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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배해, 술잔이 깨질 듯이"

[공연리뷰&프리뷰] 연극 '술집'

"첨에는 천천히 한잔씩,
건배해, 술잔이 깨질 듯이
밑 빠진 독에 물 채우듯이 계속해, 퍼부어 아침까지"

바비 킴(Bobby Kim) 앨범 수록곡 '한잔 더'의 흥겨운 힙합비트로 문을 여는 연극 '술집'은 공연을 앞두고 주인공 '햄릿'이 사라지면서 극단 배우들끼리 겪게 되는 해프닝을 담은 작품이다. 일단 겉모습만 보면 그렇다. 그런데 딴 세상 얘기 같기만 한 이 작품, 알면 알수록 그 안에 녹아든 우리네 인생의 희로애락이 놀랍도록 은근하게 배어나온다. 그래서 자연스럽고 또, 친근하다. 한국인의 술자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주처럼 말이다.

▲ ⓒ Newstage

- 첫 잔은 무조건 시원하게 원 샷!

첫 잔은 무조건 시원하게 원 샷이다. 일종의 준비운동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작정하고 달려들기 전에 가벼운 목축임이 필요한 것이다. 연극 '술집' 역시 공연을 준비하는 가난한 극단 배우들의 애환과 희망에 대해 본격적으로 얘기하기 전 '웃음'이라는 코드로 관객들의 마음을 가볍게 풀어준다. 술자리에 앉아 도란도란 나누는 배우들의 과거 에피소드가 사람들을 웃기고, 수시로 등장하는 멀티배역들이 주는 유쾌한 에너지는 그들이 무대 밖으로 퇴장하는 게 아쉬울 정도다. 이 와중에 소극장 무대의 장점을 한층 살려 배우들이 직접 객석으로 넘어와 소통을 시도하니 관객들은 온전히 집중할 수밖에 없다.

- 두 번째 잔엔 씁쓸한 오늘의 기분을 띄워 털어 넣고…….

'웃음'으로 시작했지만 스토리의 전개는 사라져버린 '우리의 주인공 햄릿', 아니 '빌어먹을 햄릿 자식'으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는다. 힘들어도 서로에게 기대고, 누가 뭐래도 좋았던 연극일 하나로 버텨오던 그들이 맞는 갈등은 행복했던 딱 그만큼 골이 깊다. 배우들이 연기하는 배우의 모습이다 보니 그 어떤 상황보다도 현실감이 넘치는 것은 물론이다. 게다가 '술'이라는 존재가 그 어떤 이든 꽁꽁 싸맨 경계심을 무장해제하는 힘이 있지 않은가. 분위기만으로 얼큰하게 취하는 연극 '술집' 공연장에서는 관객이 배우가 되고, 배우가 관객이 되는 일쯤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 ⓒ Newstage

- 마지막 잔엔 인생의 단맛, 쓴맛 모두 담아!

연극 '술집'은 사람을 웃고 울리는 알코올의 위력인 냥 제 3자라고 생각했던 관객들의 마음을 쥐고 흔든다. 배우들이 나누는 소소한 이야기에 함께 웃고, 팀 와해 위기에 처한 배우들의 어려움에 함께 안타까워하며 관객들은 어느새 모두 공연의 주인공이 된다. 무대 위의 펼쳐진 것은 단순히 배우들의 무대 뒷얘기가 아니라 바로 모두의 인생 이야기인 것이다. 연극 '술집'은 그 자체가 인생이고, 또 그 인생이 연극이다. 주머니 속 동전 몇 개로(물론 지금은 불가능해진 이야기지만)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던 소주 한 병, 한 병에 담긴 눈물과 웃음이 작품 속에 그대로 녹아있다. 게다가 가장 고마운 일은 해피엔딩으로 작품의 끝을 맺는다는 점이다. 마치 퍼석퍼석한 우리네 삶에 무한한 승리의 건배를 외쳐주는 듯하다. 씁쓸하지만 때론 달콤한 소주처럼 우리들 삶도 늘 고달프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공연 내내 배우들이 술 마시는 모습이다. '많이' 마셔서 문제가 아니라 '맛없게' 먹어서 아쉽다. 물론 관객들도 연기하면서 따르는 소주병 안의 그것이 물이라는 사실쯤은 안다. 그래도 조금 더 맛있게, 혹은 실감나게 쭉- 들이켜 준다면 더 정감 가는 공연, 더 살맛나는 인생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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