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9일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에 대해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철거민들과 일부 용역이 범법행위를 했을 뿐 경찰은 정당하고 합법적으로 진압을 했다는 것이 검찰이 발표한 수사결과의 요지다. 이는 대통령과 여당 내 일부 의원들과 과점신문들이 정해준 가이드 라인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들어 검찰이 보여준 행태들을 익히 알고 있는 터라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내용이 별로 놀랄 일도 그리 분노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대통령과 여당은 검찰 수사결과 발표에 이어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의 사퇴로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을 마무리 지을 모양이다. 김석기 내정자의 사퇴조차 여당내 일부의원들과 과점신문들은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들의 눈에는 김 내정자가 희생양처럼 보이는 것 같다. 청와대의 희망처럼 김 내정자가 사퇴하는 것으로 용산 사건이 국민들의 기억에서 잊혀질지 여부는 아직 알 길이 없다. 분명한 건 이번 사건이 한국사회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신숭배라는 새로운 신의 강림
자본주의의 본원적 속성 가운데 하나가 물신숭배(fetishism)이다. 그런데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은 물신숭배가 한국사회 구성원들의 집단적 멘탈리티를 규정짓는 가장 강력한 요소라는 점을 보여주는 징후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천문학적인 개발이익을 노린 토건동맹(시공사, 지주, 용역업체)이 철거민들을 폭력적인 방법으로 쫓아내는 것을 국가권력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왔다는 점, 무려 6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용산 참사 이후의 여론이 정부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지만은 않다는 사실 등이 이를 증거한다.
재개발 보상을 둘러싼 투쟁과 대립은 항상 있었던 일이고 그 과정에서 상하고 다친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한 현장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경찰의 강제진압 과정에 사망한 적은 없었다. 놀라운 것은 정부와 여당의 반응이 아니라 여론의 움직임이다. 꽤 많은 국민들이 사망한 철거민들에게 그리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과점신문들의 참주선동 탓도 적지 않겠지만 토지사유제 하에서 개발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고 이를 관철시키다 발생하는 피해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들이 적지 않은 국민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 같다. 그 피해가 설령 사람의 목숨일지라도 말이다.
억강부약하는 검찰은 언제나 볼 수 있을까?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의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검찰을 보고 있자니 억약부강(약한 자를 억누르고 강한 자를 도와줌)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공익을 수호하고 거악을 소탕할 책무가 있는 검찰이 약한 자들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것처럼 볼썽사나운 일도 없을 것이다. 이전 정부에서 대통령과 호기롭게 맞짱을 뜨던 검사들. 법무부 장관의 정당한 지휘권 행사에 사표를 던지던 검찰총장은 더 이상 없다. 그 동안 무엇이 바뀌었을까? 바뀐 건 아무것도 없다. 단지 정권이 바뀌었을 뿐.
주지하다시피 대한민국 검사는 범죄수사 및 공소제기와 그 유지에 필요한 사항, 범죄수사에 관한 사법경찰관리의 지휘 및 감독, 법원에 대한 법령의 정당한 적용의 청구, 재판집행의 지휘 및 감독 등을 수행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검찰이 검찰권을 공정하고 정의롭게 행사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근래 검찰이 보이는 모습을 보면 후한 평가를 내리기가 어렵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고 기염을 토했던 것도, 삼성공화국의 장학생 시비에 휘말린 것도, BBK사건의 실체적 진실 규명에 성공하지 못한 것도 다 검찰이 한 일이다.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의 수사를 석연치 않게 한 검찰은 여기에 오점을 더한 셈이다.
억강부약하는 검찰을 볼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과연 그날이 오기는 하는 것일까? 검찰 스스로의 개혁이 어렵다면 국민들이 검찰을 개혁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대뜸 생각나는 것은 검찰이 가지고 있는 기소독점권을 다른 기관과 나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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