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다. 되돌아보니 그렇다.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가 '용산 참사' 직후에 사퇴 표명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먼저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고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판이 달라졌을지 모른다.
씨름판의 형세는 샅바싸움에서 갈리는 법이다. 샅바싸움이 누르는 선수와 눌리는 선수를 가르고, 이것이 기술 구사 여지를 제한하는 법이다.
김석기 내정자가 사퇴 표명을 계속 미룬 이유가, 청와대가 먼저 진상규명부터 해야 한다고 버틴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샅바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사법적 책임이 가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도의적 책임을 자청하면 눌린다. 어떤 진실도 '공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김석기 내정자가 고개를 숙이면 그 순간 경찰에 책임이 몰린다. 더불어 정부는 기선을 빼앗기고 검찰의 수사는 제한된다. 경찰에 면죄부를 주는 수사가 아니라 경찰의 책임을 경감해주는 수사로 국한된다.
크다. 상황이 이렇게 흐르면 입는 상처가 너무 크다. 이른바 '공권력'의 정당성이 삭감되고 더불어 'MB법치'의 당위성이 훼손된다.
수순은 반대여야 한다. 사법적 책임이 가려진 다음에 도의적 책임을 지는 모양새를 연출해야 한다. 그래야 올릴 수 있다. 김석기 내정자의 '용단'을 부각시킬 수 있고, 경찰의 울분을 끌어올릴 수 있고, 'MB법치'의 정당성을 제고할 수 있다.
지금, 정해진 수순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사법적 책임을 규정했고 이어서 도의적 책임을 지고 마지막으로 공권력 세우기를 시도한다. 김석기 내정자의 사퇴 회견을 통해 공권력의 권위를 곧추세우고 있다.
회견문에 따르면 그렇다. "실체적 진실은 명백히 밝혀진 것"이다. '용산참사'는 "준도심테러와 같은 극렬한 불법폭력행위" 때문에 빚어진 것이다. 경찰의 진압은 "정당한 법 집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러난다. "사상 초유의 경제위기를 비롯한 국가적 현안이 산적한 시점에서 개인의 진퇴를 둘러싼 논쟁과 갈등이 확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용단'을 내린다. 그러니 알아야 한다. 이런 개인의 '용단'이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갈등을 해소하고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우는 새로운 전기"가 되도록 모두가 힘써야 한다. "경찰의 자존심과 명예를 국민 여러분이 지켜줘야만" 된다.
얼마나 떳떳하고 당당한가. 법과 원칙에 따라 정당하게 법 집행을 하는 경찰 아닌가.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국가와 사회를 위해 훌훌 감투를 벗어던지는 경찰 아닌가. 누가 감히 이런 경찰에 뭐라 할 수 있겠는가. 국민은 따라야 하고 믿어야 하며 존중해야 한다.
김석기 내정자가 국민에게 도의적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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