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쌍용차가 법정관리를 신청함에 따라 자동차업계가 구조조정 국면에 들어갔다. 그러자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삼성이 이를 인수해줬으면 하는 희망을 한 언론을 통해 밝혔다. "삼성만 나서준다면 그런 좋은 그림이 어디 있겠냐"는 것.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어느 정도 재벌에 의지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금융 구조조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는 재벌에 크게 기대하고 있다. 금산분리 완화를 정점으로 하는 금융 규제완화를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금융산업 선진화'라는 미명 아래 미국식 금융 시스템을 도입하고 금융산업을 성장동력으로 하려는 기본틀은 김대중 정부 이후 계속된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앞선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다른 점은 '재벌'을 파트너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야당과 학계, 그리고 시민단체들은 지난해 9월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 파산 이후 본격화된 미국발 금융위기를 들어 이명박 정부가 금융규제 완화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반발하고 있지만, 정부는 오히려 속도를 내고 있다. 재벌의 도움 없이는 현재의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MB정부, 재벌 주도의 금융빅뱅 완수하려나
이명박 정부가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규제하고 있는 금산분리를 완화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당장 공적자금 투입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는 은행들의 자본 확충을 위해 산업자본의 진입 장벽을 낮춰야 한다는 게 정부의 주장이다. 또 이명박 정부는 '공기업 민영화'를 통해 매물로 내놓을 수 있는 산업은행, 우리은행 등 금융공기업을 인수할 주체로 재벌을 상정하고 있다. 그래서 반대 여론에도 아랑곳 않고 금산분리법, 공정거래법, 금융지주회사법, 은행법, 증권법 등 관련 법안의 재개정을 강행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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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흐름에 대해 이종태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15일 대안연대,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사회민주주의 연대가 공동주최한 심포지엄에서 "이명박 정부의 금융재편 정책은 '재벌 주도의 금융화'로 명명할 수 있다"며 "이명박 정부는 재벌을 주도 세력으로 견인함으로써 금융빅뱅을 완수하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연구위원은 또 재벌 입장에서 은행 소유는 여러가지 이득이 뒤따르는 일이지만 "특히 총수 일가의 그룹 소유권을 확실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연구위원은 이명박 정권과 재벌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가속도가 붙은 '재벌의 금융화'의 위험에 대해 경고했다. 그는 "재벌들은 경영권 보호까지 요구하고 있어 모순적 금융시스템이 구성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며 "재벌의 금융기업 소유는 예금(투자)자의 자금을 유용할 가능성이 높아 특별한 준법감시 체계가 없는 상황에서 금융시스템을 치명적으로 파괴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투자은행 대신 CIB 추진하면 된다고?
그는 금산분리 완화 뿐 아니라 △헤지펀드 도입 △사모펀드 규제완화 △파생상품 시장 활성화 △증권-보험업체의 지급결제 시스템 참여 등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규제 완화 정책들이 모두 고위험을 동반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이 연구위원은 특히 지난해 금융위기로 미국 투자은행이 몰락하자 정부가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을 통합한 CIB(Commercial and Investment Bank)를 추진하겠다고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상업은행의 예수금은 우리 사회의 지급결제망의 핵심에 있는 자산으로 국가보증을 받고 있는데, 이를 투자은행과 결합시키겠다는 구상은 매우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자본시장 붕괴 조짐이 부채의 증가, 저축의 감소로 이어지고 은행 부문의 부실로 나아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며 "이는 국가 화폐 시스템과 사회 전체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위험성에 대해 거듭 지적했다.
