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언론의 관심은 <슬럼독> 쪽에 조금 더 기울어져 있는 분위기이다. <슬럼독>이 지난 8일 영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등 7개 주요부문을 휩쓴 탓도 있겠지만, 비교적 저예산으로 만들어져 DVD 시장으로 직행할 뻔했던 이 작품이 전세계 평론가들과 관객들을 매료시키며 대성공을 거둔 과정 자체가 한편의 영화처럼 극적이기 때문이다.
▲ 슬럼독 밀리어네어 |
타임지는 최근 기사에서 "영화 속에서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뭄바이 빈민가 소년이 퀴즈쇼에 나가 기적처럼 성공하고 사랑도 찾는 것처럼, 이 영화가 세계시장에서 거둔 성공 역시 기적같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슬럼독>은 영국 아카데미상뿐만 아니라 골든글로브상에서 드라마부문 최우수 작품상 등 4개부문을 수상했으며, 각종 평론가상을 휩쓸었다.
<슬럼독>의 제작비는 총 1,300만 달러(한화 약 180억원). 지난해 11월 북미 시장에서 개봉된 이작품은 13주째 롱런하면서 총 7,700만 달러의 흥행수입을 올렸다. <인도로 가는 길>, <간디>, <시티 오브 조이> 등 영미권에서 만들어진 인도 소재 흥행영화들에는 대부분 인도와 서양을 연결해주는 '서양 중간자'가 등장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슬럼독>에는 서구 관객들과 인도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서양 중간자' 배역이 없다. 게다가 대사의 대부분이 인도어인 힌두어로 돼있다.
<슬럼독>은 인도계 작가 바카스 스와럽의 소설 'Q&A'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이다. 사이몬 뷰포이의 탄탄한 시나리오, <트레인스포팅>에서 영국 하층청년들의 삶을 그려냈던 대니 보일의 속도감있는 연출이 어우러져 "그 어떤 할리우드 액션 영화보다 스피디하고 에너제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만 해도 이 작품의 북미 배급은 사실상 물 건너간 상태였다. 당초 배급사였던 워너 브러더스 산하 워너 인디펜던트가 문을 닫으면서, <슬럼독>은 한마디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돼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다수의 영화들은 시장배급을 포기하고 DVD 시장으로 직행하게 마련이다. 더구나 <슬럼독>은 감독만 유명할 뿐, 서구 유명배우는 한 명도 출연하지 않고 대사도 힌두어로 된 작품이란 점에서 북미 배급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 슬럼독 밀리어네어 |
이런 상황에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워너측이 <슬럼독> 제작진에게 다른 배급사를 물색해도 좋다는 허가를 내준 데다가, 폭스 서치라이트가 새로운 북미배급사로 나서게 된 것. 제작진과 폭스 서치라이트는 지난해 가을 캐나다 토론토영화제에서 <슬럼독>에 대한 반응이 뜨겁자 자신감을 갖게 됐고, 결국 흥행성공과 아카데미 10개 부문 노미네이션이란 예상밖의 성적까지 올릴 수 있었다.
<슬럼독>의 성공에 대해 평단은 이 영화가 뭄바이 청년들을 소재로 하고 있으나, 성공 욕망과 로맨스에 대한 강박관념이란 세계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을 꼽고 있다. 하지만 <슬럼독>에 대한 인도 관객들의 반응은 그리 열광적이지 않은 편이다. 가난에 익숙한 인도 관객들에게 <슬럼독>은 충격적이지도, 새롭지도 않기 때문이다. 일부 평론가들은 '빈곤 포르노', '슬럼 관음주의'로 신랄하게 비판하는가 하면, 보수층은 '개(DOG)'란 표현 때문에 이 영화가 인도를 비하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인도 일부 지역에서는 <슬럼독>의 상영반대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아카데미상의 뚜껑은 오는 22일 열리게 된다. 영화계는 과연 아카데미가 <슬럼독>과 <벤저민 버튼> 중 어떤 작품의 손을 들어줄지에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데어 윌 비 블러드>가 사이좋게 주요부문 상을 나눠 가져갔던 것과 같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이밖에 탄탄한 작품성으로 관심을 끌고 있는 <밀크>, <닉슨 vs. 프로스트>,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등의 작품이 얼마나 선전할지도 관심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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