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치러진 일제고사가 발단이었습니다. 자신이 수학 과목을 가르치는 3학년 4개 학급 학생들에게 "시험을 치를지 말지 결정할 권리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있다"고 말한 게 문제가 됐습니다. 이 발언이 시험 거부를 '선동'한 것이라고 합니다. 학교재단은 이렇게 판단했습니다.
선뜻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김영승 선생님은 두 갈래 길을 모두 제시했습니다. 시험 볼 권리와 시험 보지 않을 권리 모두를 알려줬습니다. 이건 '선동'이 아닙니다. 한쪽으로 학생을 몰아가는 부채질이 아닙니다. 형식상으로는 그렇습니다.
▲ 교사들이 '일제고사 징계'에 반발해 지난해 12월 17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다 ⓒ프레시안 |
아닐지도 모릅니다. 형식상으로는 그럴지 몰라도 내용상으로는 '선동'일지 모릅니다.
세상에 시험 좋아하는 학생은 많지 않습니다. 공부 잘하는 몇몇 학생 빼고는 시험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솔깃했을지 모릅니다. 상당수 학생들이 김영승 선생님으로부터 '시험 보지 않을 권리'가 있음을 전해 듣고 '이게 웬 떡이냐' 싶은 생각을 했을지 모릅니다.
그냥 이렇게 이해하겠습니다. 학생을 모독하는 소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이렇게 생각하겠습니다.
그리고 대입해 보렵니다. 학생들의 이런 '속성'에 학습권을 대입해 보겠습니다. 다른 선생님들, 즉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떠난 학생들의 선택을 '존중'한 선생님들을 파면 또는 해임하면서 교육청이 내건 제일의 명분이 '학습권 침해'였던 점을 감안해 한 번 대입해 보겠습니다.
학습권은 자유권입니다. 개인적 기본권입니다. '신체의 자유' '주거의 자유' '표현의 자유'와 같이 개인이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권리입니다. 그래서 보장합니다. 학습권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교육내용 선택 결정 및 참여권을 보장합니다.
이해하기 힘듭니다. 법률은 학습의 구체적인 방법을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데 교육청과 학교재단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제시된 교육프로그램과 짜인 시험일정에 따라 학습하는 것만을 학습권의 행사로 봅니다. 학습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학생 개인의 선택을 존중한 선생님들을 파면 또는 해임한 걸 보면 그렇습니다.
혹시 이런 걸까요? 학생은 미성년자, 그러니까 주체적인 판단을 할 사고력이 부족한 존재이니까 학생들이 향유하는 학습권은 구체적인 '계도'를 통해서만 실현된다고 보는 걸까요?
그럴 듯해 보이지만 가당치 않습니다.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떠난 학생들 중 상당수는 부모와 함께 상의해 결정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교육청과 학교재단은 성인인 학부모의 선택, 그런 선택을 존중한 선생님들의 결정조차 용인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역설적입니다. 학습권을 침해하는 곳은 선생님이 아닙니다. 학습권을 사실상 침해하는 쪽은 교육청이고 학교재단입니다.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지향하는 교육은 '까라면 까' 식의 교육입니다. 자신들이 설정한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을 권리조차 허용하지 않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강화될 게 뻔합니다. 이런 '까라면 까' 식의 교육이 갈수록 더 기승을 부릴 것이 분명합니다. 문제를 제기할 여지, 제동을 걸 여지를 완전히 앗아가 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립)선생님들에 파면 또는 해임 조치를 내리면서 내건 또 하나의 명분, 즉 '복종의 의무'를 상기하면 그렇습니다.
'열린 교실'이 닫히고 있습니다. 그 대신에 이견과 이탈을 허용치 않는 '내무반 교실'이 열리고 있습니다. 우리 교육현장이 이렇게 마구 내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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