그는 "2월 시행 예정인 자본시장통합법을 포함해, 보험업법-은행법-금융지주회사법-금산분리법 개정 추진 작업들은 일정한 냉각기를 가지고, 세계금융질서의 변화를 차분히 지켜보며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오바마,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이명박 정부의 금융정책은 세계적 차원의 금융재편의 흐름 안에 놓여 있는 것이다. 현재 세계 경제는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새 질서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따라서 금융위기를 불러온 부시 정부와는 다른 정치.경제 노선을 표방하고 있는 오바마 정부의 금융정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금융감독과 관련해 아래와 같은 6원칙을 밝힌 바 있다. 1. 정부에서 자금을 빌리는 기관은 정부의 감시와 감독에 종속되어야 함.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이사회는 최종 대부자로 신용을 제공한 어떤 금융기관에 대해서든 기본적인 감독권한을 가져야 함. 또한 연준의 신용은 결국 납세자로부터 나오는데 이는 납세자들이 이런 금융기관(연준의 신용을 제공받은)들에 대해 지나친 리스크를 감수하지(risk-taking) 않도록 할 권한을 가짐. 2. 모든 규제받는 금융기관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요건들'(requirements)이 마련되어야 함. 자본충족 요건은 더욱 강화되어야 함. 특히 모기지 증권 같은 복잡한 금융상품에 대해 더욱 그러함. 유동성 리스크를 엄격히 관리할 수 있는 규제 방법도 개발해야 함. 신용평가기관들을 조사해야 하고, 이들과 금융기관 간의 이해상충 가능성도 감사해야 함. 금융기관은 주주와 거래 상대방에게 자사의 모든 정보를 공개해야 함. 3. 금융감독기관들 간 중복 감시와 경쟁을 초래하는 감독 시스템을 정비해야 함. 4. 금융기관들은 그들의 법인 형태(what they are)가 아니라 업무(what they do)에 따라 규제되어야 함.(예컨대 사실상 은행업을 하는 비은행 금융기관은 은행업에 준하는 감독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임.) 5. 시장조작을 방지해야 함. 6. 금융시장에 나타나는 일련의 시스템 리스크들을 제대로 파악해야 함. 이같은 오바마의 금융 6원칙에 대해 이종태 연구위원은 "미국의 금융감독 체제 및 금융 시스템이 예상보다 더 급진적으로 바뀔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자본충족, 유동성, 투명성 요건의 강화는 투자은행업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선언"이라면서 "신용평가기관에 대한 문제제기는 BIS 체계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며, '업무에 따른 감독 체제'는 은행업과 비은행 금융기관의 구별을 더욱 엄격하게 만들거나, 비은행 금융기관을 은행 수준의 규제에 종속시키는 조치로 나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월스트리트에 메인 스트리트(main street)를 대비시키는 오바마는 금융의 실물지원 기능을 대폭 강조하고 있다"며 "이는 지난 20여 년 동안 형성되어온 스스로 돈을 버는 고부가가치산업이라는 금융산업에 대한 인식을 뒤엎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오바마의 금융업에 대한 인식이 실제 정책에 어느 수준까지 녹아들어갈지에 대해선 논란이 분분하다. 특히 초기 경제팀이 클린턴 정부 시절 금융 규제 완화에 앞장선 '루빈 사단'으로 채워짐에 따라 논란을 증폭시켰다. 로버트 루빈은 미국의 최대 투자은행이었던 골드만삭스 회장을 지낸 인물로, 클린턴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냈다. 새 재무장관으로 발탁된 티머시 가이트너, 백안관 국가경제위원회 의장으로 내정된 로런스 서머스 등이 루빈 사단의 구성원이다. 장진호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원 연구원은 "오바마가 루빈 사단을 대거 발탁한 것이나 그의 대선 및 대통령 취임식에서 최대 기부자가 월가의 금융자본이라는 점을 볼 때 근본적인 단절은 힘들지 않겠냐"고 말했다. 장 연구원은 "과연 오바마 정부가 월가와 금융자산가 계층보다 서민과 중산층에 기반한 국민 다수의 이해를 반영하도록 신자유주의 물결을 되돌릴 수 있을지는 개인적으로 회의적"이라고 덧붙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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