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참사는 불법 폭력에 맞서 법질서를 세우는 경찰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의 거취는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결정에 달렸다."
용산사건 현장에서 숨진 고 김남훈 경사의 장례식장에서 김석기 청장 내정자가 한 말이다. 그는 또 "그 죽음은 정말 슬프고 안타깝다. 뭐라고 말할 수 없다. 숨진 경찰이나 철거민들도 불쌍하고…. 하지만 지나가는 행인과 차를 향해 화염병을 던지는 불법 폭력 사태를 경찰이 즉각 진압하지 않으면, 과연 경찰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경찰이 시민의 안녕을 지켜주지 않는다면 누가 그 일을 대신할 것인가"라고도 말했다.
부하의 죽음이 애통했는지,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판이 억울했는지 그는 꽤 많은 눈물을 흘렸다.
김 씨의 말을 듣고 있자니 문득 20년 전 광주민중항쟁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열린 광주청문회에 출석한 광주민중항쟁 당시 11공수여단장 최웅 씨가 한 말이 생각났다. 청문회에서 최 씨는 광주시민에게 송구스런 마음을 금할 길이 없지만 야전 지휘관 입장에서는 포고령 위반자에 대한 과잉진압은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기억이 정확치는 않지만 청문회를 마친 그는 눈물을 흘렸고 기자들이 왜 우냐고 물으니 '광주항쟁 당시 고생한 부하들 생각이 나서 그런다'고 답했었다.
김 내정자와 최웅 씨의 사고와 발언은 놀랄 정도로 유사하다. 이들의 뇌리에는 공권력 행사에 있어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정성, 비례원칙은 아예 없는 것 같다. 오직 정체가 의심스러운 '법질서 확립'만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본디 합법적으로 폭력을 독점하고 있는 국가가 공권력을 행사하고자 할 때에는 목적의 정당성은 물론이고 방법의 적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비례의 원칙(달성하고자 하는 공익과 침해되는 사익 간의 무게를 비교해 공익이 훨씬 무거워야 함)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이를 엄격히 요구하고 있으며 최근 들어서는 비례의 원칙이 무척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광주민중항쟁은 말할 것도 없고 용산사건의 경우에도 경찰은 헌법이 공권력 행사시 요구하는 원칙들을 거의 전부 무시했다. 백보를 양보해 건물을 불법 점거하고 있는 철거민들을 해산하는 것이 정당하다 할 지라도 그처럼 무리하고 폭압적인 진압방법을, 그것도 철거민들의 생명을 담보로 펼친 점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토록 소중한 목숨 여섯을 잃고 얻은 것이 고작 개발이익(이조차 사인(私人)들의 것이다)과 국민들의 분노란 말인가.
김 씨의 발언이 보여주는 것은 법치 혹은 질서유지라는 명목 아래 시민들의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권력기관 고위관료들의 멘탈리티가 2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이 없다는 사실이다. 헌법은 이들에게 완전히 무력한 존재다. 오직 최고권력자의 심중이 이들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광주시민과 철거민들에 대한 이들의 진심은 법집행 과정에서 죽거나 다치는 시민들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이나 아닐지.
철거민들의 떼죽음을 지켜본 대통령이 고작 한 말이라고는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서는 않된다"는 것이다. 참으로 객관적이고 냉정한 평가다.
바야흐로 대한민국 국민들은 최고권력자가 정한 법과 원칙의 밖에 서 있는 국민들은 순식간에 비국민으로 전락하는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낙인 찍히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하고 또 조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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