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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특수' 대신 '경기한파'…무너지는 용산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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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특수' 대신 '경기한파'…무너지는 용산상가

[현장]고환율·원가상승·소비침체 여파에 폐업가게 속출

"졸업 특수요? 그런 게 있기나 했나…. 작년 여름보다 덜 팔려요. 오후면 문 닫고 쉬는 사람이 많아요. IMF 때보다 두 배는 더 어렵다는 사람이 천지에요."

통상 1월부터 3월은 전자 유통업체 최대 성수기다. 졸업과 입학 시즌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발맞춰 PC, 노트북, 디지털카메라, 어학기, MP3플레이어 등 대부분 IT제품이 일제 할인행사에 들어간다. 하지만 서울 용산 선인상가에서 만난 중고 노트북 판매상 김모 씨(36)는 "올해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날 단 한 대도 팔지 못했다.

4일 오후 용산 전자상가. 국내 최대 전자제품 유통상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방문객을 찾기가 어려웠다. 간간이 PC 부품을 구매하러 다니는 젊은이들과 외국인 관광객이 눈에 띄었지만 얼추 보기에도 상인보다 수가 적었다. 졸업 시즌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체감하기 어려웠다.

환율 폭탄에 가격압박에…고달픈 용산

용산 전자상가 경기는 지난해 하반기 들면서 푹 꺾이기 시작했다. '고환율 폭탄' 때문이다. 조립 PC 부품 대부분이 대만이나 일본, 미국산인 까닭에 원화 가치가 떨어지자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상가의 원가부담이 늘어났다. 김 씨는 "작년 하반기 들면서 원가가 30%가량 올랐다. 용산은 사업 특성상 어떻게든 현금을 보유해야만 하는데 환율 여파로 매입단가가 올라가니 울며 겨자먹기로 원가 수준에 물건을 팔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환율 부담에 부품 공급가격 자체도 새해 들며 오름세를 타고 있다. 세계 5위 반도체업체인 독일 키몬다가 지난달 말 파산하면서 가뜩이나 가격변동이 심한 반도체 시장이 직격탄을 맞았다.

업계에 따르면 한 달 전만해도 2만 원선 미만이던 현재 삼성전자의 DDR2 2GB 메모리는 최근 3만3000원 이상에 공급되고 있다. 조립PC 수요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지포스의 9600GT급 그래픽카드는 13만 원선에서 14만 원대로 올랐다. 가격 인상 압박이 수요 침체와 함께 용산을 압박하는 형국이다.

어려움은 마찬가지지만 상가마다 분위기가 약간씩 다르다. 업계 관계자 말에 따르면 선인상가는 조립PC 수요자 사이에 인지도가 높은데다 부품업체가 많이 몰린 까닭에 가격 경쟁이 특히 치열하다. 자연 가격 인상에 따른 타격이 더 크다. 한 상가 업주는 "선인상가에 특히 폐업가게가 많다. 가격경쟁이 더 치열해졌기 때문"이라며 "오래된 물품은 일단 현금 확보라도 하기 위해서 원가 이하로 파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조립PC 초보자나 PC방 업주는 주로 나진상가를 찾는다. 터미널상가에는 디지털카메라나 어학기 판매상이 몰려있다. 아이파크몰은 용산에서 잔뼈가 굵은 상인이 상당 수 있다.

나진상가에서 조립PC를 판매하는 임재환 씨(26)는 "성수기인데도 작년 가을보다 매출이 70% 정도 줄어들었다. 완성PC판매량이 한창 때는 월 150대 정도가 됐는데 지금은 70대 정도로 줄어들었다"며 "공급가 인상까지 겹치면서 마진율이 20%대에서 최근에는 한자릿수로 떨어졌다. 이 상황이 이어지면 폐업 가게가 속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용산 터미널 상가의 한 폐업 상가. '임대문의' 혹은 'XX부동산'이라는 스티커가 붙은 채 텅 빈 상가가 부지기수다. ⓒ프레시안

"봄 지나면 끝"…폐업가게 속출

그나마 젊은이들 사이에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PC 판매상이 이 정도다. 터미널상가에서 디지털카메라, MP3플레이어 등을 파는 상인들의 얼굴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터미널상가에서 일본산 디지털카메라를 주로 판매하는 이모 씨는 "일주일에 절반은 한 대도 못 판다. 답답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실내 상가임에도 그의 옆에는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디지털카메라나 캠코더 등 졸업시즌에 특히 사랑받았던 제품들 역시 환율상승 압박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 엔화가 최근 들어 100엔당 1100원 선에서 1500원이 넘게 폭등하자 주로 일본산 제품이 많은 디지털카메라 가격도 덩달아 치솟았다. 이 씨는 "손님들이 와도 가격이 높은 제품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구경만 하고 그냥 가버린다"며 "이대로 봄을 보내면 폐업하는 곳이 속출할 것"이라고 했다.

터미널상가에서 디지털카메라 등 IT 주변기기를 판매하는 주대영 씨(27)는 "오늘 순수익이 4만 원이다. 카메라를 사는 사람도 10만 원대 싼 것만 산다"며 "이런 상황이 수개월 째 지속되니 5개월 정도 전부터 문을 닫는 가게들이 늘고 있다"고 언급했다.

▲선인상가를 바삐 오가는 사람은 업체 관계자 밖에 없었다. ⓒ프레시안
아랫돌이 흔들리니 윗돌이라고 결코 안전하지 않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1조 원에 가까운 영업적자를 냈다. '어닝쇼크'였다. 다른 업체 역시 마찬가지다. 제이씨현, 유니텍전자 등 메인보드, 그래픽카드 등 PC 부품 유통업체도 몸을 잔뜩 웅크리는 추세다. 그나마 이들은 아직 각 부분품에 대한 독점적 판매권을 보유하고 있어 타격이 덜한 편이다.

제이씨현 관계자는 "작년 말부터 경제여건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올해 판매액 감소는 피할 수 없으리라고 본다"며 "그나마 우리는 무차입거래, 현금결제 등 보수적 경영방식을 고집해 어려움이 덜한 편이지만 사업을 과감히 늘린 업체나 2차, 3차 유통업체는 현 상황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상가 취재를 마치고 지하철 용산역으로 향하는 길. 이미 아이파크몰은 문을 닫았다. 오후 8시가 안 된 시간임에도 상가 대부분 불이 꺼졌다. 선인상가 19동과 20동의 경우 얼핏 보기에도 세 집 걸러 한 곳은 장사를 접은 듯했다. 터미널상가 1층에서 지하철 역사 연결로가 있는 3층으로 가는 길 사이에 눈에 들어온 폐업상가만 3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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