 반대를 했어요. 정부 불신임까지 얘기하면서 반대를 하니까 브란트가 견디다 못해 서독 연방공화국 탄생 이후 처음으로 조기에 의회를 해산하고 선거를 실시했습니다. 결국 국민이 브란트의 사민당을 더 지지해서 사민당 정권이 계속 됐습니다.

그리고 1982년 기민당이 정권을 잡습니다. 그러면 그 기간동안 기민당 콜 정권의 대동독정책은 어떻게 됐느냐, 의아하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오히려 더 강화됐습니다. 심지어 동방정책 때 가장 맹렬하게 반대하던 슈트라우스는 동독에 가서 40억 마르크 차관 제공 약속도 했습니다. 그런 것이 축적되다 보니까 1990년 독일통일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우리가 지금 현재 남북관계에 있어 아무런 전망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라고 봅니다.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지사가 북한을 중국에 주면 문제 해결이 쉽지 않겠냐는 얘기를 했는데,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 우리가 모독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경제력은 크게 성장해 세계 13위 정도의 경제력을 가졌는데, 정치적으로는 분단 상황에 대해 스스로 해결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걱정되지 북한이 협박적인 얘기를 했다고 당장 경제에 부담이 온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경제적인 측면의 부담은 남북간의 긴장관계보다는 오히려 미국과 북한간의 화해 분위기가 도래할 경우 더욱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만일 미국 오바마 정부에서 6자회담을 통하든, 아니면 북미 양자회담 형식을 통하든 핵 문제에 대해 북미간 협의가 이루어진다면, 북한에게 돌아갈 대가는 경제적 지원 밖에 없습니다. 이때 우리는 어떤 위치에 처할 것이냐, 우리가 주체적으로 합의한 것이 아니라고 피해갈 수 있는가, 전 피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 상당히 큰 경제적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우리가 이미 한번 경험했어요. 북한의 경수로 건설시 우리가 상당부분 경제적 부담을 했습니다.

지금 당장 북한의 위협적 선언이 한국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냐는 문제는 한국경제는 그런 것에 대해서 만성적이므로 크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 외국 사람이 와서 정치적 불안정 때문에 경제가 큰 영향을 받지 않느냐고 물으면, 우리나라는 60년부터 지금까지 정치적으로 안정이 된 적이 없는 나라다, 그 속에서 경제성장을 한 나라라고 대답합니다. 우리 경제가 한계에 봉착해서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 온 것인지, 정치적 불안정성이 어렵게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변천 과정에서 보면 우리가 압축 성장을 해서 세계적으로 평가도 받고 자부심 느낀다고 생각하지만 실제적으로 압축성장에서 누적된 코스트를 계속 지불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해요

전성인 : 그게 기적만이 아니라는 말씀이시죠? 좀 정리를 하자면 대북관계에서 경제적인 부담은 단기적인 문제라기보다는 북미관계가 개선돼서 경제적 지원이 북한에 갈 때 한국에 일종의 분담금이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을 하셨습니다. 또 그것과 무관하게 독일의 예를 보면 통일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경제적 지원이 있었습니다. 독일의 경우 정권이 변화하면서도 꾸준히 추진됐고, 이게 통일에 일조했다고 본다면, 북미관계 개선에 의한 강제적 분담금 이외에 생각할 부분이 있습니다.

김종인 : 장기적으로 본다면 대한민국이 5000만 인구의 시장으로 독자적으로 무언가를 크게 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언제 이뤄질지 모르지만 통일을 해서 북한까지 합해지면 7000만 명 가까이 됩니다. 이런 것을 전제로 해서 우리 나름대로 준비와 노력을 꾸준히 해야죠.

전성인 : 맞습니다. 오히려 장기적인 접근이 없다는 점이 문제라고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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