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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잘 다녀오세요. 그리고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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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잘 다녀오세요. 그리고 잊지 마세요"

[현장] 서울역 앞 '용산 참사' 추모 대회

"화염병이랑 시너 가지고 간 게 잘못된 거야."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저렇게 얘기할 수 있죠. 어린아이부터 얼마나 충격 받는지, 얼마나 절박한지 모르니까…."

지난 23일 서울역 앞. 체감 온도 영하 15도의 강추위 속에 서 있던 시민들 가운데 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옆에 있던 다른 시민이 나직한 목소리로 기자에게 말을 건네며 되받았다.

이날 서울역은 설을 맞아 고향을 찾는 귀성객으로 온종일 붐볐다. 용산 참사 사흘째. 전국철거민연합을 비롯해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이명박정권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는 이날 저녁 이곳에서 범국민 추모대회를 열었다.

추운 날씨 속에서도 서울역 광장에 모여 앉은 3000여 명의 시민들은 지칠 줄 모르고 "명박 퇴진, 독재 타도"를 외쳤다. 종종걸음으로 귀성길에 나서던 이들 중 상당수도 발길을 멈추고 집회를 지켜봤다. 집회 참가자들은 서울역 역사 안 등 곳곳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며 "설 연휴에도 용산 참사를 잊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 23일 서울역 앞에서 열린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 ⓒ프레시안
"왜?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

"5년 전 철거촌에서 살면서 같은 경험을 했다. 우리나라 법에서 추울 때 철거할 수 없게 돼 있다. 여기 모인 사람이나 의경이나 철거민이나 다 똑같은 국민인데…. 인간적으로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문제다."

귀성길에 잠시 멈춰 집회 현장을 바라보던 김숙자(가명·44) 씨는 그 자신이 겪은 일이라 소식을 듣고 더욱 서글펐다고 했다. 5년 전 이웃들과 함께 철거 투쟁을 벌이면서 겨울철 야간에 교대로 불침번을 서던 이웃이 심장병으로 목숨을 잃은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고 했다. 그는 옆에서 화염병을 준비한 철거민이 잘못이라며 욕하는 시민의 말을 듣고도 화를 내기는 커녕 "그럴 수 있다"며 짧게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어디나 철거촌에서 그건(화염병) 다 준비한다. 왜?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 경찰이 곤봉 준비하는 것처럼 저들이 준비할 수 있는 '무기'인 것이다. 시너처럼 위험한 게 있었는데 경찰이 진압을 했던 게 이해되지 않는다. 철거촌에 특공대가 투입됐단 얘기 이제껏 못 들었다. 좋은 명절 앞두고 그랬다는 게 조금이 아니라 많이 서글프다."

김 씨는 "철거 지역은 아직도 많고 다른 지역도 전부 힘들다"며 "정부에서 자기네끼리만 싸우지 말고 없는 사람들 위해 한번만이라도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철거민이 겪는 일 중 단적인 예로 아이들을 들었다.

"어린 아이들이 굉장히 충격을 받는다. 그 기억을 잊어버리지 못한다. 유치원 다니던 우리 애들도 정말 많이 울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정말…."

"'우리 안의 이명박' 있는 한 똑같다"

▲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만든 피켓을 들고 귀성객들에게 호소하기도 했다. ⓒ프레시안
주최 측이 집회와 별도로 서울역 입구에 만든 임시 분향소에도 제법 붐볐다. 오가는 시민들은 영정 앞에 헌화를 하고 묵념을 하는가 하면,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올려졌던 글 "저희 오빠는 철거민입니다"를 인쇄한 피켓을 유심히 읽었다.

기차를 타러 가던 길에 분향소를 지켜보던 박성주(가명·31) 씨는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이번 사건은 참 뭐라고 할 말이 없다"며 "남들 하는 생각 다 같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점점 멕시코 경제로 가고 있지 않나. 중산층은 없고 상류·하류층밖에 없다. 서민들도 잘 살아보자는 건데…"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박 씨는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기사를 잘 써야 한다"며 "저분들을 생각해서 더욱 그렇다"고 덧붙였다.

역시 분향소 앞에서 만난 이상아(가명·28) 씨는 "이명박 대통령을 별로 안 좋아하지만 무조건 대통령 탓이라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라며 "그렇지만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씨는 "경찰 특공대는 테러 진압이나 큰 사건에만 투입되는 걸로 알고 있다"며 "그런데 왜 그 사람들에게 경찰 특공대를 투입했나"라고 기자에게 묻기도 했다.

그는 "정치를 잘 알지 못하지만 정부가 너무 독단적으로 밀고 나가려는 것 같다. 요즘 시대에 맞는 대통령은 아닌 것 같다. 이 정권, 오래 못 갈 거 같다"고 말했다.

헌화를 하던 이승오(가명·50대 초반) 씨는 "20년 전 빈민 선교를 했다"며 "그때 제대로 문제를 해결했어야 하는데, 이분들 죽음에 저 나름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씨는 "경찰의 강제 진압은 현상"이라며 "21세기에 녹색 성장을 한다고 하고선 사실 70~80%가 회색 성장이니까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어 그는 "20년 전에는 박종철 군, 이한열 군처럼 한 사람의 죽음으로 정권이 바뀌었지만, 지금은 우리 안에 또 이명박이 있기 때문에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실 뉴타운 때문에 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찍지 않았나. 퇴진 요구도 필요하겠지만 우리가 바뀌지 않으면 이명박 뒤에 다른 사람이 와도 마찬가지다"라고 강조했다.

서울역-홍익대 앞 행진…2차 대회 예정

한편, 이날 저녁 예고된 추모 집회를 두고 경찰은 41개 중대 3000여 명의 전경과 경찰버스 수십 대를 동원해 서울역 앞 차도와 인도 사이를 봉쇄했다. 이로 인해 이날 오후 교통 체증이 극심했고, 귀성길에 오른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저녁 7시경부터 2시간 동안 광장에서 집회를 마친 뒤 용산 참사 현장까지 행진을 시도했다. 그러나 경찰은 차도를 봉쇄한 것은 물론 인도까지 막았고, 참가자들은 반대편으로 행진을 시작해 서울역-충정로-아현을 거쳐 구호를 외치며 걸었다.

신촌로터리에 도착한 2000여 명의 시민은 연좌농성을 벌이다 다시 홍익대 앞으로 이동했다. 경찰은 시민들이 차도를 진출하는 것을 막았고, 집회는 밤 11시 무렵 마무리됐다. 큰 충돌은 없었다.

대책위는 설 연휴 내내 용산 참사 현장에서 추모 행사를 열고, 연휴가 끝난 뒤 오는 31일에는 서울 청계광장에서 2차 범국민 추모대회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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