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발(發) 충격파가 금융시장을 강타했다. 실물경기 침체에도 꿋꿋이 버티던 코스피지수는 20포인트 이상 하락하며 7주 만에 1100선을 내줬다. 환율은 다시 1400원선을 코앞에 뒀다.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 연휴를 앞두고 금융시장이 다시 나락으로 떨어질 조짐이 보이면서 앞으로 한국경제 방향타를 찾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경고음이 각계에서 잇따르고 있다. 주요 금융기관은 한국과 한국의 수출시장이 종전 예상보다 더 가파른 하락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으며 국정 책임을 진 여권 내부에서도 이런 우려가 짙어지는 모양새다.
코스피 "삼성, 너마저…"
23일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22.83포인트(2.05%) 하락한 1093.40으로 장을 마쳤다. 지난해 12월 5일 이후 처음으로 1100선을 하향 이탈했다. 장중 한때 1080선까지 밀려나기도 했으나 장 막판 개인투자자의 매수세가 몰리면서 1090선을 힘겹게 지켰다.
시장 심리도 완전히 무너졌다. 이날 거래량은 2억5911만 주, 거래대금은 3조4677억 원을 기록해 올해 들어 가장 낮았다.
예상보다 훨씬 낮은 삼성전자의 '어닝 쇼크'가 증시에도 쇼크를 줬다. 이날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영업손실 9400억 원(본사기준)을 기록했다고 공시했다. 연결재무제표 기준으로는 7400억 원 적자다. 삼성전자가 지난 2000년 3분기 실적공시를 시작한 이래 영업적자를 낸 것은 처음이다. 당초 시장은 영업손실 4400억 원 선을 예상했다.
삼성전자의 실망스러운 성적 때문에 이날 전기전자업종지수는 전날보다 3.9% 하락, 코스피 하락을 주도했다. 삼성전자는 전날보다 1만9000원 떨어진 44만2000원으로 장을 마감했고 LG전자와 하이닉스도 5%가 넘게 밀려났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주가 약세 여파로 전날보다 달러당 12.90원 오른 1390.90원을 기록, 1400원 선 재진입을 눈앞에 뒀다. 환시장 참가자들은 코스피 약세와 미 증시 약세 등이 원화약세를 부추겼다고 설명했다. 환율은 지난해 10월 1400원 선을 돌파한 바 있다.
실물 침체 이제 시작…이한구 "2분기 대기업 무너질 것"
주요 금융지표 회복은 한동안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중순을 넘기며 금융→실물로 전이되던 침체가 이제는 다시 실물→금융으로 전이되는 모양새를 띄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침체속도가 종전 예상보다 훨씬 가파르다는 점이 문제다.
당장 경제성장률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률이 전기대비 -5.6%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종전 예상수준 -1.6%보다 훨씬 낙폭이 크다.
이에 발맞춰 세계 각국의 금융연구기관은 일제히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재조정하고 있다. 지난 22일 모건스탠리는 한국의 올해 연간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2.7%에서 -2.8%로 대폭 하향조정했다. JP모건 역시 전망치를 0.5%에서 -2.5%로 하향조정했다. UBS는 -3.0%로 전망했으며 BNP파리바는 -4.5%에 불과할 것이라는 충격적 전망을 했다.
전망치의 높낮음을 떠나 실물침체가 본격화한다는 전망은 점차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내수가 이미 실종된 상황에 유일한 버팀목이던 수출 전선마저 빠른 속도로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4분기 재화수출은 전기대비 11.9% 감소, 지난 1979년 1분기 이후 가장 큰 감소폭을 기록했다. 수출이 줄어드는 이유는 미국 등 주요 수출시장이 일제히 마이너스 성장세를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일본은 이미 지난해 3분기부터 역성장 추세를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 등 수출주력업체의 실적 전망이 더 암울한 이유다. 모건스탠리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수출주도형 경제모델을 가진 '세계의 공장' 중국이 선진국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 하락으로 올해 5.5%에 불과한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출주도형 국가가 수요실종 악영향을 종전 예상보다 크게 받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와 관련,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자신이 운영하는 경제사이트 RGE모니터에 중국마저 사실상 경기침체에 들어갔다고 경고했다.
"실물침체는 이제 시작"이라는 경고음은 해외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여당의 대표적 경제통 이한구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은 이날 <뷰스앤뉴스>와 인터뷰에서 "여러 경제지표와 기업지표 등을 감안할 때 빠르면 2분기부터 쓰러지는 대기업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건설ㆍ조선은 말할 것도 없고 자동차, 석유화학업계, IT업계도 줄줄이 무너질 것"이라며 "문제는 앞으로 이런 업종들이 전부 수출 주력분야라는 점"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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