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마이너스 4% 성장, 2010년 플러스 4.2% 성장. 국제통화기금(IMF)이 3일 발표한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다.
조사대상인 21개국(EU, 아시아 신흥국 포함) 중 올해 한국이 가장 낮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란 최악의 성적표다. 아직까지 '3% 성장'이라는 허황된 전망치를 수정하지 않고 있는 이명박 정부도 한국이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12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이란 점을 부인하기 힘들게 됐다.
그렇다면 2010년 4.2% 성장은? 기저효과(Base effect) 때문이다. 기저효과란 비교 대상이 되는 기간의 부진이나 호조 때문에 경제지표가 부풀려지거나 축소되는 현상을 말한다. 대부분의 경제 지표가 전월, 전분기, 전년도를 비교 대상으로 삼는데, 이전 기간의 경제지표가 평소에 비해 떨어졌을 경우, 경제지표는 부풀려질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가 2010년에는 4.2% 경제성장할 것이라는 IMF 전망치도 마찬가지다. 올해 성장률이 바닥을 기록했으니, 2010년 성장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2010년 성장률에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렵다. 외환위기 당시에도 98년 -6.9% 성장을 기록한 직후 99년 9.5% 성장을 기록했다.
더구나 "우리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연구 기관들이 1-2개월 단위로 성장률 전망치를 조정해서 발표하는 전대미문의 상황"(청와대 고위관계자)이므로 현 시점에서 2010년 전망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수치다.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는 청와대 반응은?
지난해 연간 경상수지는 64억1000만 달러 적자, 외환위기였던 97년(-82억9000만 달러) 이후 처음이다. 올해 무역 전망은 더 안 좋다. 월별 수출통계 집계를 시작한 1980년 이후 처음으로 지난 1월 수출이 -32%나 줄었다.
내수경기는 더 이상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도 없을 정도로 안 좋다. 지난 2000년 이후 8년 만에 자영업자 수 600만 명 밑으로 내려갔다. 소비가 극도로 위축됐다는 얘기다. 신규 취업자 수도 지난 달 무려 10만 명이나 감소해 올 1사분기에 제조업 취업자수가 400만 명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국민들이 실생활에서 느끼는 경제적 고통이 외환위기 이후 최악인 것으로 나타났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생활경제 고통지수(Misery Index)가 지난해 11.8로 1998년의 20.2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수치는 본격적인 위기 심화 국면에 진입한 올해 더 높아질 것이다.
이처럼 연일 '최악'의 경제지표가 속속 현실로 나타나고 있고, 급기야 IMF가 '-4% 성장'을 예고했다. 이런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든 청와대의 첫 반응은 놀랍게도 '침통'하지 않았다. 걱정하는 기색도 짙지 않았다. 오히려 "대통령의 예상이 맞았다"며 '경제 대통령 李네르바'의 예측 능력을 강조하고 나섰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2일 '엠바고'를 걸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IMF 전망에 대해 설명하면서 "2010년에 +4.2%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는 점을 유독 강조했다.
그는 "2009년 -4%에서 2010년 +4.2%하면 8.2% 차이가 하는데 IMF가 전망한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가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을 담고 있다"며 "최근 대통령께서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이 어렵고 금년도의 경제 성장률이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는 말을 하면서 2010년에는 우리 경제가 다른 나라에 비해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1일 SBS를 통해 방송된 '대통령과의 원탁대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에서 "내년이 되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좋은 성적을 내는 게 대한민국일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자신했었다.
기획재정부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허경욱 재정부 1차관은 3일 IMF 전망치에 대해 "-4%는 분명 충격적인 수치지만 내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폭으로 반등할 것으로 예측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정부는 재정과 금융 수단을 총동원, 내수를 살리는 정책을 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2010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앞서 지적한 것처럼 '기저효과'에 따른 '착시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이런 얘기는 '쏙' 빼고 마치 이명박 정부가 잘 해서 경제가 빠르게 회복될 수 있을 것처럼 얘기하고 있다. 그것도 이 대통령의 '예측 능력'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게다가 바닥을 찍은 직후 전망치인 4.2% 성장률은 2009년 마이너스 성장률을 감안하면 2008년 수준을 회복한다는 것에 불과하다. 참고로 이명박 정부가 "경제를 말아먹었다"고 평가하는 노무현 정부 5년의 평균 성장률은 4.3%다.
이 관계자는 올해 -4% 성장 전망에 대해선 "세계 경제 성장 전망이 2.2%에서 0.5%로 하향 조정됨에 따라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전망치가 낮아진 것"이라면서 "아시아 4룡도 비슷한 전망을 했다"고 애써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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