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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채의 몰락, 투기자본의 '먹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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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채의 몰락, 투기자본의 '먹튀'

[추적] 투기자본은 어떻게 위니아만도의 단물을 빨아먹었나

'딤채'브랜드 만으로 위니아만도는 김치냉장고와 에어컨 시장의 '작은 강자'로 군림했다. 하지만 이 회사는 현재 명성에 걸맞지 않게 몸살을 앓고 있다. 실적은 악화 일로를 걷고 있으며 이미 대규모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지난해 중순 시작된 금융위기 여파로 회사가 유동성 위기에 처했다는 게 표면적 이유다. 하지만 노동계와 시민단체는 외환위기 이후 대주주로 들어온 해외 사모펀드(PEF), 통상 '투기자본'으로 불리는 외국계 금융주주의 이익 빼돌리기가 회사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갈등이 외환위기 이후 내내 이어져왔다. 옛 대우그룹의 알짜 계열사던 오리온전기는 미국계 사모펀드인 매틀린 패터슨에 매각된 후 5개월 만인 2005년 10월 청산됐다. 론스타와 뉴브리지캐피탈로 대표되는 외국계 자본의 양도차익 비과세 문제는 여전히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위니아만도의 질곡사(桎梏史)는 재벌의 문어발식 경영의 폐해, IMF 위기 이후 빠르게 유입된 투기자본의 폐해 등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생생히 보여준다. 신자유주의가 한계에 달했다는 주장이 대두되는 지금,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는 기업을 한계로 내몰고 있다.

▲지난 1997년 12월 6일, 재계 12위이던 한라그룹이 최종부도처리됐다. 한라그룹이 몰락하면서 만도기계는 만도와 위니아만도로 분리 매각됐다. 6일 오전 박성석 당시 한라그룹 부회장이 한국은행 기자실에서 자구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

문어발 경영 지나가고 PEF 지배 시작

위니아만도의 전신은 에어컨 등 자동차 부품을 만들던 만도기계다. 만도기계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첫째 동생인 고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이 그룹의 중추로 여겼던 회사다. 97년 2분기에만 900억 원 흑자를 기록한 알짜회사 만도기계는 그룹이 무너짐에 따라 흑자부도를 냈다. 만도기계는 이때부터 고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처음 만도기계를 사들인 이는 19세기 산업혁명 시기 성장세를 열어간 거대 금융재벌 로스차일드 가의 후손인 월버 로스 로스차일드 펀드 회장이었다. 최근 국내에서도 화제가 된 책 <화폐전쟁>의 저자 쑹훙빙은 로스차일드 가를 두고 '대도무형(大道無形)의 슈퍼 부호'라고 설명했다.

월버 로스는 마치 '새로운 구세주'인양 언론의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한라그룹을 해체했다. 각 알짜 계열사가 모두 외국계 자본을 새 주인으로 맞으며 분해됐다. 만도기계는 자동차 부품업체인 만도와 김치냉장고를 주력으로 하는 만도공조(훗날 위니아만도로 사명 변경)로 분리돼 각각 선세이지(Sun Sage, JP모건 계열)와 UBS캐피탈 컨소시엄에 팔렸다. 1999년 당시 UBS 컨소시엄에는 스위스계 UBS를 포함해 PPMV, PAN ASIA와 함께 씨티 벤처 캐피탈(CVC)이 포함됐다.

UBS 컨소시엄이 위니아만도 인수에 들인 돈은 2350억 원. 이 가운데 1400억 원은 LBO(Leveraged Buy-Out: 차입매수) 방식으로 조달했다. 위니아만도 자산을 담보로 은행에서 인수대금을 대출받은 후 자산을 팔아 갚는 방법이다. 실질 투자금액은 950억 원에 불과했다.

동시에 컨소시엄은 회사의 자구책, 곧 대규모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노조 무력화와 비정규직 확대로 인건비를 절감하는 동시에 매각가치를 높이는 방편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와 언론은 이를 두고 '선진경영기법'이라고 칭송했다. 노동자 대부분은 무력하게 일터에서 밀려났다. 이 과정을 지켜본 안재범 위니아만도지회 문화부장은 "상여금 반납과 임금동결, 대규모 해직이 곧바로 뒤따랐다"고 말했다.

PEF, 유상감자·배당으로 4500억 원 '먹튀'

구조조정과 함께 단행한 또 다른 조치는 회사 이익 회수였다. UBS 컨소시엄은 지난 2001년 12월 21일 750억 원, 2002년 4월 22일 601억 원 등 총 1350억여 원 규모의 유상감자를 실시했다. 컨소시엄은 또 지난 2000년부터 2004년 사이 총 722억여 원 상당의 배당을 결정했다. 당연히 이들 자금은 컨소시엄이 조세회피처에 세운 종이회사(페이퍼컴퍼니) 덕분에 단 한 푼의 세금도 한국에 환급되지 않고 회사 이익으로 넘어갔다.

유상감자는 회사 유보 현금을 기존 주주에게 나눠주는 행위로 배당과 같은 효과를 가진다. 배당과 달리 필요할 때면 곧바로 임시 주주총회를 통한 결의가 가능해 외국계 사모펀드가 애용하는 대표적 투자자금 회수 방법이다.

