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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찌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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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찌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사제단 '용산 참사' 시국 미사…"국민의 적이 된 권력을 어찌 할 것인가"

"대통령이 국민을 국민으로 보지 않고 있다. 그럼 우리는 대통령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2일 저녁 7시, 서울 청계광장. 나직하고도 힘있는 음성이 광장을 가득 메웠다. 용산 참사 희생자를 위로하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시국 미사가 이제 막 시작한 것.

사회를 맡은 김인국 신부는 "공권력이 국민을 적으로 대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가 맡겼던 권력을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질문을 던지며 "오늘밤 우리는 이런 중대한 질문에 답을 내리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며 운을 뗐다.

그는 "불의한 권력의 교만과 어리석음을 꾸짖어달라고 하느님께 부르짖고, 먼저 가신 분들의 영혼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시고 안식을 누리게 해달라고 기도하자"며 이날 미사의 의의를 설명했다.

곧이어 1000여 명의 촛불을 든 참가자 사이로 희생자의 유족과 100여 명의 사제단 신부들이 입장했다. 미사가 진행될수록, 광장을 메운 사제들의 음성은 더 커졌고, 더 단호한 외침으로 변해갔다. 그 목소리들은 행진 무렵 "학살 만행, 명박 퇴진"이라는 구호로 모아졌다.

▲ 2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는 용산 참사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주최로 시국 미사가 열렸다. ⓒ프레시안

"우리는 권력의 허수아비를 마음에서 지운다"

"우리 가슴마다 용산 철거민들의 뜨거움이 여전히 남아 있어 아프고 또 아프다. 그 아픔을 우리는 위로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 감히 저들이 그렇게도 우리 모두를 밀어넣고자 하는 배후로 불릴 것을 자처한다."

강론을 맡은 김영식 신부는 쩌렁쩌렁한 외침으로 미사를 이어갔다. 그는 "지난 1월 20일 용산에서 뜨거운 화마에 "뜨겁다" 소리치지 못하고 목숨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던 이들은 지난 1년 이명박 정권의 잔혹하고 무지막지한 실상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알려주고 깨닫게 해줬다"며 "그들을 우리는 이제 감히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열사라 부르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영식 신부는 "1년 전 이명박 대통령이 이 땅에 혜성같이 등장했다"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는 혜성같이 나타나 이 세상에 불을 가져다주었지만, 이명박은 죽음을 가져오고 역사를 말살했다"고 비난했다. 그는 "이 대통령은 1%를 살리고 99%는 파멸로 밀어넣었다"며 덧붙였다.

김 신부는 "남은 4년이 지금 같다면, 우리는 경찰청장, 검찰총장을 비롯한 모든 권력의 허수아비를 마음에서 지울 것"이라며 "윗선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낮은 이, 가난한 이, 소외된 이, 고통받는 이들의 절규를 외면하면서 배후가 있다고 읊어대는 공권력을 마음 속에서 지운다"고 말했다.

이어진 기도와 선언문에는 어느 시국 미사 때보다도 사제단의 분노가 담겨 있었다. 사제들은 "이 나라의 지도자가 하는 짓은 고작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과 전쟁을 벌이는 것 뿐"이라며 "절박한 우리의 기도를 들어달라"고 호소했다. (☞ 사제단 선전포고 "이명박 정부 목표는 민주주의 붕괴")

▲ 시국 미사에 참석한 사제단 신부와 희생자 유가족. ⓒ프레시안

▲ 기도문을 낭독하는 사제단 대표 전종훈 신부. ⓒ프레시안

▲ 이날 경찰은 청계광장 옆에 있는 동아일보 사옥을 철저히 경비했다. 경찰은 동아일보 주변 인도 통행도 철저히 차단했다. ⓒ프레시안

명동 앞 사제단-경찰 대치…"누가 누구를 속이나"

미사가 끝난 뒤 사제단은 명동성당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동아일보사를 중심으로 청계광장 주변을 미사 장소만 남긴 채 사실상 봉쇄했던 경찰은 청계천에서 명동까지 이어진 도로 역시 행진 구역만 남긴 채 철저히 봉쇄했다. 지난 1일과 지난달 31일 열렸던 용산 참사 추모 대회와 마찬가지 꼴이었다.

"이건 속이는 거야. 자신들이 막아놓고 우리 때문에 시민이 불편하다고? 누구를 어린애로 압니까. 연행하든지 마음대로 해요."

20여 분 남짓 "독재 타도, 명박 퇴진", "김석기를 처벌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행진하던 사제단의 걸음이 멈춘 곳은 명동으로 이어지는 을지로 입구. 경찰이 인도로 행진할 것을 종용하면서였다.

행진에 앞장서던 사제단 대표 전종훈 신부는 경찰에게 "이미 도로를 다 막아 차량을 못 다니게 해놓고 우리더러 인도로 가라니 사람을 우롱하는 것인가"라며 호통을 쳤다. 전 신부는 "50미터 가량 행진을 하면 바로 인도로 진입하지 않나"라며 경찰이 '시민의 불편'을 이유로 차량을 통제한 도로로 갈 수 없다고 하는 데에 문제를 제기했다.

▲ 명동성당 들머리에 도착한 500여 명의 사제단과 시민들은 정리 미사를 진행했다. ⓒ프레시안
마이크 하나 없이 걷던 사제들 앞에서도 경찰은 즉시 방송 차량을 동원해 '경고'에 나섰다. 경찰은 "종교인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어떡하나.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라며 '사제단'인지 '시민'인지 모를 대상에게 홍보 방송을 계속했고, 방송을 들은 신부들은 "지금 누가 누구더러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하는가"라며 "당장 길을 열라"며 더욱 분개했다.

긴장되는 분위기 속에서 30여 분간 대치 끝에 경찰은 "모든 책임은 여러분에게 있다"며 강제 해산을 시도했다. 경찰과 시민 간의 충돌을 우려한 사제단은 끝내 인도로 행진을 계속했다.

10시 30분, 명동성당 들머리에 도착한 500여 명의 사제단과 시민들은 정리 미사를 진행했다. 김인국 신부는 "금년 봄 농사가 시작됐다"며 "우리는 민주주의를 파종하고 4, 5, 6월 여러분과 함께 해 반드시 그 열매를 거둬들일 것이다"고 다짐했다.

입춘을 이틀 앞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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