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영화 경우 일반적으로 개봉 2~3년전부터 기획에 들어가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 현재의 경제위기를 반영해 향후 몇년동안은 자본가가 '악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영화들이 유난히 많이 쏟아질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베를린영화제 개막작이었던 톰 티크베르 감독의 <인터내셔널>은 이윤을 얻기 위해서라면 불법 무기매매 등 온갖 탈법과 범법을 가리지 않는 악덕 은행가를 소재로 한 작품. 실제로 지난 1976년부터 20년간 반정부군과 테러리스트, 암살자, 용병들에게 자금 제공을 하고 돈세탁과 무기밀매를 했던 파키스탄 은행을 모델로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룩셈부르크에 본부를 둔 IBBC의 미사일 암거래 혐의를 추적하는 인터폴 요원으로 클라이브 오웬, 그를 돕는 미국 뉴욕의 검사로 나오미 와츠가 등장한다. 유럽과 미국 등 전세계를 옮겨다니며 촬영한 이국적인 화면이 돋보이기는 하지만, 스릴러로서의 평단 반응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개봉시점이 시대분위기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는 점에 대해서만큼은 일치된 반응이다.
▲ 인터내셔널 |
이번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는 자본주의 문제점을 다룬 다큐멘터리 작품들이 유난히 많이 출품됐다. 대표적인 것인 영국감독 마이클 윈터바텀과 매트 위트크로스의 <쇼크 독트린>. 나오미 클라인의 동명베스트셀러를 소재로 한 90분짜리 이 다큐멘터리는 자본주의가 재난 또는 위기상황을 어떻게 이용해 이윤을 불려왔는가를 다룬 작품이다. 한마디로, 전세계의 끔찍한 폭력과 충격의 순간을 자본주의가 어떻게 이용해왔는가에 대한 고발물인 셈이다.
윈터바텀은 <쥬드><원더랜드><마이티하트> 등의 극영화부터 <인 디스 월드><관타나모로 가는길>등 시사성 강한 다큐멘터리영화들에게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쏟아내온 다작 영화감독. 그는 이번 <쇼크 독트린>에서 피노체트 치하의 칠레부터 국가경제붕괴 위기에 놓여있던 옐친 치하의 러시아를 거쳐 9.11테러 이후 미국과 국제사회에 이르기까지 지난 30여년동안 위기와 자본주의 간의 관계를 파헤치고 있다. 그는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전세계 이데올로기로 자리잡게 됐는지를 알리고 싶었다"고 제작의도를 밝히면서 " 앞으로 이 세상에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사람들이 문제의 심각성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느나, (변화를 위해) 어떻게 참여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 쇼크 독트린 |
역시 베를린영화제에 출품된 3시간짜리 다큐멘터리 <포위(L'encerclement)>도 신자유주의의 역사 및 현황을 파헤친 작품. 감독은 프랑스계 캐나다인 리샤르 브루이예트.그는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고 정치까지 장악하게 됐는가를 영상화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 영화에는 노엄 촘스키 등 다양한 진보, 보수 학자들의 인터뷰도 포함돼있다. 브루이예트 감독은 자신의 작품이 대중성은 약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 소수나마 이 영화를 통해 정보를 얻고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포위>가 상당히 학술적이고 진지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면, 미국감독 앤디 비츨바움과 마이크 모나도의 <세상을 고치는 예스멘(The Yes Men Who Fix the World)>는 코믹 패러디 분위기가 물씬한 다큐멘터리. 올해 초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도 관심을 모았던 작품이다. 비츨바움과 모나도는 '예스멘'이란 이름으로 이미 2002년 <끔찍하게 멍청한 스턴트(The Horribly Stupid Stunt)>란 다큐멘터리로 관심을 모았던 인물들이다. 당시 영화는 두 사람이 경제관련 가짜 인터넷사이트를 만든 다음 전문가 행세를 하면서 경제계의 거물급 단체 및 권력자들을 속여먹는 과정을 그대로 담아냈다. 이번 <세상을 고치는 예스멘>에는 두사람이 다국적 화학회사 다우케미컬 대변인 노릇을 하면서,자신들의 온갖 가짜 '친환경'적 발언에 전문가들이 어떤 반응을 내보이는지를 화면에 담았다.
이밖에 브라질의 가난한 세 가족의 비참한 삶을 다룬 호세 파디아의 <가라파> ,멕시코의 아동 노동착취를 고발한 에우젠치오 폴골프스키의 <상속자들> 역시 자본주의의 비정한 이면을 조명한 다큐멘터리로 베를린영화제에서 관심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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