▲지난 10일 오전 11시, 위니아만도 노조원들은 대주주 CVC의 한국지사가 있는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곳 21층의 사무실 한 칸이 CVC 한국지사다. 빌딩 관계자는 "상주 직원은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프레시안
홍희덕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은 "지금 한국 경제 위기의 원인 중 하나는 외환위기 때처럼 투기자본을 규제할 수 있는 수단이 전무하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UBS 컨소시엄은 충분한 투자이익을 회수한 다음인 지난 2005년 11월 25일, 위니아만도를 다시 CVC에 팔았다. 관계자들은 매각대금이 약 2300억여 원가량일 것으로 추정한다. 매각대금까지 포함할 경우 UBS 컨소시엄은 회사를 인수한지 6년 만에 투자원금의 세 배가량에 달하는 돈을 회수했다.

CVC는 위니아만도 인수를 위해 말레이시아 라부안에 만도홀딩스라는 종이회사를 설립, 위니아만도 자산가치를 담보로 이 회사 지분 전량을 인수했다. CVC 역시 UBS 컨소시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인수 후 CVC가 처음 한 일은 지분인수로 부채투성이가 된 만도홀딩스와 위니아만도 합병이었다. 이 합병으로 2002년부터 2005년 말까지 총 2110억여 원의 누적 당기순이익을 낸 위니아만도는 만도홀딩스의 부채 1159억여 원을 떠안게 됐다. 대주주의 자본 회수에도 튼실하던 회사가 졸지에 빚투성이 부실회사로 전락한 셈이다.

이후 2006년 2월 14일 CVC는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열고 총 주식 수의 19.64%에 달하는 1040만7239주를 유상감자키로 결의했다. 회사가 주주로부터 액면가 500원의 열 배가 넘는 주당 5038원에 주식을 사들여 소각하는 방법이었다. 이를 통해 CVC는 회사 자본금의 두 배에 달하는 529억여 원을 챙겼다.

유상감자와 고배당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이를 통해 CVC가 챙겨간 금액 규모는 약 2500억여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투자금액 전량에 달하는 규모니 CVC는 결과적으로 돈 한 푼 안 들이고 회사를 인수한 셈이다. '선진경영기법'의 실체였다.

"단물 빠지니 뱉어내는 것 남아"

위니아만도의 지난 10년은 이처럼 대주주의 이익 회수 역사였다. 아무리 회사가 튼실하다고 한들 버텨낼 리가 없었다. 김치냉장고 시장 경쟁은 계속 격화되는 데도 새 투자는 부진했다. 지난 2007년부터 회사는 창설 이래 최악의 실적 부진과 그로 인한 유동성 문제에 시달리게 됐다.

자구책이 마련됐다. 지난해 4월 28일, 경영진과 노조는 노사합의로 사원아파트 매각대금 172억1800만 원을 마련했다. 이 돈으로 차입금 142억2100만 원을 갚아 겨우 채무 불이행 사태를 벗어날 수 있었다. 현재 위니아만도 주요 채권자는 네덜란드계 ABN암로와 독일계 도이치방크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경영진은 지난해 12월 23일, 전 직원을 대상으로 경영설명회를 열어 위기 극복을 위해 300억 원의 추가자금을 마련해야 하며 이를 위해 인건비 감축이 이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구조조정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회사는 먼저 지난 달 21일부터 지난 5일까지 희망퇴직을 신청 받았했다. 이를 통해 관리직 사원 100여 명, 현장직원 29명이 회사를 떠났다. 하지만 회사는 추가 구조조정을 계획하고 있다. 안 문화부장은 "회사 목표가 전 직원 800명을 절반 수준으로 줄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주주와 경영진이 회사 경영부실 책임은 전혀 질 생각을 않은 채 노동자에게만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력이 절반으로 줄어든 회사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리가 없다. 결국 빈 공간은 비정규직으로 메울 가능성이 높다.

▲위니아만도가 새 주인을 찾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회사 경영진은 구조조정 안에 대해 최대한 말을 아끼고 있다. 극한 투쟁이 또 한번 언론을 장식할 지도 모른다. ⓒ프레시안

노조는 회사의 이와 같은 행보가 과거 해외 사모펀드의 움직임을 고려할 때 결국 회사 재매각 혹은 청산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빨아먹을 만한 단물은 모두 빨아먹은 후 구조조정으로 매각 가치를 높이고 처분하려는 전형적인 '먹튀' 수순이라는 얘기다.

오상용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돈 놓고 돈 먹기 하는 것은 죄라는 게 사회적 상식"이라며 "투기자본의 행태를 그대로 둔다면 한국 사회 전체가 거대한 노름판이 되는 것을 방조하는 꼴"이라고 했다.

외환위기 이후 지속된 외국계 사모펀드의 전횡에 위니아만도 노동자의 자긍심과 애사심도 사라졌다. 한 노동자는 "과거 아산에서 위니아만도 유니폼을 입고 다니면 술값도 외상해주곤 했다. 소위 말하는 '일등신랑감'의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자부심은 부끄러움으로 변했다"고 토로했다.

홍성준 투기자본감시센터 사무국장은 "투기자본의 먹튀 문제와 산업의 지속성장 저해 문제가 이슈화된 지 10여 년이 흘렀지만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다"며 "투기자본의 부당이익에 대한 과세를 철저히 하고 적합한 규제를 실시하도록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투기자본 문제는 이미 사회문제화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바람이 현실화될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11월 19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재벌 금융회사가 출자한 사모펀드의 의결권 제한 규제를 풀겠다고 밝혔다. 국내 사모펀드의 투자활동을 더 자율화하겠다는 조치다. 현실화한다면 삼성 등 재벌이 삼성생명이나 삼성화재와 같은 금융자회사가 출자한 사모펀드를 통해 원하는 기업을 지배하는 게 가능하다.

재벌 사모펀드라고 외국계와 얼마나 다를까? '자본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처럼, 자본이 휘두르는 칼날에도 차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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