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리 못난 정권도 집권 1주년이 되면 지난 1년을 '반성'하고 남은 4년을 새롭게 '계획'한다. '계획'의 충실도가 '반성'의 진정성에 비례함은 물론이다.
2
"전대미문의 경제위기 극복과 위기 이후 도약과 번영의 기틀을 다지는 '투 트랙'의 국정운영이었다."
이명박 정부 1년에 대한 청와대의 자체평가다. 세간에서 비아냥거리는 것처럼 청와대의 자체평가가 '자화자찬'으로만 이뤄진 것은 아니다. 같은 보도자료에서 청와대는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경제 위기로 촉발된 최악의 경제상황 등 나라 안팎의 어려운 여건 등으로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을 덧붙이고 있다.
그러나 어려운 민생, 인사난맥, 사회적 갈등 격화 등 국민이 매일 피부로 느끼는 어려움을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측면이 있다"는 수사적 표현 한 마디에 다 담아낼 수 있겠는가. 정권 출범 1년에 즈음한 청와대의 자체 평가가 국민의 가슴에 와 닿지 못하고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 ⓒ청와대 |
3
지난 연말부터 미미하지만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는 2월에도 30%대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 30%는 통상적으로는 정권의 위기를 뜻하는 경고등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작년 여름 10%대 추락을 겪은 이명박 정부에게 대통령 지지도 30%는 여간 대견스러운 수치가 아닌 듯하다. 더구나 한나라당의 지지율 하락에도 불구하고 얻은 30%가 아닌가 말이다. 여권 핵심 실세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30%대만 유지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30%에 대한 집착은 이 수치가 한나라당의 전통적 지지층만 끌어 모아도 만들어지는 수치라는 점 때문에 더욱 매력적일 것이다. '+α'에 해당하는 중간층, 중도층, 비판적 지지층, 즉 실체도 모호하고 입맛 까다로운 이른바 '회색' 세력들에 대한 정치적, 정무적, 전략적 고려를 할 필요가 없어도 되니 얼마나 마음 편한 국정운영이겠는가 말이다. 속도전과 밀어붙이기, "우리끼리" 발상이 거침없이 횡행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4
이명박 정부가 30%대 사수를 위해 대중추수와 선동정치의 유혹에 떨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인기영합 이벤트 정치와 외형적 실적주의 정치의 유혹에 함몰되지 않기를 바란다. 패도정치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를 바란다. 패도정치의 목표가 고작 30%대의 지지율 유지라면 그 대가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말이다.
5
패도정치가 정치공학과 세의 정치라면 왕도정치는 참여와 소통의 공론정치다. 군주와 백성이 두루 평안한 길이 왕도정치에 있었음은 동서고금의 역사가 거듭 역설하고 있는 바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과 정권 실세들 사이에 왕도정치에 대한 공감의 폭은 그리 넓지 않은 것 같다. 친이-친박 갈등 구도를 정치공학적으로 관리하는 방식도 그렇고, 이상득, 이재오, 정두언 등 이른바 친이 직계 핵심 실세들 상호간 관계맺음의 양태도 그러한 것 같다. 어디에서도 '마음을 연 만남'도, '비움과 채워줌'도 볼 수 없다. 과연 언제쯤 패도정치를 넘어서는 왕도정치의 넉넉함과 푸근함을 볼 수 있을까?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